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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나에게 가장 필요한 여유는?

생각의 문을 여는 글쓰기/여유

by 그래
여유란
첫 번째 : 물질적ㆍ공간적ㆍ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
두 번째 :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세 번째 :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

오늘 주제의 답을 하기 이전에 여유란 무엇인지 다시 정리해 보았다. 각각의 정의를 하면서 하면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첫 번째 여유는 나에게 필요 없는 거였다. 물론 있으면 좋은 거라는 점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뭐든 적당한 게 좋은 것 같다. 물질적 여유는 솔직하게 없다. 이 여유가 나에게 없다고 해서 불편하지도 않다. 조금 더 움직이고, 조금 타이트하게 살면 된다. 공간적 여유는 이미 충분히 존재한다. 이 이상 원한다면 나의 작은 작업실 정도이겠지만, 그거야 자식들이 출가하면 자동으로 생길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면 된다. 시간적 여유는 오히려 핑계가 되어 계속 미룰 것만 같다. 그럴 바에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살고 싶다. 내게 남은 시간이 24시간 밖에 없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지금 그대로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을 쓰면서 보내고 싶다.


두 번째 여유는 가지고 싶다. 누군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위해서 말이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숙제가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 모든 규범 잘 지키고, 충실하게 아내로서 잘 살아왔다. 물론 엄마의 몫도 잘 해냈다. 자식의 자리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나를 봤을 때 충분히 내 삶에 최선을 다했고, 주어진 문제를 풀면서 매 고비를 잘 넘겨왔다. 그런데도 스스로 겨울잠을 자야만 겨우 버틸 정도로 유리멘털을 가지고 있으며, 나름의 규칙을 정하고 이 규칙을 벗어나면 마치 큰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채찍질한다. 온전히 매달리지도 못하면서 욕심을 낸다. 실패에서는 느긋하면서 매번 사람에게 상처받은 부분에서는 예민하게 구는 편이다. 제발 바라옵건대, 스스로에 관대하고, 느긋해졌으면 좋겠다. 아이를 바라보듯 나에게도 좀 그래 주면 더 괜찮은 삶을 살 것 같다.


세 번째, 나는 큰일에는 오히려 대범하게 대하는 편이다. 큰돈이 들어가더라도 내게 능력이 있으면 가감하게 저지르는 편이고, 큰 사고 앞에서는 느긋하게 바라보며 냉정하게 생각하려 노력한다.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걸 중심으로 풀어 나가는 것이다. 작은 일에는 너그러운 편이다. 아직도 궁금한 의문이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였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과자는 그냥 사 줬다. 어릴 때 가지지 못한 설움을 아이는 갖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자꾸 과자를 남기고, 버리는 것에 아낌이 없었다. 그때부터 다 먹지 않고 버린 과자는 절대 안 사줬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슈퍼에 가도 딱 하나만 샀다. 같이 어울리는 친구가 나를 평가하기를 ‘너희 엄마는 참 쪼잔한 것 같아.’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 말을 들었다고 내가 정한 규칙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의문이다. 이런 게 아이들에게 쪼잔한 모습일까? 하고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 작은 일이라고 판단되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옷이 조금 떨어져도 낡아도 그냥 입었다. 음식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물질이 사람이 못 먹을 정도만 아니면 그냥 넘어갔다. 사람이 만드는 것인데,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내가 진짜 쪼잔해질 때는 아무래도 글일 것이다. 충분히 내 글도 나쁘지 않다는 걸 알면서 스스로 작아지고 만다. 등단한 작가님을 보면 그동안 나는 뭐 했나 싶은 한심한 생각이 든다. 단 한 권의 책으로도 대박을 터트리는 작가님을 보면서 여전히 나는 제자리걸음이라며 스스로 자괴감이 빠진다. 우연히 피드백을 준 글에 다른 의견을 내거나 내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는 작가님을 만나면 내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한 듯 움츠러들 때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말하면서 정작 내가 그러고 있다. 예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한 현실적인 박탈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걸 보면 스스로가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다.


사람마다 다르니 당연히 다른 글을 쓰는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글을 쓰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걸 알지만, 자꾸 이유를 붙인다. 누군지도 모르는 작가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 노력하니까 결국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가장 필요한 여유는 첫 번째도 세 번째도 아니다. 바로 두 번째다.


물질적이고, 공간적, 시간적인 것은 결국 넘치면 모자란 것보다 못한 법이다. 게다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이 모든 것들은 아무리 가져도 평생 부족할 것이기에 나에게는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나에게 큰일도 작은 일도 거기에 걸맞게 잘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좀 모자랄 수도 있고, 답답할 수도 있지만 그게 또 사람 사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내 글은 나에게 또 다른 귀한 자식과도 같다. 산통을 겪으며 출산하는 것처럼 창작의 고통과 함께 얻은 귀한 결과물이었다. 그렇다는 건 나의 글은 결국 내가 품어줘야 하는 아이라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제는 그 아이를 원망하고, 미워하기보다는 다정하게 품어주어야 할 것 같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여유는 나에게 특히 나의 ‘글’에게 해야 하는 것인 너그럽고, 관대한 두 번째 여유이다.

Gemini



Gemini AI가 나의 모습을 예쁘게 그려줬다. 나와 전혀 닮지는 않았지만, 특징은 비슷하다. 그리고 포토샵을 할 줄 몰라 그림판으로 나름 책 제목은 겨우 입력했다. 책을 넣고 배경을 지우기를 했더니 그래도 표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소녀, 소년(수희, 진영)이 우산 안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모습이 남았다. 우산은 수희 쪽으로 약간 기울져 있고, 전체적인 표지 이미지는 수채화적으로 자연스럽지만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강조해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두 아이에게 시선이 가도록 유도했다.


최다솜 작가님의 멋진 연출 실력으로 정말 예쁜 표지가 완성되었고, 이 책은 최다솜 작가님 덕에 독자들의 선택을 많이 받았다. 아픈 손가락처럼 이 종이책 출간으로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라도 아낌없이 사랑하련다. 나는 이 책을 기점으로 웹소설 아닌 일반 소설로 전향한 나에게는 뜻깊은 책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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