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뙤약볕에 구워진 나뭇잎이 쿠키가 되어 떨어진다. 잘 구워진 낙엽을 밟으면 ‘콰작’ 소리가 난다. 바삭한 쿠키를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기분이 좋다. 달달한 계피맛이 입안에 맴돈다. 쿠키 더미 쪽으로 발걸음을 일부러 옮겨 걷기도 한다. 발에 스칠 때 나는 ‘쓱쓱 바스락’ 소리는 걷는 것을 싫어하지만 가을길을 걷고 싶게 만드는 이유이다. 맑은 하늘에 마음이 상쾌해지고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걷는 여유는 딱 이때 아니면 즐길 수 없다. 흔히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긴다고 하지만 난 커피를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그 참 맛을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바쁜 일상 속의 작은 여유를 말하는 거라면 나에게는 그게 도로 위에 낙엽 쿠키를 맛보는 것이다.
가만 보면 성격이 급해서 바쁜 일이 없어도 빨리 걷는 편이다. 앞만 보고 목적지를 향해 뛰듯이 걷는다. 혼자 걷는 건 외롭고 심심해서 싫었다. 요즘은 그런 내가 변했다.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처럼 땅을 찬찬히 살피며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걷는다. 길거리에 오락실이 열린다. 사격게임을 하듯이 가장 바삭하고 탐스러워 보이는 쿠키를 표적 삼아 발걸음을 조준한다. 발바닥에서 전해지는 ‘바삭!’ 소리는 ‘탕!’하고 울려 퍼지는 총소리보다 더한 쾌감을 준다. 라떼는 디디알 또는 펌프라고 불렀던 게임기계가 있었다. 요즘 학생들도 많이 하는지 모르겠지만 가을길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화면에 나오는 화살표를 보고 바닥에 있는 동일한 모양의 화살표를 쿵 하고 밟으면 된다.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양에 맞춰 바닥에 널린 낙엽들을 쿵 하고 밟아간다. 애기손 같은 단풍잎, 다음엔 샛노란색의 귀여운 은행잎, 특히 어른 손바닥보다 큰 플라타너스 잎을 밟으면 왠지 점수를 많이 딴 것 같다. 혼자 이렇게 놀면서 길을 걷다 보면 재밌다. 혼자서도 충분히 정신없이 재밌다.
어렸을 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쿠키를 좋아했던 어린이가 어른이 되면 이렇게 길거리에서도 침을 흘리며 걷는 걸까. 눈이 왔을 때 어린이는 하늘을 보고 어른은 땅을 본다고 한다. 재밌게 놀았지만 이 많은 쿠키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엄마는 내가 쿠키를 먹을 때 부스러기를 흘릴까 봐 꼭 접시에 받쳐 먹으라고 하셨다. 그래도 언제나 흔적을 남기는 아이처럼 가을바람도 곧 가을이 끝나간다고 흔적을 남기나 보다. 엄마가 내가 흘린 부스러기를 말없이 치워주셨던 것처럼 가을바람이 떨어뜨린 쿠키를 치워주시는 분들의 고마움을 마음속에 새겨본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면 나뭇잎이 눅눅해져서 싫지만, 쿠키가 열리지 않는 겨울이 온다는 게 달갑지 않지만. 그래서 가을이 더 소중하다. 낙엽 쿠키는 딱 이때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