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신기루만 빼고는, 광활하게 펼쳐진 황량한 언덕들이 신기루의 무게에 눌린 채 소리없이 몸을 떨며 하늘을 향해 겹겹이 솟아올랐고, 이글거리는 오후의 햇살이 창백한 황색 능선의 윤곽을 흐릿하게 지우고 있었다. 유일하게 분간해낼 수 있는 것은 그 능선들을 가로지르며 구불구불 제멋대로 이어지는 희미한 경계선, 그리고 대지에 드문드문 박혀 있는 메마른 가시덤불과 돌멩이들의 가느다란 그림자들뿐이었다. 이런 것들 이외에는 도대체 아무것도 없었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건조한 네게브 사막 위로 극심한 팔월의 더위가 도사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 지역에서 눈에 띄는 생명의 흔적이라면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와 진지를 설치하기 위해 작업 중인 병사들의 소음뿐이었다. 그 소리들은 언덕 꼭대기에 서서 쌍안경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살피는 그에게도 들려왔다. 그는 뜨겁게 이글거리는 햇볕을 등진 채, 모래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눈길을 옮기다 이따금씩 능선에서 눈길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다 마침내 쌍안경을 내리고 땀을 훔친 뒤 쌍안경을 가방에 도로 집어 넣었다. 그런 다음 건조하고 사나운 오후 공기를 뚫고 진지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아다니아 쉬블리, 사소한 일, P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