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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 Jun 04. 2022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

<그림:박새길>

딸들아.
엄마는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왠지 가슴이 두근거려.
선물을 주고받고
맛난 음식을 해 먹던
추억이 남아있어서일 거야.
너희도 좋은 추억이 가득 쌓인
그런 날들이 많아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7.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



미국은 몇 개의 특별한 날을 정해 놓고 가게마다 진열상품을 바꿔가며 손님들을 유혹한다. 2월의 밸런타인데이, 4월의 부활절, 7월의 독립기념일, 10월의 핼로윈, 11월의 추수감사절, 그리고 12월의 크리스마스가 대표적이다. 그중 가장 으뜸은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돈이 있거나 없거나, 신자이거나 아니거나, 집집마다 선물과 맛있는 음식을 잔뜩 준비한다. 그래서 일 년 중, 쇼핑센터가 가장 붐비는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절대 쇼핑을 하지 않았다. 극성수 기라서일까? 그 기간에는 도통 세일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 마련. 크리스마스 선물을 빅세일이 열리는 26일 이후에 줄 수도, 그렇다고 할인에 무릎 꿇고 산타의 정체를 밝혀 아이들의 동화적 상상력을 짓밟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우리가 찾은 방법은 11월 추수감사절 끝나고 잠깐 있는 세일 기간에 선물을 미리 사놓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가 사놓은 선물과 상관없이 원대한 포부를 밝혀왔다.


“산타 할아버지가 올해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주면 좋겠어요.”


유진이의 간절한 눈빛을 똑바로 보며 나는 아이 생각에 입김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산타 할아버지는 그런 고가의 선물을 주고 싶지 않으실 거야. 누구한테만 비싼 선물을 주면 선물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도 생기잖아.”


옆에서 현주가 언니를 거들었다.


“아니에요. 내 친구도 작년에 산타 할아버지가 아이패드를 선물해 주셨대요. 걘 욕하고 친구들 괴롭히는 앤데......”

“가끔 자기 아이만 산타 선물을 못 받을까 봐 걱정돼서 부모가 대신 사주기도 하나 봐. 진짜 산타 할아버지는 그런 것에 돈 쓰지 않는데 말이야.”

“엄마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적절한 답을 못 찾고 남편을 바라보자 남편은 능청스럽게 아이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부모들은 산타 할아버지랑 연락하거든.”

“아~ 그래서 우리가 착한 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아는구나.”

유진이는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의도대로 끌고 가려고 아이들한테 거짓말한 것도 미안하고, 갖고 싶은 걸 사주지 못했던 것도 미안하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뻔한 부모였기에 ‘이다음에 돈 벌면……’이란 말로 우리 부부는 서로를 달래주며 몇 년의 크리스마스를 그렇게 보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아이들은 잠이 더 오지 않게 마련이다. 실눈을 뜨고 현주가 칭얼댔다.


“아빠! 산타할아버지 언제 오시나 전화해봐요."


그러자 유진이가 현주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현주 니가 애는 애구나!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러 들어갔는데 전화벨이 울린다고 생각해 봐. 잠든 애들 다 깨우겠지. 그러면 애들한테 잡혀서 우리한테 못 오셔. 그러니까 빨리 잠이나 자자.”


언니의 설명을 듣고 현주는 두 말 않고 잠을 청했다.

며칠 후, 학교에서 돌아온 유진이가 심각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엄마는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바보 취급받으면 기분 안 좋겠죠?”

“그럼. 기분 안 좋지.”

“사람들이 다 아는 비밀을 나만 모르고 아니라고 우기면 바보 같겠죠?”

“그렇지.”

“그럼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알았어.”

“산타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죠?”

“그럴걸.”


조금도 망설임 없이 인정하는 엄마를 보고 유진이는 몸이 바짝 달았다.


“그럼 이때까지 엄마가 날 속인 거예요?”

“아니.”

“산타 할아버지는 세상에 없다면서요.”

“남들은 없다고 하는데 엄마는 있는 것 같기도 하거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엄마도 본 적이 있어야지. 하긴 산타가 다 백인인 게 이상하고, 그렇게 비만인 할아버지가 하룻밤 사이에 그 많은 집을 다닌다니는 것도 이상하고, 우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안 준다면서 차별하는 것도 이상해. 그건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 같아. 그런데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몰래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거든. 그걸 보면 또 산타가 있는 것도 같아.”


