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문을 여는 글쓰기/여유
여유, 사전적 의미 두 번째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루틴이라고 한다면 글을 쓸 때와 평소, 그리고 감정의 루틴이 달랐다. 글을 쓸 때는 확실한 루틴이 있었다. 처음 소설을 시작할 때는 가사가 없는 사극풍 음악이나 재즈와 빗소리가 섞인 음악을 재생한 다음 이어폰을 꽂았다. 잠시 음악을 감상하다 집필 중인 글을 열고, 이전에 쓴 글을 읽으면서 다음에 뭘 쓸지 고민했다. 지금은 조용한 게 좋아졌다. 음악보다는 새벽의 소음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밤낮이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평소에는 늘 비슷했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과 소소한 장난을 즐기고, 다음 끼니에 관한 메뉴를 상의하고, 이미 10년도 지난 삼시 세끼를 시청하거나 남편이 이미 틀어 놓은 아무거나 같이 봤다. 가끔 집중력이 떨어지면 핸드폰을 뒤적이며 누군가 공개한 글을 읽거나 엠버로 활동 중인 단톡방에 글쓰기 방과 어울리지 않는 글이 있는지 읽었다. 잠시 딴짓하다가도 다시 TV 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늘 웃던 포인트에 웃었고, 가끔 수십 번 시청의 결과를 보여주듯 다음 행동이나 대사를 맞추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평안한 일상을 즐겼다.
감정의 루틴은 나에게는 진짜 필요한 과정이다. 어릴 적부터 감정을 거부당한 나에게 현재의 감정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화가 나더라도 화내도 되는 상황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편한 감정을 감지했을 때는 지인 찬스를 썼다. 삼십년지기 친구와 속내를 내비치는 지인에게 그때의 감정에 관해 공유하면서 나의 기분을 말하는 것이다. 너무 오랜 기간 이래왔기 때문에 그들은 불편한 자리에서 고생 많았다고 위로해 줄 때가 많았다. 그 장소에 같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100% 공감되는 게 아니면서도 내가 느낀 불편한 감정을 위로해 주는 것이 고마웠다. 그들은 오랜 시간 나를 알았기에 내가 감정을 잘 모른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표현도 서툴다는 것도 알았기에 유일하게 내가 아무 말도 아무 표정도 안해도 되는 곁이기도 했다.
늘 차분한 편이다. 느긋한 성격은 아니었다. 이왕이면 '빨리빨리'가 더 좋았고, 이와 반대로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는 느긋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 비로소 마음이 차분해졌다.
내가 세상을 향해 용기를 내기 시작한 건 글쓰기를 시작할 때부터였다. 그전에는 수긍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럴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상대방이 아닌 나를 설득하며 살았다. 그랬기에 루틴이라고 하기엔 억지고, 그냥 상황에 맞춰서 살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는 것은 자기 삶을 잘살고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는 것만으로 벅차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내가 그랬다. 루틴도 자기 삶에 제대로 적응한 후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신에게 나만의 루틴이 있다면 당신은 자기 삶을 잘살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루틴이 깨칠 때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못 살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삶을 사는 방식은 누구나 다르다. 당신이 자기 삶을 만족한다면 상관없다. 루틴이 있든 없든, 나는 나답게 살아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 이대로의 내가 마음에 든다.
늘 느끼는 거지만, 모두와 똑깥은 모습으로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와 당신은 다르다!!' 이 당연한 이치를 깨닫는다면 나를 위한 삶에 더 깊게 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