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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무하 Oct 18. 2024

신의 고백 (1화)

도형은 두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는 짙은 회색 문 앞에 멈추어 선다.      

김*지.      

도형은 아내의 이름을 두 손가락으로 살짝 만진다.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도형의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오늘이 그녀가 병실에 들어온 지 2개월이 되는 날이다. 도형은 2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 병실 문 앞에 서서 아내가 깨어나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했다.      

도형은 노름꾼이 화투장을 쪼아보듯 병실 문을 아주 조금씩 열었다. 아내가 누워있는 침대가 보이고 아내의 움직이지 않는 발이 보였다. 도형은 혹시 아내의 발이 조금이라도 움직이지 않을까 집중하며 주시하였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러고 계셔요? 무슨 일 있으세요?”

지나가던 간호사가 걸으면서 물었다.   

   

도형은 대답대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쫓기듯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도형은 아내를 보았다.

여전히 그의 아내는 도형이 나가기 전과 같은 자세로 누워있다.     

천장을 포함한 모든 벽이 흰색으로 칠해진 2인용 병실이 도형의 눈에 들어온다.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컴컴한 병실에 두 여인이 같은 자세로 누워있다.      

한 사람은 대학교수인 60대 여인, 다른 한 사람은 이제 서른이 갓 넘은 그의 아내.     

두 사람의 몸과 연결된 의료 장비들의 작은 소음만이 그녀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반만 살아있다. 아니, 반의 반, 아니면 반의 반의 반. 이미 거의 다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들리는 말로는 대학교수는 앞으로 한 달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도형은 익숙한 자세로 좁고 낮은 간이침대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검은색 가방에서 회색 노트북을 꺼냈다.      

그는 소설을 쓰는 중이다.     

10여 년 전 단 한 편의 중편소설로 운 좋게 문단에 등단한 후 한 편의 글도 발표하지 못했다. 아니 쓸 수가 없었다. 처음 소설을 쓸 때와 같은 불덩어리가 가슴 속에서 생겨나지 않는다고 그는 늘 이야기하곤 했다.      

아내가 교통사고로 이 병실에 들어온 다음 날, 그는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도형은 아내가 깨어나기 전에 소설을 완성하여 자랑하듯이 보여주리라 결심했다.      

아픔과 그리움 또는 불안과 외로움이 인간에게 글을 쓰고 싶게 만든다는 것을 도형은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는 신화에 나오는 미노타오로스의 아가리를 벌린다는 느낌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오늘은 좀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학교수의 간병인이 병실로 들어오면서 도형에게 밝은 표정을 지으며 인사하듯이 물었다.     


 그녀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동네 아줌마처럼 인상 좋은 얼굴을 한 50대 여성이다. 그녀는 언제든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거리낌 없이 늘어놓았다.

도형은 말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하는 이야기들은 싫지 않았다. 그녀의 말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면 병실이 더욱 적막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최근 도형의 유일한 대화 상대인 그녀는 사람을 집중하게 만드는 말솜씨를 가지고 있다. 마치 옛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들이 보내온 엽서 사연들을 듣듯이 도형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날은 집중해서 듣기도 하고, 어떤 날은 흘려듣기도 하면서.

그동안 들었던 그녀의 가족들 이야기들은, 도형을 그녀의 식구 중 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하기도 하였다.     


“오늘은 열 장을 쓰는 게 목표에요”     


“겨우 열 장 써서 되겠어? 장편 소설이라며? 그럼 500장 정도 되나?”     


“글쎄요, 목표는 한 400페이지 정도 쓰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이야기가 더 길어질 수도 있고 아니면 빨리 끝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쓰는 것보다 지워지는 게 더 많아요. 한 페이지 쓰면 두 페이지는 지워지는 거 같아요.”

도형은 엄살 부리듯이 과장하여 말했다.     


“너무 잘 쓰려니까 그러는 거겠지? 지금 얼마나 썼는데?”     


“한 200페이지 정도요”     


“ 그래? 두 달 만에 그 정도 썼으면 많이 쓴 거 아닌가?”     


“ 글쎄 여기서 멈춰서 일주일째 진도가 나가질 않네요.”

도형은 손가락으로 노트북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떤 내용인지 물어보면 안 되겠지?”      


“요즘엔 제가 뭘 쓰고 싶어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완성되면 제일 먼저 보여드릴게요.”    

 

“에이, 내가 제일 먼저 보면 안 되지. 부인이 먼저 봐야지.”

간병인은 더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따뜻한 눈빛으로 도형을 위로했다.     


