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공상 소설이나 영화가 많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다구?”
도형은 진정성 없는 얼굴로 맞장구를 쳤다.
“필요한 인구수를 정해서 공장에서 인간을 만들죠. 좋은 유전자들을 선별해서.”
“그럼 너무 개성 없이 비슷한 인간들만 만들어지는 거 아냐?”
“그렇지 않아요. 너무 개성들이 뚜렷한 사람들이 만들어지죠. 그렇게 완전히 다른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생명 공장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니까요. 지구에서는 태어나는 것부터가 심하게 불공평하잖아요. 또는 머리가 나쁘거나 몸이 약하거나, 하여간 취약한 탄생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 있잖아요. 우리는 생명 탄생부터 불공평이나 불공정을 최대한 배제하는 거죠.”
“처음부터 그렇게 한 것은 아닐 거 아냐? 처음에는 엄마가 배에서 키우다가 아이를 낳았겠지?”
“그랬겠죠. 하지만 아주 오래전 이야기에요. 개인적으로 잉태해서 아이를 낳은 사람들도 있긴 있어요. 하지만 아이를 낳았더라도 자신들이 키우지는 못하죠. 아이를 키울 만큼 자식에게 헌신적이지 않아요. 자연 출산 된 아이들만 모아서 키워주는 기관이 있어서 대부분 다 거기에서 양육시키죠. 그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관계를 지속하기는 하지만 큰 의미를 갖진 않아요. 지구인들과 같은 부모 자식 관계는 전혀 아니죠.”
“그래? 사람들의 수명은 얼마나 되는데?”
“200년 정도요.”
“200년 동안 건강하게 살아?”
“의학이 발달 되어서 나이 든 사람들도 거의 젊은이들과 같은 몸을 가지고 살죠. 200년 정도 살면 몸이 급격하게 약해져 금방 죽게 되는데 그전까지는 건강하게 사는 편이에요.”
“완전 지구인들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삶이네. 건강하게 살다가 갑자기 죽는 것.”
“하지만 그곳 사람들이 이미 다 멸종되어 버렸어요.”
재임은 덤덤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도형은 재임의 말을 믿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극비리에 준비하던 신 검증 프로젝트의 계획을 변경하였다.
세계 모든 사람이 검증 과정을 지켜볼 수 있도록 생방송으로 중계하기로 하였고 한국 정부와 서재임이 이에 동의했다.
서울 강남에 있는 커다란 체육관에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인류 최대 이벤트가 준비되고 있었다.
체육관 한가운데에 원형 무대가 만들어졌고 그 무대 가운데에 또 원형 테이블이 올려졌다.
30명 정도의 인원이 토론을 할 수 있도록 30개의 테이블 마이크와 검은색 의자가 배치되었다.
테이블에는 30개의 이름표가 놓여 있고, 재임과 도형의 이름표도 나란하게 자리 잡았다.
전 세계에 생중계할 수 있도록 수십 대의 카메라와 방송 장비들이 가득 찼으며, 관중석에는 전세계에서 선정된 수천 명의 언론인과 기자들이 초청되었다.
관중석 한쪽에는 검은 베일이 처져 있어 뭔가 비밀스러운 느낌이 들게 했다.
실시간으로 통역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수십 명의 통역사 자리가 한 쪽으로 배정되어 있고 그 옆으로 의료진들이 자리 잡았다.
진행은 미국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뉴스 진행자가 맡았으며 보조 진행자 5명 정도가 배정되었다. 귀빈석에는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60개국에서 온 지도자들의 자리도 만들어졌다. 드디어 한 시간 후면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신과 인간의 대토론회가 벌어질 예정이다.
도형과 재임은 대기실에 도착하였다.
“긴장되네. 드디어 시작이다.”
도형이 생수를 마시며 말했다.
“그러게요.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잘할 수 있을 거야. 지난번처럼 또 너가 정신을 잃을까 걱정이야.”
도형은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는 괜찮을 거예요.”
“어떻게 알아?”
“그냥 느낌으로...”
“이번에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그렇겠죠. 그들이 모두 믿을 때까지 진행된다고 했잖아요.”
“그러려면 며칠 밤을 새워도 모자랄걸?”
“그러라고 하죠 뭐. 오늘은 의료진들까지 다 와있다던데.”
“내가 또 정신을 잃을까 봐 그런가 보죠?”
재임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글쎄. 모르지. 하여간 이번에는 신이 누군가의 생명 에너지를 가져가지 않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래도 난 네가 걱정이야.”
“그냥 아무 생각 없어요. 기절하면 또 깨어나서 하고 또 기절하고 하죠 뭐.”
“농담하지 말고.”
도형은 진짜 걱정스러운 표정을 했다.
“농담 아니에요. 맘이 편해요. 내 뒤에 신이 나를 돌봐주시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선생님도 옆에 있고.”
“그래? 다행이군. 사실 난 여기 올 필요도 없었는데. 별로 할 일도 없고.”
