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향이었던 그 아이
앞자리의 아이가 자꾸 뒤를 돌아보며 까꿍놀이를 하잔다. 이륙할 때 아이 울음소리가 났었는데 이제 괜찮아진 듯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비행이 힘들었을 아이가 안쓰럽기도 해서, 표정도 몇 개 없는 내가 눈썹과 입꼬리를 씰룩대며 까꿍을 한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데도 아이가 좋아라 한다. 나는 동작을 더 크게 하여 아이에게 호응해주기로 한다. 목 디스크의 통증이 느껴졌지만 괘념치 않고 고개를 좌석 뒤로 숨겼다가 좌석 사이 뚫린 공간으로 불쑥 내민다. 갑자기 나타난 내 얼굴에 아이의 눈이 커다래진다. 연신 꺄아 소리를 낸다. 얼마를 반복했을까. 나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눈이 참 깊다.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차분하고 안정적이다. 몸짓이 아이답지 않게 찬찬하고 가만가만하다. 손을 내밀어본다. 방긋 웃으며 내 손을 잡는다. 나는 과감하게 아이 쪽으로 두 팔을 내민다. 아이가 주저 없이 내게 안긴다. 낯선 이에게 보여주는 완벽한 호감. 이 이상의 친밀감이 있을까. 아이와 교감을 나누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실 아기를 좋아하는 여느 여자들에 비해 -이 비행기의 스튜어디스도 아까부터 아이에게서 눈을 못 떼고 있다-나는 아기들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아기보다 강아지가 좋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던 나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생각이 든다. 아기를 싫어한 게 아니라 나는 단지 차분한 아이를 좋아했던 것이라고. 뭔가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했다는 뿌듯함이 든다. 그래 나도 아기 좋아했어. 단지 좀 산만하고 시끄러운 아기들을 좋아하지 못했을 뿐이야. 아기는 원래 시끄럽고 산만하다고 누군가 반론을 제기할 것만 같다. 그럼 나는 내 앞의 아기를 증인으로 세우겠다. 모든 아기들이 다 똑같은 건 아니야. 산만한 아기도 있지만 조용한 아기도 있어.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하는 아기도 있지만 맘에 드는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런 직진형 아기도 있다고. 나는 단지 내 성향에 가까운 그런 참한 아기들을 좋아하는 것 일 뿐. 애초부터 모성애가 부족한 여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여럿이 길을 가다가 유모차의 아기를 만난 적이 있다. 동행했던 여자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돌고래소리를 내며 아기에게 다가갔다. 아기도 손가락을 치켜들며 덩달아 흥분했다. “너무 이뻐” “아구 구구” “요 손가락 좀 보아” “이름이 뭐예요 안아봐도 돼요?”경쟁적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아기에게 관심이 없는 나만이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다. 진짜 예쁘지 않으면 예쁘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나다. 그러면 동행인들이 내게 묻는다 “안 예뻐요?” 사실 누가 내게 아기를 예뻐하라고, 여자라면 그래야 한다고 말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상황이 불편했다. 모든 여자가 느끼는 아기의 사랑스러움을 나만 느끼지 못하는 건가 싶어서 나를 의심하기도 했다. 내 아이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모든 순간이 예쁘지 않았다. 길에서 만난 아이도, 집에 있는 내 아이도 예쁜 짓을 해야 예쁘고 나랑 통해야 예뻤던 것이다.
사람을 만날 때, 의견을 말할 때, 물건을 고를 때, 나는 좋고 나쁜 것이 분명한 편이다. 의견을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짧고 정확하게 말하며, 말이 통할 것 같은 사람과, 몇 번을 만나도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는 편이다. 물건을 고를 때도 나의 취향과 비 취향은 짧은 시간에 드러난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은 가진 성향을 못 고친다는데 그렇다면 나는 나만의 성향으로 똘똘 뭉친 폭 좁은 노인네가 될 것인가. 그리하여 결국 찾아오는 이 없는 외로운 노년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인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도 잘 지내는 인간이 어른이라 하였는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몇 사람 하고만 소통하다가 결국 어른이 되지 못할 것인가. 설령 그렇다손 치더라도 나는 사람을 폭넓게 사귀지 못했다거나 혹은 그릇이 크지 못하다는 죄책감을 거부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더불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을 지향하겠다. 다만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남에게 강요하지는 않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싫어하지 않겠다. 그렇게 나만의 기준으로 내 성향대로 살겠다. 모든 아기를 좋아할 순 없지만 차분한 아기를 만나면 힘껏 까꿍 하며 살겠다.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인생의 방향성을 점검하는 글이 되어버렸다. 어느새 착륙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가까웠구나. 아무튼 성향대로 살면 시간도 빨리 흐르는 법이다. 오랜만의 제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