유진이는 뭔 소린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엄마도 잘 모르겠어.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될까랑 산타가 진짜 있나 하는 건 사실 어른들도 몰라. 어쨌거나 나랑 한 가지만 약속해. 산타가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큰 비밀을 알게 된 이상 너도 우리 편이 된 거야. 그러니까 아직 산타의 비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걸 말해서는 절대 안 돼. 이건 나이 든 우리끼리의 약속이야. 알았지?”


엄마랑 같은 편이 된 유진이는 어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영화에서처럼 크리스마스 보내면 안 돼? 서로 선물도 주고, 촛불 켜고 양식도 먹고!



아버지는 대구에서 유명한 양말 공장을 경영했다. 사업이 정점을 찍을 무렵, 자식들을 대한민국의 수도에서 교육시키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모든 걸 정리해서 서울로 상경했다. 돈덩어리가 서울로 올라간다는 소문이 떠들썩하게 났을 만큼 우리 집은 넉넉했다. 하지만 연이은 사업 실패와 빚보증으로 결국,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가 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리지 않았다.


부모님은 처음부터 자식 교육 하나만 바라보던 분들이었다. 집을 줄여가도 소위 강남 8 학군이라 불리던 교육의 중심지에서만큼은 끝까지 버텼다. 덕분에 어린 시절, 나는 대궐 같은 맨션 생활도 해보았지만 부촌 속의 빈민으로도 살아보았다. 물론 밥을 굶거나 돈이 없어서 학교를 못 다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대적 빈곤도 어린 마음에는 꽤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우리 집의 가장 힘든 시절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와는 참 많이 다르구나 생각되었다. 그중 하나가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이었다.

친구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부모로부터 선물을 받고 가족이 다 함께 외식하거나 여행을 간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선물을 하거나 크리스마스 식탁을 별다르게 차리는 법이 없었다.

그런 내가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된 것은 큰언니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언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는 신식 집안이 부럽다고 했다. 딸바보였던 아버지는 언니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크리스마스트리와 함께 장식품을 잔뜩 사 왔다. 그걸 처음 보았을 때의 기쁨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된 느낌!

우리는 조금 과하다 싶게 사온 색색이 반짝이로 초록 플라스틱 나무를 칭칭 감았다. 어린 내 눈에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멋져 보였고 벌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렇게 첫해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는 것으로 만족했다.

다음 해 크리스마스에는 파티도 열었다.


“엄마. 캐럴 들으면서 김치랑 된장국 먹으면 안 어울려. 양식 만들어 줘. 응?”


엄마는 종알종알 바라는 것도 많은 딸들의 성화에 못 이겨 동그랑땡 비슷한 햄버거 스테이크를 만들어 주었다. 그땐 국적모를, 모양만 양식인 그게 얼마난 맛있던지!

하지만 크리스마스트리를 켜놓고, 캐럴을 들으며, 양식을 배불리 먹고 나서…… 그다음에 뭘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부모님은 성탄 철야미사에 갔고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성탄특집극을 보는 게 전부였다.


어느 해인가 셋째 언니랑 나는 머리를 짜내 뜻깊은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저금통을 털어 가족들을 위한 선물을 산 것이다. 아빠에게는 양말, 엄마에게는 팬티, 오빠를 위해서는 손수건, 언니들에게는 복숭아 향이 나는 립밤.

그렇게 사 온 선물을 들키지 않게 숨기는 일이 가장 큰 문제였다. 셋째 언니와 함께 머리를 짜내 생각한 곳은 바로 안 신는 계절 신발을 쌓아두던 신발장이었다. 그곳이라면 여름이 오기 전까지 절대 열어볼 일이 없었다. 우리는 덤으로 선물을 넣을 각자의 양말도 하나씩 훔쳐 같이 숨겼다. 의심받지 않도록 한 짝이 아닌 한 쌍을 훔치는 치밀함도 발휘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크리스마스이브. 산타의 존재를 일찍이 깨달은 두 어린양이 스스로 산타가 되기 위해 작전을 펼쳤다.

부모님은 일찌감치 성당으로 출발했고 다음날 새벽이 되어야 돌아올 거다. 오빠와 언니가 잠이 들길 기다렸다가 계획을 실행하면 된다.

하지만 오빠와 언니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일찍 잠들기 억울한 날임에 분명했다. 오빠의 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도무지 꺼질 줄 몰랐고 큰언니와 둘째 언니 역시 성탄 특선 영화를 본다며 마루에서 이불까지 덮고 누워있었다. 벌써 시간은 12시를 넘어섰다.