“저 때문이잖아요. 선생님이 내 곁에 계셔야 제 맘이 안정된다니까요.”
“알았어. 꼭 붙어 있을게. 아무 걱정하지 말아.”
노크 소리에 도형이 일어나 문을 열었다. 린제이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왜 그렇게 서 있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저도 긴장이 되네요.”
“아마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긴장하고 있을 거예요.”
“그렇겠죠? 재임씨 준비됐어요?”
린제이가 물었다.
“저는 준비됐는데 우리 신께서 준비되셨는지는 모르겠네요.”
세 사람 모두 미소를 지었다.
“그럼 큰일이지.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데 신이 나타나지 않으면 큰일이지. 오늘 지구의 모든 사람이 다 보지 않을까?”
“그렇죠. TV뿐만 아니라 유튜브로도 라이브로 중계한다고 하잖아요.”
린제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대통령도 오셨어요?” 도형이 제이미에게 물었다.
“전 세계 지도자들이 다 와있는데 우리 대통령이야 당연히 오셔야죠.”
“오늘 신을 설득하려고 하지는 않겠죠?” 재임이 린제이를 보며 물었다.
“오늘은 신을 증명하기 위한 자리죠. 나중에 신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면 그다음 신을 설득하는 자리를 또 마련할지 모르죠. 하여간 오늘은 신의 증명이 우선이죠.”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정보 좀 들으셨어요?”
도형이 린제이에게 물었다.
“아니 전혀요. 미국과 영국 정부에서 준비했는데 보안이 엄청 철저해요. 우리나라 경찰이 거의 다 동원됐나 봐요. 지방에 있던 경찰들도 상당수가 올라왔어요. 미국 특공대까지 출동했어요. 도대체 뭘 어떻게 하려는지 저도 몹시 궁금해요.”
“하긴 전 세계 지도자가 거의 다 서울에 모여있으니 신경 쓰긴 해야겠죠.”
“이도형씨에게도 오늘 질문이 좀 이어지지 않을까요? 준비하셨어요?”
“저에게도요?”
“당연하죠. 재임 씨를 만난 과정과 재임 씨와의 관계를 물어보겠죠?”
“그냥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대답하면 되겠죠?”
“그럼 되는 거죠. 뭐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오늘 이후 혼란이 없어야 할 텐데요 걱정이에요.”
“재임 씨는 그런 것까지 걱정할 필요 없어요.”
린제이는 마치 친동생을 대하는 것처럼 재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래, 그냥 하는 거지 어차피 인류는 이제 3년밖에 남지 않았어. 죽든 말든 상관하지 말고 오늘은 기절하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고 하자.”
“네. 알았어요.”
재임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재임 씨, 뭐 좋아하는 노래 없어요?”
린제이는 가방에서 빨간색 소형 헤드폰을 꺼내며 재임에게 물었다.
“노래요?”
“네. 들으면 맘이 편해지는 노래요. 없어요?”
“글쎄요. 아는 노래가 별로 없어서. 참 코모도스라는 그룹 알아요? 그 사람들 노래 좋던데.”
“코모도스? 라이오넬 리치가 있었던 그 코모도스?”
“네 맞아요?”
도형과 린제이는 같이 웃었다.
“그 노래는 언제 들어봤어? 엄청 옛날 노랜데.”
“그냥 우연히 한 번 들었는데 맘에 꼭 들더라구요. 그래서 가끔 들어요.”
“그래? 어디보자 코모도스라...”
린제이는 스마트 폰에서 코모도스 노래를 다운받고 재임에게 헤드폰을 건네주었다.
“easy라는 곡이에요”
“네. 좋아요.”
재임은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도형은 재임이 편안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오늘 신의 존재가 증명될까요?”
도형이 린제이를 보며 물었다.
“그래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있겠죠. 그래도 최소한 지금보다는 늘어나긴 하겠죠.”
“인류의 종말을 인정하긴 어렵겠죠.”
“정말 3년 후에 인류가 멸종될까요? 이도형씨는 이 꿈 같은 사실을 믿으세요? 정말 실감이 나지 않아요.”
린제이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만 명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죽어버린 것을 보셨잖아요.”
“봤죠. 그래도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럼 오늘 잘 지켜보셔야겠네요. 오늘 신의 소리를 잘 들어보셔요.”
그때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젊은 청년이 짧게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나가실 시간입니다.”
도형은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던 재임의 팔을 잡았다.
“나갈 시간이래.”
재임은 다시 긴장하는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시작이군요.”
“그래. 파이팅하자.”
“그래요. 힘내세요.”
린제이도 주먹을 쥐어 올리며 재임을 응원했다.
“네. 가죠.”
30개의 테이블에는 이미 20명 이상의 주인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도형과 재임은 자신의 이름이 있는 의자를 찾아 앉았다.
도형은 관객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미 수천 명의 사람이 앉아 있는데도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관객 모두 숨죽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