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박새길>
딸들아.
익숙지 않은 단어와 억양을 들으면
너희가 처음 영어를 배울 때를,
다시 한국에 적응할 때를 기억하렴.
소통이 되면 그뿐.
엑센트는 중요한 게 아니니까.
6. 조금 다른 말, 사투리
처음 미국 학교에 들어가고 한 달쯤 되었을 때, 방과 후 차에 올라탄 현주가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학교 급식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근데요~ 오늘 닭고기 쪼맨한 거 먹었어요. 맨날 아빠 얼굴 만한 거 나왔는데 오늘은 쪼맨 했어요."
한창 말을 배울 나이에 부산 할머니네 살았던 현주는 구수한 사투리를 썼다.
완전 서울내기인 유진이가 물었다.
"쪼맨한 게 뭔데?"
현주는 심각한 얼굴로 한참 고민하다가 설명했다.
"쪼맨~하다고. 닭고기가. 쪼. 오. 맨!"
한 번 궁금한 건 무슨 일이 있어도 해결을 봐야 하는 유진이가 동생을 그냥 놔줄 리 없었다.
"그러니까 쪼맨이 뭐냐고! 무슨 뜻인지 묻는 거야."
현주는 창밖을 한 번 보고 머리도 한 번 긁더니 한숨을 푹 쉬고 혼잣말을 했다.
"쪼맨한 걸 쪼맨하다 하지 뭐라카는데…..."
유진이와 현주의 언어 차이는 그 후에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엄마 오늘이 ‘월료일’이죠?”
유진이는 현주의 발음이 이상하게 들렸나 보다.
“월료일이 아니고 워~료~일 해봐.”
“유진 언니한테 안 물었어.”
“넌 맨날 일료일, 월료일 하잖아. 이상하니까 고쳐.”
“뭐가 이상한데? 유진언니가 이상하다. 치.”
또, 원더걸스의 노래가 한창 유행할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아임 쏘 핫. 난 너무 ‘에뻐요’.”
함께 노래 부르던 유진이가 노래를 딱 멈추더니 지적했다.
“‘에뻐요.’가 아니라 ‘예뻐요.’야!”
“그래. ‘에뻐요.’ 했잖아.”
“봐. 지금도 ‘에뻐요.’라고 하잖아.”
“내가 언제 ‘에뻐요.’ 했는데? ‘에뻐요.’ 했지.”
“거 봐. 다 틀리게 말하잖아. 그만해. 이제.”
“유진 언니 니나 고마해!”
유진이야 동생의 발음을 교정해주고 싶었겠지만 자꾸 지적을 받는 현주도 맘이 많이 상했을 거다.
지금은 현주도 ‘완전 서울 사람 다 되어’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가끔 꼬마 사투리 쟁이가 그립다.
아빠는 엄마에게 “당신도 서울 올라온 지 십 년이 훌쩍 넘었으니까 이제 사투리 고마 쓰고 아아들 위해 서울말 연습하소.” 말씀하신다. 그리고 내게 물으셨다. “아부지는 사투리 안 쓰고 완전 서울말씨재?”
아버지는 추어탕이나 도가니탕처럼 커다란 압력솥 쓰는 요리를 하는 날이면 일찍 들어와서 부엌에 들어갔다. 엄마가 무거운 압력솥을 쓰는 게 안쓰러워서였나 보다.
그날도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부엌에서는 남들이 딱 오해할만한 부모님의 대화가 들려왔다. 싸우는 듯하면서도 정겨운 경상도식 대화였다.
솥에 모든 재료를 집어넣은 엄마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거…… 거……. 그거 주이소.”
“뭐라카노? 그게 뭔데?”
“그거 그거. 아, 와 이리 말이 안 나오노. 혜다 왔나? 야야 그거 좀 집어 도.”
“뭐 말인데?”
“거거거. 맞다. 쪽 도! 쪽 도!”
엄마의 사투리에 익숙한 나도 한 번씩 해석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머뭇대고 있자 아버지가 중재에 나섰다.
“아한테 쪽도 카믄 아나? ‘혜다야. 쪽을 줘라.’ 캐야지.”
아버지는 스스로 뿌듯해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 말 않고 눈치껏 국자를 건넸다.
우리 집에서 쓰던 사투리나 지방 특유의 문화로 인해 겪은 일화가 몇 개 더 있다. 한 번은 가정 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왔다.
다음 중에 전을 찍어 먹는 장으로 알맞은 것은?
1. 된장 2. 고추장 3. 초고추장 4. 초간장
나는 집에서 먹던 대로 3번 초고추장을 적어냈고 답은 오답 처리되었다. 전은 초간장에 찍어 먹어야 한다는 게 책에 나왔었나 보다. 지금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시험문제가 없어졌겠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가능한 문제였다. 책에 나오면 무조건 믿어야 하는 때였으니까.
집에 와서 시험지를 내보이며 속상해하자 엄마도 살짝 당황했다.
“대구에서는 초고추장에 찍어먹는데…… 그래도 여는 서울이니까 서울 답을 해야겠제.”
또 한 번은 친구들에게 ‘정구지 부침개’를 설명하느라 애를 먹은 적도 있다. 초등학교 때 내 생애 첫 요리로 엄마를 도와 정구지 부침개를 했다며 자랑했는데 그걸 알아듣는 아이가 없었다. 나는 내 친구들이 그 흔한 채소, 정구지도 모르는 멍청한 애들인 줄 알았다. 나중에 그것이 부추의 사투리라는 걸 알 때까지 말이다.
조지아는 진한 남부 사투리를 쓰는 곳이다. 한국에서도 남부 사투리 속에서 성장한 나와 남편은 미국까지 가서 또 남부에 자리 잡게 되었다.
우스운 것은 우리가 살던 조지아의 작은 동네 에덴스에서도 백인 중산층은 동부 말씨를 쓰려했다는 거다. 또 흑인 중산층은 나름 동부의 흑인 말씨를 쓰려고 했다.
미국은 연합국이라 우리나라처럼 어느 한 곳의 말이 표준말이 되는 것도 아닌데 지역색이 강한 사투리를 쓰면 놀림감이 됐다.
사투리는 세계 어딜 가나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가 보다.
표준어의 첫 번째 정의는 ‘국민의 편의를 위해 정해놓은 말’이고 두 번째 정의는 ‘교양 있는 사람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표준어의 두 번째 정의를 착각하고 있다. 교양 있는 사람이 두루 쓰는 것이 표준말이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서울말을 쓰는 사람이 교양 있는 걸로 생각하는 것 같다.
주야장천 사투리를 쓰는 교양 넘치는 지인들이 참 많건만, 그들의 서울 생활은 특유의 억양 때문에 놀림감이 되는 걸 자주 목격했다. 그리고...... 나도 같이 웃었던 기억에 부끄럼이 느껴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