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
긴 글을 쓰기 전에 전개 방식을 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떤 식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정하고 쓰는 것과 주먹구구식으로 쓰는 것과는 분명 그 결과부터가 다르다. 내가 쓰는 전개방식은 인물 중심 그것도 주인공을 정해놓고, 주인공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한다. 이런 식의 글은 가장 쉽지만, 지루하게 이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많은 사건을 만들고, 사건 해결과 함께 새로운 사건을 만드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어가야 한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이 사건 해결이라고 말하지만, 독자가 그 해결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습득이 불가능하면 가장 쉬운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전달력에서 실패하고 만다.
[내 옆에 앉은 아이] 소설을 중심으로 말한다면 이 소설은 주인공 수희를 시점으로 글의 구성을 짰지만, 실제로 글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진영이다. 진영이 바라보는 수희를 시작으로 그의 시점에서 다른 사람이 보는 수희에 대한 생각과 사건들을 접하면서 그것들에 대한 부조리와 수희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으로 그려져 있다. 그렇게 각 챕터에 사건의 중심은 수희이지만, 그걸 해결하고 보완하고 수정하는 사람은 진영이 되는 것이다.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을 엮을 때도 해결과 재 사건을 중심으로 단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전개방식은 소설 전개 방식 중에서 기, 승, 전, 결이 분명하게 드려 나는 방식이지만, 이 방법은 웹소설을 쓰던 예전 글 방식과 비슷하기도 하다.
웹소설을 마지막으로 쓴 것이 2023년 11월이 끝이었다. 그 이전과 이후를 맞물리고 있는 시점에서 썼던 소설의 특징들이 이런 식으로 쓰여 있다. 이 방식을 굳이 바꾸지 않은 것은 가장 옛날스럽지만, 그게 소설을 접할 때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은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한 권의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 이 또한 너무 많이 꼬아놓다 보면 왜 그 인물이 그 장면에서 나와야 하는지 궁금할 때도 있다. 사건과 인물이 서로 맞물릴 때마다 앞에 장면을 떠올려야 하고, 만약 작은 장면이라 치부하고 무심코 넘겨버리면 다시 앞장을 읽어야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물론 그런 이유로 작은 장면도 허투루 읽지 않고, 꼼꼼하게 읽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이게 또 피곤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각 장면에 대해 더 중심을 두었다. 인물의 감정변화에 더 비중을 두었고, 주제를 두었던 '시선' 그러니까 계층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시선'에 두어 글을 다 읽고 난 뒤에 과연 나는 어떤 시선으로 사람을 볼까? 혹은 두 인물에 대한 느낀 점만 남도록 했다.
어쩌면 책 속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그대로 담아 독자로 하여금 쉽게 접할 수 있게 했다는 거창하게 해석하고 싶기도 하다. 계층을 분리하는 어른들의 시선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자녀들조차 한 반에 같은 반이라는 공통점 속에 분류하고, 계층과 등급을 나눈다.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이 마치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새로운 사회 구성원을 만들고, 마음대로 군림하면서 상대의 마음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그게 하나의 장난에 지나지 않고, 학생 때 하는 객기에 지나지 않기에 졸업과 동시에 어른들의 세계에 들어가면서 자신이 저지른 과오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 있는 당하는 입장에 있던 아이들은 평생의 아픔으로 올바르게 대접받지 못한 사회에 대한 불만과 친구라는 가장 가까워야 하는 단어가 오히려 가장 무서운 단어로 기억으로 남아 평생을 괴롭힌다. 그러나 그걸 굳이 책 속에 설명하지는 않았다.
수희는 반대쪽 분류로 나뉜 존재다. 항상 외롭고, 슬프다. 학교는 괴로운 공간이지만, 동시에 설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진영은 유일하게 그녀가 학교에 가고 싶은 이유가 되어 준다. 진영의 변함없는 사랑은 수희를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왕따였던 그 시절의 한 아이가 바라는 유일한 빛, 친구라는 소망을 말하기도 한다. 별것 아닌 한 사람의 존재가 한 사람을 충분히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작은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진영이 대처하는 학교 폭력 앞에 어른들이 해주어야 하는 자세는 무엇일까?
진영의 아버지는 그를 옆에서 지켜봐 주고 믿어주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 요즘 학교 폭력은 그런 자세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옛날이었기에 어쩌면 가능했는지도 모르고, 요즘 실세에 맞는 대처는 학교 내 폭력이라 분류하기보다는 직접적인 대처가 오히려 현명할 것이다. 그러나 믿어주는 어른이 곁에 있다면 아이들끼리도 해결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소설이기에 가능하지만, 소설로나마 말해주고 싶은 것이었다. 아이들을 서포트하는 것 중에 제일 좋고 중요한 건 믿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소설은 끝이 없다. 원래 내용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거나 그런 장면은 없다. 그저 서로의 마음을 알지만, 굳이 확인하는 장면은 없었다. 그러나 중간의 종호에 장면을 변경하면서 사건의 중심에 수희를 두어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을 걱정한 진영이 스스로 논란을 만들어 수희를 사건에 중심이 아닌 피해자로 바꿔버린다. 그래서 교내에서 항상 문제의 중심이 있는 수희가 곤란하지 않게 만들려는 진영의 마음을 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이후에 두 사람에게 친구에서 연인으로 이어가지는 않는다. 진영의 바람대로 친구로서 내일을 준비할 뿐이다.
이렇듯 소설은 전개방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내가 쓴 것이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니다. 그저 표현하는 방식을 작가가 정했다면 그걸 전달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어떻게 전개할지 중심을 잡고 끝까지 잘 마무리하면 되는 것이다.
저는 문예창작과를 전공하지 않았으며, 정식으로 글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이 글은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으며, [내 옆에 앉은 아이]는 2024년 10월 24일, 포레스트웨일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저의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