“어린이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해. 원래는 9시 전에 자야 하는 거 알지? 오늘 특별히 봐준 거야. 그러니까 이제 자라.”


중학생이었던 둘째 언니는 자정까지 놀면서 기껏해야 몇 살 차이도 안 나는 우리를 먼저 재우려고 했다. 남의 맘도 모르면서.

하는 수 없이 셋째 언니와 난 이불에 누워 자는 척을 했다.


“잠들면 안 돼. 알았지?”

“잠도 안 와. 걱정 마.”


우리는 속닥속닥 언니들 욕도 하고, 아까 본 영화 얘기도 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러길 몇 시간. 드디어 영화가 끝나고 둘째 언니가 방으로 들어와 곧장 누웠다.

언제나 마무리가 제일 중요한 법. 셋째 언니는 꿈틀대는 내 몸을 꼭 누르며 “안 돼. 언니 콧소리 들릴 때까지 일어나지 마.” 하고 속삭였다. 한참이라 느껴지는 잠깐의 시간을 더 기다렸다가 드디어 언니의 쌔근대는 소리를 확인하고서야 우리는 조심조심 움직였다.

마루로 나와 오빠와 큰 언니가 자는 걸 확인한 후에 신발장에서 선물을 꺼냈다. 신발장 속 선물 봉지를 꺼내자 꼬리 한 내가 확 풍겼다. 하지만 그것도 다음날 아침이면 모두 사라질 테니 괜찮을 것이다.

우리는 잽싸게 각자의 양말에 선물을 쏙쏙 넣었다. 검고 목이 긴 아버지 양말에는 새 양말이 꽉 들어찼고, 엄마의 고운 빛깔 레이스 양말에는 치수 105의 팬티가 들어갔다. 파란 손수건은 오빠 양말에, 복숭아 향기 나는 립밤은 엄지발톱 부분이 헤진 커버 양말에 하나씩 쏙쏙. 우린 양말을 걸어둘 방법이 없어서 크리스마스트리에 조심스레 올려두었다.

우리는 이제야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구나 뿌듯해하며 다음날 환호성과 함께 터질 대박 칭찬을 기대하면서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오줌이 마려워 잠이 깰 때까지 늦잠을 잤다. 집안이 그만큼 조용했다는 말이다. 잠 많은 셋째 언니를 깨워 살며시 마루로 나가보니 아버지는 안 보였고 엄마는 아점을 준비 중이었다. 오빠는 나가고 없었고 언니들은 또 텔레비전을 보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우리의 눈은 재빨리 크리스마스트리로 갔다. 일단 선물은 한 번씩 확인했는지 나무 위에 올려놓은 양말들이 바닥에 던져져 있거나 아예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 집에 산타가 있었네.”, “아유! 귀여운 것들.”, “정말 고마워. 다음에는 우리가 선물해 줄게.” 같은 말은 아무도 해주지 않았다.


아점을 먹으며 옆구리 찌르듯 “언니 선물 봤어?” 했더니 퉁명스레 “응. 근데 더럽게 입술에 바를 걸 양말에 넣냐?” 했다. “빤 양말인데 뭐.” 섭섭해서 한소리 하니까 “그래도 기분이 찝찝하지. 으이그.”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다니 우리가 어리석었다. 그나마 늦게 돌아온 아버지가 “우리 딸내미들이 선물해준 양말 신고 나갔다 왔재. 언제 그런 생각을 했노.” 칭찬해 줬지만 셋째 언니와 나는 섭섭한 마음에 다시는! 죽어도! 산타 노릇은 안 할 거라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적어도 우리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는 지켜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크리스마스 양식이라며 차린 동그랑땡 비슷한 햄버거 스테이크와 각종 미제 깡통 음식들은 참 기이한 식탁 모양을 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파티가 뭔지도 몰랐을 부모님은 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어디서 정보를 얻어 트리를 사 왔을까? 또 누구에게 물어 그런 요리를 차렸을까?  

나이 들어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이제야 부모님이 우리에게 했던 하나하나가 애쓰지 않고 그냥 나온 게 없단 걸 깨닫게 된다. 그렇게 해주고도 뭘 해줬노라 자랑하지 않았고 뭘 달라 바라지 않았다.

말없이 주고 바라는 것 없이 사라진다는 면에서 부모는 산타클로스와 좀 닮아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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