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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무하 Oct 24. 2024

신의 고백(18화)

밤 열 시가 넘어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마친 대통령은 린제이를 불렀다.

조명이 모두 켜져 있지 않아 약간 어두운 분위기의 대통령 직무실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았다.     

“불을 켤까요?”

린제이가 공손하게 대통령에게 말했다.     

“아니, 지금이 좋은데요.”

 대통령은 무슨 말로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이마에 손을 올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통령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질문하듯이 물었다.     

“무슨 말씀이에요?”

린제이는 특유의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말했다. 그 미소 속에는 자신이 대통령을 응원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시기에 내가 대통령이라는 것이 원망스럽네요. 아무것도 판단할 수가 없어요. 조금 전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했어요.”     

대통령은 잠시 침묵하고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서재임을 없애 달라고 부탁하네요.”

린제이는 대통령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네? 서재임을요? 전혀 예상 못 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서재임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가 사라진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전혀 없는데...”

린제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과 독일, 프랑스에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 같아요. 서재임을 없애고 없었던 일로 하자. 그러면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일을 잊기 시작할 것이고 지금의 혼란은 조금씩 진정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가 너무 혼란스러워져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이고, 3년도 되기 전에 아마 지구는 멸망할 수도 있다. 이것이 그들 정부에서 내린 결론이에요.

우리가 서재임을 보호한다고 해도, 전 세계에서 그를 죽이기 위한 시도가 계속 이어질 것 같아요.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 안 되는 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의 나로서는 전혀 판단할 수가 없네요. 국무회의를 하기 전에 그냥 린제이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 불렀어요. 늦은 시간인데 미안해요.”

린제이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서재임 말에 따르면, 신은 인간에 대하여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우리 인간 자신들보다 더 많이요.

전 세계에서 지금과 같은 반응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며, 서재임을 없애고, 이 일을 덮어 버릴 것이라는 걸 이미 예상 하고 있을 거예요.”     

대통령이 말을 받았다.

“다 알고 있다면 신은 왜 인류에게 이런 혼란을 준걸까요?”     

“인간들에 대한, 인류에 대한 신의 마지막 시험, 아니 실험 아닐까요?”               

“신의 뜻대로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요?”

대통령은 또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렵긴 하지만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세상이 어떻게 반응하고 변해가는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린제이는 자신이 한 말에 자신이 없었다.     

“서재임 씨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빨리 그들에게 알려 줘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테러범들로 가득 찰 것 같아요. 아니면 3차 대전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도 있어요.”     

“대통령께서는 어떤 생각이세요?”     

“난 신의 뜻대로 인류가 따라 주었으면 하는데.”     

“제 생각도 같아요. 그럼, 서재임부터 보호하세요. 만약 우리가 그를 없애버리면 신은 지구인들을 그 즉시 사라져 버리게 할 수도 있을 거예요.”     

“서재임을 우리가 어떻게 보호해야 하지? 어디로 옮겨야 할까요? 그가 병원에 없다는 것을 먼저 알려야 하겠지? 서재임과 같이 있는 이도형도 같이 옮겨야 할까요?”

 대통령은 마치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듯이 린제이에게 물었다.     

린제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 없는 말투로 대답하였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서재임이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이고, 이도형을 매우 신뢰하고 또 의지하는 것 같아요.”     

“이도형의 아내는 지금 혼수상태라면서요. 부인도 함께 옮겨야지요?”     

“당연히 그래야죠. 혼자서는 어디도 가지 않을 거예요.”     

“그럼, 아무도 모르게 어디로 옮겨야 할지 의논해 봐야겠네요.”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 인류의 80% 이상이 신 검증 방송을 시청하였다. 생방송을 보지 못한 사람은 유튜브나 또 다른 동영상 플랫폼을 통하여 신의 음성을 들었다.     

종교가 없던 사람들도, 신은 없다고 생각한 무신론자들도 모두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세상에는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종교가 탄생했다.     

재임은 새로운 교주, 아니 새로운 메시아가 되었다.     

기독교를 믿던 사람들의 일부는 재임을 재림하신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였다.     

불교 신자들은 부처님의 소리라고 믿었고, 인도 사람들은 그들의 신이라고 생각하였다.     

죽음을 두려워하던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말에 위안을 받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신의 충고대로 세상을 사랑과 평화의 세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전 세계의 대도시들은 폭력과 약탈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고, 무법천지로 변하였다.     

남은 3년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들의 쾌락을 채우는 데에만 쓰겠다고 결정한 사람들도 세상 곳곳에 넘쳐났고, 반면에 수많은 곳에서는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기 위해 크고 작은 공동체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신의 경고대로 서로 사랑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고 애를 쓰며 죽음을 기다렸다.               

이제 세상은 이전과는 완전히 변해버렸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오던 방식과 신념을 버리지 않고 예전처럼 살아가려는 사람의 수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나라와 국경은 그 의미를 거의 잃어버렸고, 세상은 재임의 입을 통하여 선포된 신의 뜻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로 나뉘게 되었다.     

각국의 권력과 부를 쥐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애써 차지한 기득권과 수많은 재산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들 역시 그들만의 세상을 계획하고 만들어 갔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전 세계의 유명한 과학자들을 불러 모았고, 거대한 땅에 신의 힘이 미칠 수 없는 일명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를 구상하였다.