“부인이 깨어나기 전에 완성하고 싶다고 안 했나?”     

도형은 깊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맞아요. 그렇게 하고 싶은데...”

 자신 없다는 듯이 말을 흐렸다.     


“한숨 쉬는 거 보니 자신이 없나 보네. 걱정하지 말아요. 소설이 완성되기 전에 부인이 깨어나도 좋고, 깨어나기 전에 소설을 완성해도 좋은 일 아닌가? 그러니 조바심 내지 말고 멋진 책을 완성해 봐요. 나도 유명한 소설가랑 친하다고 자랑 좀 하고 다니게.”      


 “에이 유명하긴요. 완전 무명이죠. 하여간 노력은 해 볼게요. 오늘은 언제 가세요?”

도형은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작은 딸년이 남자친구를 데리고 온다고 해서 좀 일찍 가려구. 미안하지만 이 선생이 오늘 저녁 우리 교수님도 좀 봐줘.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간호사를 불러야 돼요. 내게도 전화 주고. 알았지?”     


“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세요. 담당 간호사도 수시로 와서 보고 있잖아요. 사윗감이 맘에 드셨으며 좋겠네요.”     


“ 사윗감은 무슨.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르지. 그래도 내 맘에 꼭 들었으면 좋겠어.”     


“그럴거예요. 맘 편히 들어가세요.”     


“그럼 부탁할게.”     

도형은 대답 대신 손을 흔들며 웃는 표정으로 그녀를 배웅했다.     

간병인은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갔다.      


 순간 먹물처럼 적막감이 병실 전체에 번져나가는 것을 도형은 느낄 수 있었다. 도형은 이미 이 적막함에 익숙한 듯, 친구를 맞이하듯 다정하게 맞이한다.

하지만 오늘은 이 익숙함이 다른 날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도형은 느낄 수 있었다. 순간 적막감은 작은 공포로 변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우주 공간에 세 사람만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 같은 공포감.

자신 곁의 두 사람은 죽어버리고, 혼자서 어두운 우주를 영원히 떠돌아다녀야 한다는 느낌은 도형의 팔에 소름이 돋아나게 했다.

도형은 긴 한숨을 쉬었다.

도형은 눈을 노트북으로 돌렸다.

 노트북 자판 위에 올려 진 그의 손은 오늘따라 더 말라 보인다.

 손 등위에 튀어나온 핏줄도 오늘 더 도드라져 보였다.

도형은 자신의 혈관 속에 흐르는 피들은 상상했다.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 그리고 혈장. 중학교에서 배운 혈액의 성분들이 아니라 뭔가 생명이 있는 작은 벌레들이 혈관 속을 기어 다니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공포영화에서 본 것처럼.

도형은 수 초 동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는 오늘 한 줄도 쓰지 못할 것을 예상했다. 그동안 써 놓은 글들을 고치고 또 원래대로 다시 고쳤다. 영원히 완성하지 못할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에 도형은 고개를 젖히며 또다시 눈을 감았다.      

그는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병원에 들어온 이후 도형은 단 하루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면증과 함께 권태라는 중증의 병이 그에게 찾아왔다.     

세상에 대한 권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권태였다.

매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정해진 표정을 지으면서, 항상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보이지 않는 강하고 두꺼운 벽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잠을 청할 때마다 찾아오는 권태감을 피하기 위해 도형은 애를 썼다.     


‘척, 척, 척, 척’     

바쁜 발자국소리가 들리더니, 아내의 담당 간호사가 들어와 눈 인사를 한다. 도형도 오른 손을 살짝 들어 인사를 했다.

그녀는 중성적인 말투와 헤어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도형은 그런 그녀가 더 여성스럽게 느껴졌다.

     

“오늘은 야간이네요”      

도형은 그녀가 차고 있는 애플워치를 보면서 친절한 말투로 물었다.     


“네 오늘부터 야간이에요. 오늘 밤 수시로 들어와서 보호자 분 글 쓰시는 거 방해할 거예요.”

     

“그러세요. 전 괜찮으니.”     


간호사는 아내의 팔에 혈압계를 연결하였다.     


“정상이네요.”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도형은 그녀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럴 시간이 없다는 듯 빠르게 병실을 빠져나갔다.      

간호사가 나간 후 도형은 아내의 얼굴은 보았다.

사고 때 생긴 상처들은 이제 거의 다 아물어 가고 있었다. 부어있던 이마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

 그는 아내의 환자복 단추를 하나 풀고 그녀의 가슴에 손을 넣었다.

