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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무하 Oct 23. 2024

신의 고백(17화)

재임의 맞은편에 앉은 메인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대토론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된 이유를 간단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5월, 그러니까 지금부터 3개월 전 한국의 여러 지역에서 정확하게 1만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이 엄청난 혼란에 빠져있던 와중에 이 사건을 미리 예견한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고, 그 현수막을 만든 분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계신 서재임 씨와 이도형 씨 두 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두 분 중 한 분인 서재임 씨는 자신이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고 주장하셨고, 1만 명의 한국 사람들이 죽은 이유가 신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것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신의 명령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신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고 합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자신에게서 나왔으며, 정확히 3년 후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다시 거두어 가겠다고.

그리하여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지난달 한국 방송국에서 자리를 마련하였고, 그 자리에서 동물들과 식물들이 순식간에 생명을 잃어버리는 광경을 우리는 목격하였으나 서재임 씨가 갑자기 정신을 잃는 바람에 그 행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전 세계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지구상의 많은 사람은 서재임 씨가 말하는 신의 존재를 믿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늘 행사가 마련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은 심리학, 철학, 물리학, 생물학, 정치학 등 각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들이십니다.

이분들이 신과의 대화를 통하여 정말 신이 존재하는지 의견을 나누고 오늘 결론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물론 오늘 결론을 모든 인류가 다 신뢰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결과는 많은 이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과연 만장일치의 결정이 나올 수 있을지 저도 몹시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신의 존재 증명을 위한 대토론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 순서로 서재임 씨가 신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준비되셨나요. 서재임 씨?”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재임은 눈을 감았다. 수많은 사람이 모인 이곳에 정적이 흐른다. 3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재임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지구에 생명의 근원인 신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지구인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나는 지구에 처음 생명을 만든 존재입니다.”     

 재임의 목소리는 권위를 가진 음성으로 변화되었다. 체육관에 모인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하였다. 크게 소리치는 사람은 없었지만 모두 작은 소리로 신의 목소리에 반응하였다.     

“아주 오래전, 우주의 한 장소에서 나는 깨어났습니다. 난 나의 존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자아를 느꼈습니다.

어두운 우주 공간 한복판에서 깨어난 나는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주변에는 수천 아니 수만 개의 의식이 나와 같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의식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는 없었지만, 나와 비슷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우주 전체로 흩어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누군가의 명령이었는지, 아니면 우리의 본성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우주 곳곳으로 흩어졌습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명령 아니 본능을 느꼈습니다.

생명을 창조하자. 그리하여 우리의 힘을 키워나가자.

나는 우주를 헤매고 다니다가 지금 여러분이 사는 이 작은 행성으로 날아왔습니다.

나의 몸을 조각내어 지구에 뿌렸습니다.

아니 내 몸을 지구에 강한 속력으로 수십 번, 수백 번 충돌시키니 내 몸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나의 의식만은 계속 지구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서진 내 몸의 조각들에서 작은 생명체들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주 작은 미생물들이었지요. 이 유기물들이 생명의 시작이었습니다. 수십억 년을 나는 지켜보았습니다. 작은 미생물이 점점 자라나고 진화되는 모습들을요. 결국 여러분 같은, 그리고 나처럼 의식을 가진 인간까지 만들어지더군요.

모든 생명체는 나의 분신인 생명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모두는 나의 생명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생명체가 죽는 순간 그 에너지는 그 생명체의 몸에서 빠져나와 다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나는 지구에서 수천수만 배 몸집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나의 모든 생명 에너지를 거두어들이라는 우주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이제 지구를 떠나야 합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종말을 고할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모두 내게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영혼은 나의 생명 에너지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나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모두 내 말은 믿고 마지막 생을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내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재임은 말을 멈추었다.     

사회자가 놀란 듯이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네.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럼 첫 번째 토론자이신 심리학자 레인 박사님부터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괜찮으시죠?”     

사회자는 재임을 보고 말했다. 재임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떡였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백발의 박사는 약간 긴장된 말투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 저는 미국 하버드 대학의 레인 교수입니다. 첫 번째 질문드리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우리에게 왜 3년이라는 시간을 주신 것인가요? 제가 듣기로는 몇 달 전에 지구를 떠나실 계획이었는데 서재임 씨가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아시고 우리에게 3년이라는 시간을 주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말 우리에게 3년의 시간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까? 다른 이유는 없으십니까?”     


재임이 입을 열었다.     

“불행하게도 인간은 너무 불완전하게 진화하였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는 당신들의 진화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관여할 수 없었습니다. 아쉽게도. 인간들의 마음속에 있는 악은 너무 많은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나는 인간들처럼 뇌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정이 인간과 같지 않습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그동안 저지른 죄악은 너무 끔찍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비참하고 억울하게 죽어갔습니다. 그 죽은 영혼들이 모두 나에게 와 나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나의 몸은 이미 인간들이 상처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남은 3년 동안 행복한 영혼으로 지구가 가득 차길 원합니다. 그래서 3년이라는 시간을 당신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동안 새로운 삶을 살기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고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나의 상처를 치료해 주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저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지금까지 지구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의 영혼이 당신에게 아니 당신과 합해졌다는 뜻인가요?” 레인이 질문했다.     

