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이 높고, 가을 햇살이 순하다.
얼마 만에 누려보는 사치인가.
산기슭 아래 일반 주택을 개조한 카페에 들렀다.
카페 앞 넓은 뜰에 핀 골드 메리 꽃송이에 나비와 벌들이 분주하다.
겨울을 앞둔 그들의 부지런한 날갯짓을 보자니 마리아 릴케의 시 '가을날'이 절로 떠오른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드리우시고
들판에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을 영글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어
열매들이 온전히 무르익게 하시고... (중략)
그런데 어어... 먹빛 보라나비 한 마리가
꽃들을 가뿐히 지나치더니 돌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나의 움직임이 감지됐을 텐데도 날개만 위아래로 움직일 뿐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화석처럼 돌에 박혀 있다.
아파 보이지는 않는데...
꿀보다 돌에 앉아 햇살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당장 눈앞의 물고기를 탐하기보다
자신의 존재 의미를 탐구했던 갈매기 조나단...
안녕! 철학하는 먹빛 보라나비야...
나비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마른 연보랏빛 라벤더 꽃 2송이가...
나비 날갯짓을 하며 찻물에 향기를 풀고 있었다.
하하 하하하
꼭 먹빛 보라나비가 내게 주는 차 한잔 같아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둥글게 귀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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