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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66

갑자기 내리는 비

by 노용헌

나는 사람들에 대해서나 집에 대해서나 종종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는 사람들을 수년간, 그들 중 많은 이들을 심지어는 수십 년간 쳐다보게 되며 그들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쳐다본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알고 있던 집들이 사라져버리거나 개조되어 그중 많은 집을 다시 알아보지 못하게 되고, 그 후로는 화가 나서 더 이상 보지 않는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그런 날이라면,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내가 보아온 이들이 오래된 집처럼 사라져버리거나 개조된다는 사실을 통보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느낌이 또다시 들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 느낌은 내가 자주 갖는 어떤 느낌, 즉 내가 내 내면의 동의 없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이어진다. 정확히 말하면 난 누군가 내게 이 세상에서 살고 싶으냐고 물어봐주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내가 만약, 이를테면 오늘 오후 그것에 동의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내게 동의를 구하는 사람이 실제 누구여야 하는지 난 아는 바가 없고,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빌헬름 게나치노, 이날을 위한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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