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촬영금지
촬영금지지역입니다. 촬영하지 말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촬영하지 않으면 됩니다. 예전에는 청와대 인근에서 촬영하다보면 경계를 서던 군인들이나 경찰들이 아예 필름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촬영금지는 어떤 기준이 있을까요. 1990년에 눈빛에서 출판된 『촬영금지: 한국-격동의 4반세기』의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의 사진들이 생각납니다. 그의 사진들은 일본인의 시선으로 낯설게 바라보았던 우리들의 낯설지 않은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1964년부터 촬영된 우리시대의 풍경들이기 때문이다. 구와바라 시세이가 1965년 한일 국교 수복의 굴욕외교에 반대하는 학생 데모의 사진에서부터 우리의 가난한 삶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1989년 9월 서울에서 열렸던 그의 사진전에서 왜 이처럼 가난한 한국의 모습을 촬영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진, 특히 보도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찍히는 쪽에 상처를 입히는 냉혹한 행위인지도 모른다.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찍히는 사람이 언제나 즐거워하는 것만은 아니다. 불안하게 생각하는 사람, 화내는 사람, 얼굴을 돌려버리는 사람... 나는 어쩌면 많은 한국인에게 상처를 입혀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의도적인 행위는 아니었다. 다만 사라져 없어져 가는 역사의 현장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의 말은 최민식 선생의 자갈치 시장의 가난한 우리들의 초상을 떠올리게 한다.
구와바라 시세이와 한국의 인연이 따뜻했던 것만은 아니다. 두 번째 한국 체제 기간 중이던 1965년 12월 그는 강제출국조치 당해 한국을 떠나야 했고, 이후 3년간 그의 출입금지조치는 풀리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관광 비자를 얻어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으나 그 이후엔 다시 한국행 비자가 발급되지 않았다. 이런 그를 돕기 위해 일본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재일교포 친구 이강 씨가 나섰다. 그는 한국에 취재차 들를 때마다 여러 곳에 구와바라 시세이의 선처를 호소했고, 덕분에 그의 한국행은 다시 가능해졌다. 그러나 1971년 10월 15일 한국 김포공항에 도착한 이강은 검은 지프차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그에게 북한을 왕래하고,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간첩행위를 했다는 죄명이 쓰인 것이다. 구와바라 시세이는 그가 과연 북한에 갔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다만 그가 김대중이 입후보한 대통령 선거를 취재할 때, 김대중이 일본에 들렀을 때 그와 함께 회식했던 인연으로 연행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따름이다.
1975년 2월 1일 구와바라 시세이의 친구 한 명이 또 한국에서 행방불명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으로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 사건이 일어나고 반년, 베트남의 사이공이 함락되기 3개월 전인 1975년 1월 1일 재일교포 김달남이 중앙정보부에 의해 연행되었다. 그에게 씐 혐의는 북한에 밀항, 비밀공작원이 되어 한국에서 파괴활동을 한 북한의 비밀공작원이란 것이었다. 그에겐 사형이 구형되었고, 그의 항소는 기각되었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오는 순간, 재일교포 김달남, 일본명 타츠오의 목숨을 구명해준 것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1978년 크리스마스 아침, 김달남 씨는 석방되어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 이야기는 구와바라 시세이가 직접 경험한 우리의 근현대사의 단면들이기도 하다. <바람구두의 쓸쓸한 풍소헌(風簫軒)>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 촬영은 아마도 간첩의 정보수집 행위로 여겨졌던 암울했던 시대를 보여주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에게 촬영금지는 어떻게 받아들여하는가? 촬영은 이용에 따라서 홍보사진이 될 수도 있고, 경찰의 시위대를 채증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채증경찰’을 소재로 작업한 사진가 김민은 ‘채증하는 경찰을 다시 채증’으로 다소 아이러니하지만 카메라로 촬영을 하고 있는 경찰들을 사진찍었다. 2014년 8월15일 세월호 집회와 2015년 5월1일 노동절 집회에서 채증하는 경찰들의 사진으로 그는 500만원이라는 벌금(일반교통방해죄)을 받기도 했다.
김민, 청운동, 2014
“우리는 불행하게도 권위주의 시대의 강압통치를 오래도록 경험하여 “출입금지”“사진촬영금지”에 아주 익숙해 있다. 세계 모든 나라의 박물관이 별도의 규제가 없는 한 플래시 없는 사진촬영을 허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진촬영금지를 마치 박물관의 원칙으로 알고 폐광촌의 석탄박물관조차 전시장 입구에 빨간 글씨로 “촬영금지”라고 붙여 놓고 있다.”<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 9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