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길에서 만난 사람들
길을 걷다보면 많은 풍경들이 지나간다.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인들의 모습, 그 길에 정착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 오래된 건물들과 재개발이 한창인 건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비가 오고 눈이 오는 자연풍경들. 나는 어떤 길 위에 서 있다가 어떤 길을 향해 걸어가는가. 많은 길들이 내 눈 앞에 놓여져 있고, 나는 이런 길들을 얼마나 많이 걸어가고, 밟아보지도 못한 길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비행기가 구름을 빠져나와 펼쳐지는 장면처럼, 내 눈 앞에 펼쳐진 장면들은 길 위에 있고,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익숙한 길과 낯선 길이 있다. 어릴적 내가 자란 고척동에서 오류동까지는 꽤 멀게 느껴졌지만 사실 그리 먼 길도 아니었다. 동양공전이 있던 곳에서 오류중학교까지 걷는 동안에 주택가도 지나고, 조그마한 공장들도 지나고, 숲길도 지나고, 골목길도 지나며 한 시간 가량을 걷게 된다. 골목길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삥을 뜯는 동네 건달도 만나고, 어른들은 항상 골목길로 다니지 말라고 하지만 새로운 길을 찾아 지름길이라도 찾으면 마냥 신기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비만 오면 흙탕길이었고, 아스팔트로 깔린 요즘의 길은 사실 땅에서 주는 기운은 메마른 것 같다. 익숙한 길이든 낯선 길이든, 그런 길에서 뭔가에 시선을 붙잡기도 하고, 흥미롭든 흥미롭지 않든 늘 새로운 풍경에 마주하게 된다.(아이들에게는 문방구에 새로 나온 아카데미 과학사의 새로운 장난감이나, 오락실이겠지만) 그 새로운 풍경이 기억속에 잔상으로 남아진 꿈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 꿈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지.
길을 가다보면 논밭도 지나고, 사람도 만나고 동물도 만나고, 건물도 만나고, 꽃도 만난다. 우리는 무생물이든 생물이든 그들과 관계를 맺는다. 길을 걷다가 하늘도 바라보고, 땅도 보며 작은 벌레도 만난다. 낯선 사람을 만나기도, 오래된 친구를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길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민족21에서 만난 소년 빨치산 김영승 선생님과 함께 갔던 백아산 산행에서 김영승 선생님은 등산로가 아닌 길을 만들면서 갔었다. 길은 잘못 들어서면 돌아가면 되기 때문에 길은 항상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쩌면 인생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 인생에서 만나서는 별로 득이 없는 사람들, 해가 되는 사람들, 이로운 사람들,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만난다. 어쩌면 상처받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한다. 길 한가운데에서, 또는 막다른 골목길에서.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일상의 길 위에서 만나게 된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는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길/윤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