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라는 이진법

세상을 구성하는 것은 '나 + 너 = 우리'

by 주영헌


컴퓨터는 이진법으로 작동합니다. 이진법이란 0과 1만으로 움직이는 구조를 말합니다. 0과 1을 통해서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래도 제가 공대 출신이라서요, 0과 1로 움직이는 ‘마이크로프로세서’와 같은 수업도 들었는데요, 적성과는 먼 수학 공식과 회로도를 보고 있으려니 호기심은 없던 것처럼, 쑥 들어가 버렸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진법 0과 1이 사람 사이의 관계와도 닮아있다는 것인데요, 0과 1을 두 글자로 치환한다면 '나와 너'가 적당하겠습니다.


나는 너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막연히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기대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근거 없는 희망에 불과합니다. 내가 오늘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나만큼이나 너의 존재가 중요합니다. 내가 안전해지기 위해선 나는 더 큰 나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특히 내가 소속감을 느끼며 활동하는 이 유기체의 바깥에는 너라는 또 다른 내가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방식으로 더 큰 나, 우리가 됩니다. 나는 우리로 무한히 확장됩니다.


내가 너와 하나가 되어 우리로 커질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일차적으로 혈연으로 묶여 있거나 공통된 관심사가 있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끈끈해 보이는 우리에도 허점은 있습니다. 아주 느슨하게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 느슨함 때문에 나는 언제든 우리로부터 탈출할 수 있죠. 이것을 부정적인 단어로 ‘배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배신은 우리 중 누군가가 일으키는 일이기도 하고요, 우리의 방식에 마음이 들지 않은 내가 선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너와 나는 공통된 부분이 있지만, 동시에 다른 존재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한 이불을 덮고 오래 산 부부라고 하더라도 낯선 모습이 발견되는 까닭일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알아가는 일은 경계가 없는 오지를 탐험하는 일과 같습니다. 아니, 탐험하기보다 헤맨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헤매고 또 헤매서 너라는 사람을 이제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금 낯섦을 느낄 때면 실망하기도 합니다. 너의 마음이 바뀌어서 발생한 일입니까. 아니요, 그것보다는 헤매지 못한 곳이 있었거나, 한번 헤맨 곳이라고 해도 비와 바람으로 지형이 바뀌어 다르게 변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요, 너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고 분투(奮鬪)하는 것 보다, 저 오지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너의 손에 이끌려 오지로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팔짱 끼고 산책하는 다정함으로. 다가서는 것이죠.


여행 얘기를 좀 더 해 볼까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세계의 곳곳을 누빕니다. 그들이 나와 다른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들도 분명 나처럼 너에 대한 두려움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용기를 낼 수 있는 까닭은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새로운 장소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기게 할 수 있죠. 이것은 너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너를 막연한 두려움으로 바라보기보다 호기심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 너는 두렵기보다 나에게 즐거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호기심이라는 단어는 관심이라는 말로도 바꿔 부를 수도 있습니다.






2009년에 계간 시인시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2016년)를, 2020년 위로의 시편을 담은『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사람, 2020년)을 출간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한편의 산문을 쓰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공유합니다. 브런치를 통해서는 일주일에 한두편, 재미있는 산문을 중심으로 원문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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