일정 금액 이상을 투자한 사람들은 이 방주에 들어갈 자격을 부여받았고, 신이 제시한 3년 안에 이 방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자본가들에게 고용된 과학자들은 신의 속성에 대하여 많은 의견을 제시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어떠한 빛이나 라디오파를 포함한 전자기파, 방사능, 소리, 공기 등이 들어올 수 없는 거대한 공간을 만들어 갔다. 대략 십만 명 정도가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고 밤낮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이 거대한 공사가 진행되었다.     

마치 바벨탑이 새로 지어지는 듯했다.     


미국 대학의 한 연구실에서도 또 다른 모의가 시작되었다.     

한국계 물리학 박사로 미국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크리스 리 박사는 선임 교수인 리터만 교수의 부름을 받았다.     

“이 사태를 어떻게 분석하고 있나요?”     

크리스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교수는 크리스에게 물었다.     


크리스는 당황하며 어떤 사태냐고 물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사태 말이에요. 신이 인간을 몰살하겠다는 이야기요.”

교수는 대답 대신 한숨을 쉬었다.     

“이대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리터만 교수는 약간 화가 났다는 듯이 말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방법이 없잖아요. 그냥 받아들여야죠. 어차피 인간은 모두 죽잖아요.”     

교수는 크리스의 말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비밀 모임이 조직되었어요. 박사도 참여해 줬으면 해서요.”     

크리스는 많이 놀라지 않았지만, 어떤 모임인지 궁금해했다.     


“무슨 모임인데요?”

리터만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기도 모임 같은 건가요?”     

리터만은 혼잣말은 하는 것처럼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신은 없애버리려고 해요.”

크리스는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네? 신은 어떻게 한다고요?”

“신은 없애버린다고. 신을 죽여버리려는 모임이에요.”               

여전히 리터만의 목소리는 작았다.

크리스도 리터만의 목소리 크기에 맞추어 다시 물었다.     


“신을 죽이는 모임이라고요? 그게 가능해요?”     

“당신이 좀 도와줘야겠어요.”     

리터만은 크리스의 어깨에 손을 얻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요? 어떻게요?”     


“한국말 할 줄 알죠?”     


“한국말이요?”     

“네, 당신은 한국 사람이잖아요.”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지만 유창하지는 못해요. 하여간 왜 그걸 물어보시죠?”     

“신의 말을 전하는 서재임이란 사람이 한국 사람이잖아요. 박사가 한국에 가서 그 사람을 만나봐 줘야 할 것 같아요.”     


“제가요?”

크리스는 당황스러웠다.     

“네, 신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얻어야 해요. 우리가 그와 싸울 수 있도록.”     

크리스는 어이없다는 듯이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무슨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도 아니고. 신과 싸우다니요. 그건 말도 안 돼요.”     

“그럼, 인류의 멸망을 그냥 앉아서 지켜보자는 건가요? 당신도 고생 끝에 이제 학계에서 명성을 얻어가고 있어요. 이제 밝은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끝내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신과 맞서다니요. 그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예요.”    

 

“나도 알고 있어요. 0.1%의 가능성만 있더라도 시도해야 한다는 의견이에요.”     

“의견? 누구의 의견이요?”     


“미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이요.”     

“네? 그들이 누군데요?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을 얘기하시는 건가요?”     

“뭐, 각계각층에서 미국이 돌아가도록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지요. 이 박사 당신을 우리 팀에 넣어주겠다는 거예요. 당신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크리스는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껴 의자에 주저앉아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어차피 죽는 거라면, 죽기 전에 재미있는 게임 한 번 하고 죽는다고 생각해요.”

리터만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나요?”     

“우선 한국에 가서 서재임을 만나요.”     

“그가 어디 있는데요? 한국 정부에서 서재임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을 텐데요. 그를 만나는 게 가능할까요?”     

“그건 우리가 다 알아서 할게요.”     

“그를 만난 다음에는요?”     

“신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얻어야지요. 아주 사소한 것까지. 신을 없앨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그가 나에게 신에 대한 정보를 줄 리가 없잖아요. 그를 만난다 해도 그 일은 불가능할 거예요.”          

“우리 모두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어요. 당신이 신에 대한 정보만 정확하게 알아 온다면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과 싸울 거예요. 우리 미국의 모든 능력을, 아니 인간의 능력을 총동원할 거예요. 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인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 해요.”     

“하지만….” 

망설이던 크리스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은 우리의 말을 듣고 있을 거예요. 이일은 불가능해요.”     

“그냥 시키는 대로 해요.” 교수는 크리스에게 소리쳤다.     

교수의 외침을 듣는 순간 크리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의욕이 솟구쳐 오른다는 것을 느꼈다. 뭔가 목숨 걸고 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생각이 그를 흥분시키기까지 하였다.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은 후 크리스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알겠습니다. 시키는 대로 해볼게요.”     

“고마워요. 잘 생각했어요.” 


리터만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부탁할게요. 크리스 리 박사 손에 인류 전체의 생존이 달려있다고 생각하세요. 인류역사상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알겠습니다.” 

크리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우선 서재임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도 인간이니까 우리 편이 돼야지.

그도 죽고 싶진 않을 테니까. 우리 정부에서 한국 정부에 서재임을 만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압력을 넣고 있어요.

쉽진 않겠지만 허락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한국에 갈 준비를 하면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리터만은 크리스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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