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시
오늘은 새벽에 일어났다. 일찍 잔 것도 아닌데, 며칠 피곤하게 무리한 탓인 깊은 잠을 자지 못한 듯하다.
새벽부터 일어나 핸드폰 배터리를 썼다. 이것저것 검색하기도 하고, 가끔씩 떠오르는 문구를 기록하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들여다 보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 인스타 검색창을 열면 주르륵 나오는 사진들이 있다. 대부분 많이 조회된 릴스가 차지하고 있는데, 좋아요가 많은 피드도 함께 보여진다.
예전에 말한 적이 있지만, 나는 따뜻한 그림을 좋아한다. 누구나 봐도 따뜻한 그림은 물론이고, 내 느낌에 그러면 그건 나에게만은 따뜻한 그림이 되었다. 거기서 한 그림을 보았다. 교과서에 넣는 그림이라며 몇 장의 그림이 있었다. 정겹기도 했고, 정말 오랜만에 교과서를 열어본 기분에 흠뻑 취해 작가님의 피드로 들어갔다.
봄을 가득 머금은 벚나무 풍경과 한국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따뜻한 그림들이 가득 있었다. 나는 무엇이든 좋아하면 깊이 파는 성격이다. 대시보드에 있는 주소로 들어가 작가님의 다른 곳에 올려진 작품들을 찾아서 보는 것이다. 약간 스토커기질이 있는 것도 같다. 아무튼 블로그에는 작가님의 첫 시작 그림부터 있었다. 첫 글만큼 첫 그림도 신선하고, 따뜻한 동화처럼 가슴을 뭉글거리게 만들었다. 거의 모든 그림을 보며 푹 빠져 보고 있는데, 그제야 표정이 없다는 걸 겨우 알아챘다. 작가님이 표정을 그려 넣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왜 나는 어색함이나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을까 의아했다. 한참 이유를 찾던 중 다수의 사람이 그려진 작품을 보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작가님의 그림은 표정은 없지만, 알 수 있었다. 손짓, 몸짓, 고갯짓 전체적인 그림에서 표정이 있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한 거였다. 그 순간 나는 폭풍 글쓰기에 들어갔다. 솔직히 어버이날 글은 평소 글과 달리 좀 어두웠다. 오늘에서야 내가 말하고 싶었던 어버이를 표현할 수 있었다.
내가 길을 잃었을 때도 항상 나에게는 이정표가 있었다. 바로 부모님, 나의 부모님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당연한 거였다. 늘 혼자 생각하고, 해결하는 나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항상 나를 보고 있었다. 미안해했고, 아픈 손가락이며 챙겨주었다. 둘째의 서러움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는 자식이 바라는 사랑을 하지 않는 것 같다. 항상 자신의 주는 사람은 100%, 200%이라지만 자식이 생각하는 사랑은 10% 내외인 것이다. 아무리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알고 있더라도 실제로는 '나는 사랑받고 있는 거지?'라고 되묻는 것이다. 성인이 되면 부모와 스스로 떨어지려고 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나는 나대로 살게 되는 것 같다. (제 경우가 다수 포함된 의견입니다.)
항상 그 자리에 서서 잘 따라오고 있는지, 넘어지면 일어서야 하는데 말하면서 응원하고, 지치면 내게 손을 내밀어 말하고 있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멀리 있다고 귀를 닫아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 오늘이 되면 친정식구들이 다 모인다. 은근슬쩍 엄마의 손을 잡아볼까? 그런 생각이 스친다. 가끔은 말보다는 그런 작은 동작하나가 더 진심을 전달해 주니까 말이다.
당신은 당신이 길을 잃었는데,
이정표가 되어주는 사람이 있나요?
오늘의 질문을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누구든 그 사람은 부모처럼 당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이니까 감사한 마음을 전달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