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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 Jun 13. 2022

사랑해서 죄인이 된 느낌

<그림: 박새길>

딸들아.
엄마는 왜 늘 너희에게 미안할까?
책에 나오는 멋진 부모가 되고 싶었는데
너무 거리가 먼 엄마라서 그런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죄인이라더니
아무래도 그 말이 맞나 봐.


8.       사랑해서 죄인이 된 느낌

 


미국으로 들어올  우리는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이사했다

마땅히 읽을 책이 없어서 나는 영어 동화책을 우리말로 번역해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했다

어린이 용 책임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영어단어가 꽤 되었다. 특히 형용사나 의성어, 의태어가 그랬다.

눈치껏 의미만 통하게 대충 지어 말하는 나를 보고 아이들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와! 엄마는 영어를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

“엄마는 모르는 게 뭐예요?”


얼마 안 가 아이들의 영어실력은 일취월장했고, 엄마의 영어가 그저 그렇다는 걸 금세 눈치채버렸다. 영원한 영웅으로 남길 원한 건 아니지만 무지한 엄마가 된 느낌은 정말 별로였다.

다행히 아이들은 엄마가 영어를 못한다며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냥 당연한 거라고 이해하는  같았다

그런데 딱 한 번 유진이가 나를 가슴 아프게 하는 일이 있었다.


중학교 입학식이 있던 . 입구에서  아름의 안내서를 안겨 주더니 교실로 가서 담임선생님과 간단한 상담을 하라고 했다.

짧은 영어로 나름 열심히 상담을 마치고 나오니  넘어 . 이번에는 강당으로 가서 학교 시스템에 대한 각종 설명을 듣고 이런저런 신청을 하라고 했다.

유진이는 새로운 학교에 오니 흥분한 모양이었다.


“엄마. 특별반 신청할래요.”

“엄마 토마스가 인사하는데 봤어요?”

“엄마. 나 카 라이드 싫어요. 스쿨버스 꼭 타고 다닐 거예요.”

“엄마. 특별반 여기서 신청하라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엄마 돈 주면 제가 학교 티 사 올게요.”


엄마

엄마

영어가 필요한 일은 대부분 남편이 맡아 해준 덕에 몇 년이 지나도 기본적인 영어밖에 못하던 나였다. 


“여보. 특별반을 왜 신청하래요? 초등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셨는데?”

“여보. 스쿨버스 줄이 세 개예요. 어느 줄이래요?”

“여보. 티를 지금 사야 한다는 거예요? 나중에 신청서 나오면 사라는 거예요?”

“여보. 운동 서클 여러 개 신청해도 된대요?”


아이에게 득이 되는 건 하나라도 더 챙기고 싶은 욕심에 나는 남편만 불러댔다.

현주까지 챙기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남편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른 순간이 왔다.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네. 나라고 어떻게 다 알겠어요?”


그 말을 듣고  얼굴은 벌게졌다. 무안한 맘에 다 그만 두고 집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이가 맘에 걸려 그럴 수도 없었다. 이를 악물고 여기저기 다니며 가입하고, 구매하고, 상담을 계속했다.

지칠만큼 지쳤을 때, 유진이의 초등학교 친구 아나와 그 엄마를 마주쳤다. 아나 엄마가 내게 다가와 뭐라고 인사를 건넸는데 난 그걸 몇 번 반복해 말할 때까지 알아듣지 못했다. 결국, 아나가 천천히 다시 말해주자 그것이 아주 간단한 안부 인사였다는 걸 알고 조금 당황했다. 


드디어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학교를 나왔다. 아이의 새로운 학교생활을 온 가족이 최선을 다해 도왔다는 생각에 나름 뿌듯한 맘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유진이의 표정이 어두웠다.


“새 학교 좋아?”

“……”

“담임 선생님 참 좋으시더라. 성함이 뭐였더라?”

“……”


사춘기를 맞아 귀찮으면 한 번씩 대답을 안 하는 유진이었다. 뭐가 불만인지 내 말을 무시하는 모습에 난 또 기분이 상했다.


“너 왜 그래?”


그러자 유진이가 톡 쏘는 말투로 물었다.


“엄마. 아까 정말 아나 엄마가 뭐라 그러는지 못 알아 들었어요? 그렇게 간단한 인사였는데?”


그동안 영어 못하는 엄마를 핀잔 준 적 한 번 없던 아인데 나름 창피했었나 보다. 난 당황해서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어. 너무 시끄러운데 아줌마 발음도 그렇고.”

“아줌마 발음은 별로 이상하지 않았는데요?”


 말에 가슴  깊숙한 곳에 숨겨놓았던 자격지심이 고개를 쳐들고 말았다.

나는 차에 올라탈 때까지  참았다. 그러나 인내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스멀스멀 분노가 차오르면서 이해심과 참을성의 고삐가 완전히 풀리고 만 것이다.


“너희는 매일 학교 가서 영어로 공부하고 말하잖아. 거의 온종일 한국말만 하는 엄마는 당연히 영어가 서툴지. 게다가 아나 엄마는 콜럼비아 사람이잖아. 유진이 너야 영어를 잘하니까 엑센트가 다른 영어도 쉽게 이해되겠지만 난 그런 건 더 안 들려. 엄마가 못 알아들으면 네가 통역 좀 해주지 왜 가만있었어? 여기 사는 남미 애들 못 봤어? 영어 한마디 못하는 부모 모시고 다니면서 통역 다 해주고 동생까지 챙기잖아. 넌 영어 배워서 뭐 할 건데? 영어 못한다고 엄마 무시하려고 배운 거야?”


