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126. 타자의 시선

by 노용헌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사진기를 들고 있는 사진가의 주체적인 활동이기도 하고, 사진가는 무언가 자신을 촬영하는 셀프카메라를 제외하고 대상을 향해, 바라보는 자가 된다. 이때 바라보는 자와 바라봄을 당하는 자의 관계가 형성되고, 나와 타자로 형성되어진다. 사진기를 든 사진가는 타자를 바라보는 자(훔쳐보는 자)이기도 하고, 타자와 관계를 맺는 자(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자)이기도 하다. 타자를 단순히 바라봄은 사실 일차적인 문제이다. 그 이상의 의미를 형성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문제이다. 인간은 타자의 시선(욕망)에서 내가 욕망하는 시선을 봄으로써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두 타자의 욕망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어쩌면 인간은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남이 나를 바라보길 원하기도 하는 것이다. 타자의 모습을 통해서 어쩌면 나를 되돌아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세상을 의식이 있는 존재(대자존재)와 의식이 없는 존재(즉자존재)로 나누고 의식이 있는 존재를 다시 나와 타자로 나누고 타자이론을 전개하였다. 그러면서 타자와 자신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서로 바라보는 시선의 개념을 도입하고 ‘타자의 시선은 감옥이고, 지옥이다’라는 말을 하였다. 사르트르에게 타자는 ‘나를 바라보는 자’이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그것은 마조히즘이나 사디즘으로 볼수도 있을 것이다. 거리에 설치되어 있는 CCTV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을 것이다.(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아마도 시선은 교차된다.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


서구의 시선, 서구의 자연관은 타자로서의 자연관이다. 타자로서의 자연은 지배관계에서의 자연이고, 개발로서의 대상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연은 길들여지고, 정복되고, 파괴되어지는 대상으로서의 자연이다. 이와는 달리 동양의 사상은 다른 사유형태를 띈다. 주객분리의 대립적인 시선이 아니라 대상(세계)과의 합일성을 중요시한다. 현상과 실체의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니라 전원적 일원론(全元的一元論)을 보여준다. ‘나’는 우주 만물과 하나로서 일치화된 ‘나’인 것이다. 주체와 대상사이에서 분리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동화되는 시선은 과연 가능한 것인가? 대상 그 자체로, 대상에 몰입하여 그 자체로 향하게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서구적 사고관과 서구적 시선으로 길들여져 있다. 원근법적 체계를 갖고 있는 서구의 자아중심적인 세계관과 기계적 자연관에서 나의 시선은 어떻게 바뀔수 있을 것인가?


사진의 미학은 시선의 미학이다. 정신병자, 성도착자, 선천적으로 기형인 사람들을 촬영한 다이안 아버스가 본 시선은 어쩌면 제3자의 우리에겐 부담스러운 시선일지도 모른다. 수잔 손택이 말했듯 아버스의 사진은 연민이란 감정을 뭔가 부적절한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아버스의 대상이 되었던 그들을 보면서 누군가는 그들을 혐오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들을 동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가와 대상간의 시선도 있지만 그 사진을 바라보는 또 다른 사람의 시선도 존재할 것이다. 아버스는 그들을 사진찍음으로서 그들과 동질화 되어 갔지만, 그의 사진을 보는 외부인의 시선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게 할까? 그녀는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촬영하면서 단지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진 않았다.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후에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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