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136. 공감에 반대한다Against Empathy

by 노용헌

예일대 심리학과 폴 블룸Paul Bloom교수의 ‘공감에 반대한다’라는 주제의 강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https://youtu.be/ORqCwiOMYgU) 그의 강의 내용은 공감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설명하면서 공감의 긍정적인 면 보다는 역기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요,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스탈린) 공감과 도덕성이 상충하는 경우도 있다. 공감 연구의 대가인 다니얼 뱃슨의 실험의 예이다. 이름은 셰리 서머스이고, 이 아이의 나이는 올해 11살이다. 그런데 이 아이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생명을 구할 순 없지만 고통은 경감시킬수 있는 약이 있다. 의료 시스템이 늘 그렇듯, 이 약은 공급량이 부족하다. 이 치료를 받을 아이들의 대기 명단이 있는데 셰리의 이름은 한참 아래에 있다. 이때 여러분에게 ‘셰리를 명단 위로 올리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여러분은 병원 행정 관계자라서 마음만 먹으면 명단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치료받을 예정이었던 다른 아이가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부분이 ‘아니오’라고 대답했습니다. 정말 가엽고 안타깝지만 공정하게 작성된 명단이라면 어쩔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뱃슨은 다른 피험자 집단에게는 다른 조건을 추가한다. ‘여러분이 그 아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셰리의 입장이 돼서 기분을 느꺼보세요’ 그러자 결과는 뒤집어졌고, 대다수가 셰리를 명단 위로 올리겠다고 한 것이다.


공감에 반대하는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한다. “편파적이고 편향된 시선일 수 있기 때문에” “공감은 폭력 충동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잘못된 편견에 공감할 경우 악행을 유발하기 때문에” 또한 그는 공감과 동정심을 이야기하면서, 동정심은 타인과 관련된 감정이라서 우리를 타인과 연결시킨다. 동정심은 사랑을 비롯한 긍정적인 감정과 연관되며 건강과 친절 등의 결과를 불러온다. 하지만 공감은 감정 이입으로 인한 고통을 초래한다. 공감은 자기 자신하고만 연관되어 스트레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건강을 잃고 탈진하며, 반사회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가 공감을 반대하는 건 도덕적 행동과 판단에 국한된다고 말한다. 그의 강의 내용 중에서 어느 부분은 공감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악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소시오패스의 감정에 공감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마음과 공감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자신과 타인사이의 일정부분 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TV생중계로 우리는 참사의 현장을 보았다. 모두가 그 참혹한 뉴스에 느꼈던 정신적 충격은 모두가 공감한다. 그러나 그 공감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트라우마를 가진게 사실이다. 나는 타인의 아픔에 얼마만큼 공감하고 있을까?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니라도 많은 봉사자들이 가진 트라우마. 공감을 한다는 것을 넘어서 판단력이 없어진, 잘못된 판단을 낳지는 않았을까하고. 공감에 반대한다는 강의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사진가는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수없이 줄타기를 한다. 피사체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라고 여겨질 때 그의 아픔을 잘 표현할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사진촬영에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분노는 오히려 사진기를 버리고 행동하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얼마나 객관적으로 할 수 있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씀하신 ‘고통앞에 중립은 없다’고 하지만, 우린 공감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사이에서 선택을 하여만 한다. 사진가는 대립되어 있는 경찰과 시위대의 가운데 서서 선택을 한다. 어느 쪽을 찍을 것인가? 경찰을 찍을까, 시위대를 찍을까.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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