심장의 진동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도형의 마른 손은 아내의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없었다. 손을 옮겨가며 심장의 진동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가슴에서 손을 빼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이번에는 아내의 맥박을 느끼려고 노력하였다. 아주 희미하게 느껴지는 맥박을 찾은 후 도형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 당신 힘들면 그냥 떠나도 돼. 가고 싶으면 가고, 다시 살고 싶으면 일어나요. 이렇게 너무 오래 누워있지 않았으면 좋겠어. 당신 떠나도 나 많이 슬퍼하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도형은 진심을 담아 최대한 부드럽고 따뜻하게 아내의 귀에 속삭였다.      

왜 그런 이야기가 자신의 입에서 나왔는지 도형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도형은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도형은 눈물이 아내의 손에 한 방울 떨어지는 것을 보고 비로소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도형은 노트북에서 눈을 떼어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 보았다.

새벽 세 시.

그는 세 시간 동안이나 노트북과 씨름을 하였지만, 그의 예상대로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도형은 노트북을 덮고 허리를 펴면서 보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가 정해놓은 간식 시간이다. 며칠 전에 사다 놓은 상자에서 사발면 하나를 꺼냈다.

순간 그가 오래전에 좋아하던 시가 떠올랐다.

사발면 용기를 사람의 해골로 표현했던 섬뜩한 시를.     

“해골에 담긴 밥을 먹고 오면 멋진 글이 써지겠지.”


병실 구석에 있는 흰색 냉장고에서 김치가 든 작은 유리병 하나를 들고 도형은 병실을 나왔다. 복도 끝에는 환자 보호자가 식사를 하거나, 병실을 답답해하는 환자들이 와서  TV를 보기도 하는 작은 휴게실이 있다. 도형은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사발면에 담고 옆 테이블에 놓인 신문지를 여러 번 접어 사발면 위에 얹었다.      


도형은 의자에 앉은 채로 자신의 오른쪽 벽면에 있는 가로, 세로 30cm 정도의 두 쪽짜리 작은 창문을 통해 어두운 밖을 보았다. 그는 스마트 폰으로 제주도 남쪽에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뉴스 기사를 보고 난 후, 작은 창을 통해 하늘을 보았다. 새벽에 별을 찾아보는 것이 도형의 새로운 습관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사발면이 익는 동안 창가로 걸어와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별을 찾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별도 찾을 수 없었다. 별을 찾아 헤매던 도형의 시선은 옆 건물에서 작은 움직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멈추었다.

옆 건물은 병원 건물보다 두 세층 정도 낮은 고시원 건물이다.

 병원이 6층 건물이니 고시원은 아마 4층쯤 되는 것 같았다. 도형은 그 낡은 고시원 건물 옥상에서 희미한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공부를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경제 사정이 어려워 고시원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인지 도형은 궁금했다.     


“ 저 사람도 많이 힘들겠네. 이 시간까지 잠도 못자고...”      

도형은 혼잣말을 했다.


도형은 요즈음 의도적으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혼잣말을 하면 옆에 누군가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혼잣말은 말하는 사람 자신을 불쌍하게 만드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도형에게는 작은 안도감을 주기도 하였다.     

 순간 도형은 옥상에 있던 사람이 시멘트로 좁게 만든 난간 위에 올라서는 모습을 보았다.

도형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사람 뛰어 내리려 하네.”      


그는 큰소리로 혼잣말을 해가며 계속 그를 관찰했다.


옥상 위 남자는 좁은 난간 앞쪽으로 바짝 다가서더니 양 팔을 벌렸다.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듯 보였다.    

  

“안 돼요”

도형은 자신도 모르게 힘껏 외쳤다.     


“ 안 돼요. 뛰어내리면 안 돼요.”      

남의 일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왔던 그가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행동에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죽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죽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던 그였다. 심지어 죽고 싶은 사람은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그였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그의 죽음을 목격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도형의 소리를 들은 남자는 도형이 있는 쪽을 잠깐 바라보더니 조용히 난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아주 빠른 동작으로 옥상 문을 열고 사라져 버렸다.     

도형은 잠시 그 남자가 들어간 옥상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뛰어 내리려 했어.’

도형은 생각했다.      


‘내일, 아니면 며칠 후에라도 반드시 뛰어 내릴거야.’      

도형은 그 사람의 죽음이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이 늘 불안 속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확한 이유 없이 평생 느껴왔던 그의 불안은 그를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도형은 늘 그 정체불명의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불안의 원인이 확실하다.

