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시
아름답다의 정의는 오로지 '나' 기준이다. 어떤 이에게는 별개 아닌 흔한 풍경 중에 하나일지라도 어떤 이에게는 아름답다. 글을 쓰면서 '나'의 기준은 모호해졌다. 아름다운 사진과 그림, 풍경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어떤 사연이 있을 것 같은 미완성의 모습이나 어설프나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그림이나 작품, 생뚱맞은 곳에 엉뚱한 무언가, 너무 흔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는 그 무엇 그게 좋아졌다. 어느 날부터 시선을 두고 넋놓고 바라보게 되었다.
각각의 사연을 모두 안다면 마음을 읽는 신이나 전후를 읽는 초자연적인 존재나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바라보고, 관찰하고, 궁금해하다 보면 비슷하게나마 알 수 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던 마음의 이유, 그리면서 느낀 감정, 거기여만 했던 사연 그런 것들이 나를 깨운다.
비록 큰 뜻을 담은 글이 아닌 사소한 사연 하나이지만, 아름답다는 정의처럼 누구에게는 특별한 것이다.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고, 다수의 공감보다는 한 사람의 끄덕임 혹은 감동을 받고 싶다.
오늘 본 벽화는 자주 보는 컨셉이고, 흔한 그림이었다. 그러나 묘하게 연인만 바라보는 고갯짓과 온전히 기댄 모습이 인상 깊었다. 연인 사이의 앉은 귀여운 고양이의 평범한 표정이 연인의 일상을 입증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그러다 남편을 보았다. 당연한 듯 내 볼을 만지며 촉감을 느끼는 모습과 왕복 3시간 거리를 왔다갔다한 발을 어루만지는 손길을 보며 어쩌면 벽화 속 연인을 보며 남편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익숙한 연인, 남편을 바라보며 글을 보니 나는 남편을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