못 알아들었느냐고 딱 한마디 하고 인상 좀 찌푸린 아이에게 인격 모독에 가까운 말을 하면서 화를 냈다.

‘버벅거리는 영어로 저 좋아하라고 돌아다니며 해줄 것은 다 해줬는데, 어쩜.’

이것은 엄마로서의 섭섭함이었다.

용처럼 불을 뿜고 말처럼 길길이 뛰고 나니 기운이 쏙 빠지고 눈물만 났다. 아이들에게는 충격이었을 거다. 그만한 일로 얼굴이 벌게져서 소리 지르는 엄마라니.


집으로 돌아와 유진이는 미안하다고 내게 사과했고 아이에게 사과했다.  화가 지나쳤고 무엇보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렇게 화를  이유가 나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 하는  성향과 그에  미치는 능력과, 좌절하면 솟아오르는 분노를 주체    잘못이었다.



부모가 죄인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부모가 되면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거라 하셨다.


셋째 언니는 공부를 특출 나게 잘했다. 그런데 언니의 문제는 잠이 너무 많다는 거다. 잠만 많은  아니라   잠이 들면 옆에서  치고 장구를 쳐도   몰랐다.

셋째 언니가 혼자 집에 있다가 잠든 날이면 나머지 가족들은  하나의 열쇠를 가진 누군가가  때까지 이웃집, 독서실 등으로 흩어져 문이 열리길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사람은  앞에 남아서 대문을 두드리고 전화와 인터폰을 걸고 소리를 질렀다. 정말 동네에 소문이  났을 정도였다.

시험이 닥치면 셋째 언니는 늘 잠과의 사투를 벌였다. 책상에서 졸고 화장실에 앉아서도 졸았다. 저녁 먹고 나면 으레 “한 시간만 잘게. 누가 나 좀 깨워줘.” 부탁했다. 우리 자매들은 일제히 “난 몰라. 절대 나 믿지 마.” 대답했다. 어차피 깨워봐야 일어나지도 않을 테니 그 뒷감당을 하기 두려워서였다. 결국, 맘 약한 아버지가 그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날도 전날 밤샘한 언니가 식탁에서 머리를 박고 조는 모습에 짠해진 아버지가


“혜령아. 고마 푹 자라. 내가 깨바주께.” 하셨다.

“그럼 11시에 꼭 깨워주세요. 이불 펴고 자면 못 일어나니까 책상에서 자고 있을게요.”

“알았으니까 맘 푹 놓고 자라.”


언니는 아버지를 믿고 중앙 등에 스탠드 등까지 밝혀둔 채 잠이 들었다.

드디어 11시가 되었고 아버지가 언니를 깨우러 출동했다. 잠결인 나도 들었을 만큼 아버지는 언니를 큰 소리로 흔들어 깨웠다.


“일나라. 11시 넘었다. 내일 시험공부해야 된다 안 캤나?”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5분만……”

아버지는 5 후에 다시 언니를 깨웠다. 하지만 언니의 입에서는 다시 5 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하길 여러 . 결국, 아버지는 잠에 취해  일어나는 불쌍한 딸에게 담요까지 덮어주며 포기를 선언했다.  자라고  끄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다음  아침.  집안언니의 울음소리가 울렸.


“나 몰라. 왜 안 깨웠어. 오늘 시험공부 하나도 못 했단 말이야. 내가 아버지를 믿는 게 아니었어. 나 어떡해. 엉엉.”


가방에 책을 쓸어 넣으면서 언니는 아버지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언니의 뒤에 서서 몸 둘 바를 모르며 “깨밨는데 몬 일어 나가 …… 어쨌든 미안타.” 하는 아버지를 보며 엄마가 대신 화를 냈다.


“가시네야. 니 아부지가 얼마나 깨분 줄 아나? 그래 몬 일나겠으면 매번 뭐할라꼬 깨바달라 카노? 어이?”

“몰라. 난 못 들었단 말이야. 그리고 담요는 왜 덮어줘? 불은 왜 끄냐고! 춥거나 눈부셔서라도 일어나게 냅두지!”


엄마는 참다못해 언니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엄마에게 소리쳤다.


“시험 보는 아 머리는 와 박노! 안 그래도 내 때메 공부도 몬한 아를.”


아버지는 징징거리며 학교 가는 언니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


“울지 말고 어서 가서 평소 실력으로 시험 잘 봐라. 아부지가 잘몬했다.”




언니들이 이런저런 일로 부모님 속을 썩이는 걸 보면서 난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 다짐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살면서 부모님을 자주 원망하게 되었다. 잘 되면 내 덕, 못되면 부모 탓. 딱 그 짝이었다. 요즘 내 아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내 탓으로 돌리는 걸 보면 지금 그 벌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요즘 가끔 아버지 말씀이 생각난다.


“부모가 죄인이다. 느그들도 자식 낳고 부모가 되면 다 느낄기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더 미안한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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