그 옥상 남자의 죽음 때문이었다.

자신의 병실에는 죽어가는 사람이 두 사람이나 있는데, 건강한 사람이 죽으려 한다는 것은 중학생들의 허세처럼 느껴진 것이다.      

도형은 그의 모습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나 옷차림은 더더욱 기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둡고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던 그 남자의 눈빛은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얼굴 모습까지 상상할 수 있었다.

아주 슬픈 눈빛을 가지고 있는 작고 마른 얼굴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무슨 이유로 죽고 싶었을까?’     

도형은 그를 죽고 싶게 만든 이유를 상상했다.

자신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슬픈 사연이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도형은 어쩌면 자신의 소설에 그의 사연이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을 만나봐야겠다. 그리고 사연을 들어봐야겠다.’      

도형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도형은 병실로 돌아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써 왔던 글을 또 고치고 고치며 몇 시간을 보낸 후 창밖이 서서히 밝아오는 것을 보았다. 도형은 아내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간이침대에 얇은 담요를 덮고 눈을 감았다.

도형의 머릿속에는 또다시 원하지 않는 잡념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들이 왜 머릿속에 떠오르며 자신을 괴롭히는지 자신의 뇌를 원망하다 도형은 얕은 잠에 빠져 늘 꾸었던 악몽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도형은 간병인이 들어오는 발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아 미안해, 나 때문에 깼나보네. 내가 좀 더 조용히 들어올 걸 그랬다. 좀 더 자요. 아직 일곱시 반 밖에 안됐어.”


그녀는 활짝 웃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에요. 이미 깨어 있었어요. 졸리면 낮에 좀 자면 돼요.”     

도형은 깍지낀 두 손을 위로 올리며 이야기했다.   

  

“그럼 그러든지. 어젯밤에 우리 교수님은 아무 일 없었지?”     


“전혀요.”     


“그렇겠지. 그래도 사람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 잠깐 깨어 날 수도 있다고 하니 잘 지켜봐야겠어.”     

간병인의 말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할 말이요?”     


“그럼. 이 사람, 이 나이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겠어. 억울한 일도 참 많았을거야. 그러니 하고 싶은 말도 많지 않겠어?”     


“난 할 말 없을 것 같은데요.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냥 아무 말 없이 편히 돌아 가시는게...”     


도형의 말을 듣고 간병인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나 같으면 할 얘기 못하고는 편히 죽지도 못 할 거야. 세상사람들에게 최소한 욕이라도 한바탕 해 대든지.”


간병인은 진지한 표정을 풀고 도형이 좋아하는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 죽기 전에 보고 싶어 할 사람은 없을까요?” 도형이 물었다.     


“ 그야 모르지만, 자식도 없었나 봐. 오래전에 이혼한 이후로 계속 혼자 산 것 같아. 그것도 확실하진 않아. 문병 왔던 같은 학교 동료 여교수가 다른 이에게 얘기하는 것을 얼핏 들었을 뿐이야.”  

   

“ 처음에 아주머니를 고용한 사람이 이 교수님 조카라고 했나요?”     


“ 그렇다는군, 몇 달 전에 한번 여기에 왔었어. 그 사람도 미국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는군. 이 집안사람들은 모두 공부를 잘했나 봐. 현재로서는 그 사람이 유일한 혈육이랄까?”     


“연락은 와요?”     


“ 그럼 오지.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내 휴대전화로 연락을 하지. 특별히 잘 부탁한다고 보너스까지 보내주고 있는걸. 좋은 사람인 것 같아. 하지만 나는 미안하게도 오늘도 똑같은 상태라고만 얘기해 줄 뿐이지만.”     


간병인은 옆 침대의 커튼을 닫고 정성스럽게 환자의 옷을 갈아입혔다. 그리곤 갈아입힌 환자복을 챙겨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도형은 어젯밤 의문의 남자가 갑자기 생각나 놀란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고시원으로 찾아가고 싶었지만, 자신이 찾아가도 되는 일인지 다시 생각했다.

순간 도형은 그 남자를 본 후 계속 생겼던 불안이 또다시 자신의 몸속 깊은 곳에서 기어나오고 있음을 느꼈다.      


“두 시간 만 기다렸다가 찾아가 보자.”     

도형은 아내가 의식을 잃고 병원에 들어 온 날부터 의식이 없는 아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단지 눈만 감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리 내어 말해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아내와 이야기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도형은 간만에 어젯밤 자살하려던 남자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 주었다. 마치 깨어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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