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85

슬픔의 긍지

by 노용헌

여전히 습한 쏨므 만이 붉은색과 푸른색, 잿빛 녹색이 어우러진 노을을 침울하게 반사하고 있다. 너무 멀리 빠져나간 바닷물은 아마도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인가? 아니다. 바다는 돌아올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알게 된 바다는 순식간에 변덕을 부리니까. 바다의 차가운 혀가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당신에게서 신경질적인 비명을 끌어낼 때까지 우리는 바다에 대해선 생각지 않고 다만 모래 위에서 책을 읽고, 놀고, 자고, 하늘을 바라본다. 그때 바다가 거기에 있다. 아주 고요하게, 뱀이 움직이듯 조용한 속도로 20Km에 달하는 해변을 뒤덮어 어느새 책을 적시고, 흰 치마를 더럽히고, 크로케오 테니스를 치던 곳도 물에 잠긴다. 5분이 더 지나고, 바다는 이제 꼬리를 흔드는 암캐처럼 순종적이고 만족스러운 동작으로 빠르고 부드럽게 철썩철썩 해안의 옹벽을 치고 있다....

석양 속에서 검은 새 한 마리가 솟아오른다, 죽어가는 태양이 쏘아 올린 화살이다. 내 머리 위로 팽팽한 명주실이 튕기는 소리를 내며 지나가더니, 어두운 동쪽으로 멀어지며 하얀 갈매기로 변한다.....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슬픔의 긍지,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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