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시
드디어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림을 배운다는 건 글을 처음 배우는 것과 같았다. 가에서 ㄱ부터 배우는 것이 아닌 선긋기부터 배우는 것처럼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은 쉬웠으니까 괜찮았다. 조금씩 단계가 올라갈수록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돌아가고 싶을 만큼 어려웠던 적도 있었고, 매번 조금은 아쉬운 그림들이 싫었다.
그런데 좋아요 하나는 큰 힘이 되었다. 그 방에 있는 다수의 학생이 그림을 알고, 무엇보다 잘 그렸다. 그들에게 내 그림이 어떻게 비칠지 걱정인 게 사실이었다. 어느 날부터 나의 그림의 좋아요가 붙었다. '겨우 하나' 아니다. '하나씩이나!' 잘 그린다는 칭찬보다 모르는 누군가의 좋아요는 처음 글을 쓰고 플랫폼 공유할 때 좋아요와 비교될 만큼 기뻤다.
오늘 개인사정으로 빠진 구간을 겨우 메꿨다. 몇 번을 실패하고, 도전하는 끝에 원하는 구간에 새로운 질감이나 이미지를 넣는 것을 성공했다. 그 쾌감! 원하는 글이 나왔을 때와 같았다.
오늘 글은 단톡방의 어느 작가님이 올려주는 시제였다. '나무'라는 시제로 떠오른 글은 쉼이었다. 이 글에서 제일 고민한 건 역시나 마지막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그곳이었다.]로 마무리하려 했다.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는 거였다. 뭔가 부족한 다른 말이 없을까 고민하다 [눈이 감긴다.]로 바꾸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그림을 완성하고, 글을 옮겨 적는 순간 드디어 떠올랐다.
"눈은 감는다."
쉼과 정말 어울리지 않는가? 단순히 눈을 감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온전히 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요즘은 살짝 눈을 감아도 귀를 닫는다면 따라가기 힘들뿐더러 사기까지 당하는 무서운 세상이다. 잠을 자기 위한 눈감기 외에는 매번 뜨고 있는 눈이다.
그러니까 눈을 감는다는 것이 진정한 나의 글의 최종 메시지이며, 포인트가 되는 거였다. 오늘 시제에서 나는 쉼이라는 어떤 것인지 깨닫는 순간이 되었다.
미우나 고우나 남편 옆이 가장 편한 나의 나무그늘이다. 언제나 내가 넘어지지 않게 버텨주는 그가 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