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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인 Oct 20. 2020

너의 행동이 들리기 시작했어

자존감 지키기

예전에 나는 간호조무사로 직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그 때의 나는 환자분들이나 직장 동료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직원이긴 하였지만, 나는 그 당시에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있었다. 내가 부족한 것만 같았고

다른 직원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비교 하는 순간들은 나에게는 우울감을 느끼게 해주었고,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향해서 내려갔다.

무엇이 문제 였는지 모르겠다. 그 때를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나에게서 문제를 찾으려고 했다.

내 자존감은 나로부터 나오는건데 , 나는 항상 나를 질책했고 원망했다.


그리고 결혼과 출산, 육아를 거친 다음 두번째로 일하게 된 직장에서는 나는 다른 동기들에게 편하게 말을 붙일 수 있는 그런 존재였었다. 그때 , 나의 동기 중에 유독 친해진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는 누구나 좋아할 정도로

유쾌한 사람이었으며 ,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누구나 편하게 장난을 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나는 사실 그런 류의 사람들을 굉장히 부러워했다. 내 성격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성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억지로 밝은 척을 하였고, 적극적인 사람인 것 처럼 나와 다른 사람들을 속였다.

하지만 내 자신까지 속이다 보니,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고 우울감은 떨쳐낼 수 없었다.

그렇다. 나는 밝은 성향의 사람이 아니며, 그저 그냥 잘 웃고 내성적인 , 나 혼자 조용히 있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도 이런 성격때문에 곤혹을 몇번 치뤘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도 내 성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편하게 말을 못 붙이는 성격 . 이건 변할 수 가 없었다.

그렇다보니, 나는 간호조무사로 일을 할 때도 환자들에게 살갑게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마 지금 생각해보면 , 나는 나 자신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성격은 이래서 나는 내가 싫어 라고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날 가장 이해해주고 사랑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인덕이를 낳고 나서는 , 나는 인덕이가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크기를 원했다.

조금 더 적극적이며, 말도 많고 활달한 아이로 크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아이는 현재

또래 친구와 말을 하며 놀 수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놀이는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어린이집에서 국한이 되어있었다. 그 보이지 않는 경계의 선이 나는 마음이 아팠다.


신랑 역시, 자식이 있다면 말을 굉장히 잘했으면 좋겠다고 늘 나에게 말해왔었다.

그런데 우리의 예상과는 달랐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나는 국문을 좋아하고, 글쓰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내가 아이를 가진다면 내 아이도 마찬가지겠지 라고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그건 내 욕심이었다.


아이는 현재 언어치료를 받고 있는데 , 이제 사물의 단어를 배워가는 단계에 있다. 나이는 4살이지만 언어 수준은 2살에서 3살 수준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떠올릴 때면 아직 우리에게 갈 길은 멀었구나 라고 생각한다.

또래와 말을 하며 놀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이 든다.

이제 곧 5살임에도 유치원을 못 보내는 현실이 야속하기는 하지만, 내가 이제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이가 남들보나 다르더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남들보다는 느리게 걸어도, 행동 자체에 모방이 힘들어도

현재 또래 친구들이 없어도

인덕이의 성향은 밝은 아이라서 나는 오늘도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는 아이에게 칭찬과 격려를 해줄 것이다.


아이를 조금 더 나은 환경으로 변하게 할 수 있는건 , 자존감을 키워주는 일이 제일 먼저이기 때문이다.

성인들도 그렇다.

되는 일이 없어도 본인을 질책하거나, 그 문제의 이유도 본인에게서만 찾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세상이 도와주지 않는거지, 본인들에게는 큰 잘못이 없다.


세상에 태어나서 많은 슬픔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 내 아이들도.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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