“그렇습니다.”     

“그럼, 당신은 그 모든 사람의 삶에 대하여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까?”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작년에 돌아가신 내 어머니의 영혼도 당신 속에 존재한다는 말인가요?”     


“당연합니다.”     

“그럼 내 어머니의 삶에 대한 나의 질문에 당신이 대답해 주실 수 있습니까?”     

“당신 어머니의 기억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당신과 어머니만 알고 있던 사실을 질문하십시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나에게 주신 선물은 무엇이었나요?”     


“아버지가 쓰시던 회중시계.”     

박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하지만 차분한 말투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겁니까?”     


“그렇습니다. 시계 뒤에 W.D. 라는 이니셜이 쓰여 있습니다.”

박사는 말은 떨리기 시작하였다.     

“나의 어머니가 나에게 부탁하신 마지막 말씀은 무엇이었나요?”     

“당신의 아들 케인에게 연락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박사는 말을 잊지 못하였다.

사회자가 다시 말은 이었다.     

“지금 박사님이 질문하신 물음에 정확한 답을 하셨나요?”

박사는 고개를 끄떡였다.     

사회자는 레인 박사가 더 질문이 없다고 손을 흔드는 것을 보았다.     

“다음 순서로 넘어가겠습니다. 사회학 박사인 루터 교수님 말씀해주세요.”     

수염을 길게 기른 또 다른 60대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신께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신께서는 미국 국회 도서관에 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곳에는 수십억 권의 책들이 있습니다. 인류가 만들어 놓은 엄청난 지식과 예술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진리를 알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해 왔습니다. 당신이 인간이 어떤 존재라는 것을 이제 알려주었습니다. 이제는 수천 년 동안 인간들이 알고 싶어 했던 진리를 알았습니다.

인간은 당신에게서 나왔고 또 당신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주의 법칙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계속 삶을 이어가기를 원합니다. 정말 다른 방법이 없단 말인가요?”

재임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서 큰 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오늘 여러분의 질문에 얼마든지 대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랫동안 이 자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미리 약속받은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생명 에너지를 가져가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의 일부를 지금 어기려고 합니다.

얼마 전 나는 새로운 나에게 새로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명 에너지를 잠시 여러분 몸에서 꺼내는 것입니다. 물론 생명 에너지는 다시 여러분 몸속으로 다시 들어갈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궁금한 것은 내가 3년 후에 온 인류의 생명을 가져갈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려 하는 것 아닌가요?

여러분들이 아무리 인간의 생명이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나를 설득하려 하거나, 또는 부탁하거나, 아무리 사정을 해도 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나의 생각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입니다. 우주의 법칙입니다.     

나는 분명 당신들 생명의 근원이며 당신들의 생명을 내게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지금 훌륭하신 분들이 모든 지구인을 대표하여 저와 이야기하고 저의 이야기가 사실인가를 판단하러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지금 이곳에 모여있는 모든 생명을 제가 잠시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재임은 마치 마법을 부리듯이 손을 높이 들어 흔들기 시작하였다. 순간 거대한 체육관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이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맨들을 제외하고 모든 이가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회를 보던 사회자마저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이 모든 장면이 수십 대의 카메라에 녹화되었다.

재임의 옆에 앉아 있던 도형마저 쓰러져 버렸다.

이제 그곳에 모인 사람 중에서 재임과 카메라맨들을 제외하곤 모든 사람이 쓰러져 버렸다. 카메라맨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물었다.     


“지금 모두가 죽어버린 건가요?”     

재임이 차분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카메라맨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재임은 다시 손을 들어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쓰러져 있던 모든 사람이 하나둘 다시 깨어나기 시작하였다.     

깨어난 사람들은 마치 깊은 잠에서 갑자기 깨어난 듯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사회자도 깨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가 어떻게 된 것인가요?”     

재임은 역시 조용하고 권위 있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이곳에 계신 모든 분은 1분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여러분은 1분간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셨나요?”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은 경이로운 눈빛과 표정으로 재임을 바라보았다. 그중 절반은 눈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진짜 신의 모습을 보듯 우러러보았다.

무대 밖에 있던 사람들은 재임을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기 시작하였다. 그곳은 마치 종교집회가 열린 교회의 모습이었다.     

“이제 제 말을 믿으시나요?.”

재임이 더 큰 소리로 외쳤다.     


“믿겠습니다. 믿겠습니다.” 여기저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모습을 전 세계 사람들은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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