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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86

나무의 속삭임

by 노용헌


“우리 인간들이 슬픔에 차서 생을 견디어 나갈 수 없을 때, 한 그루의 나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살아라, 참고 나를 보아라! 산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린애들의 생각일 뿐, 만일 그대의 내부에 도사린 신으로 하여금 말씀하시게 한다면 그런 생각들은 입을 다물게 되리라.

그대의 길이 어머니와 고향으로부터 자꾸만 멀어져 간다고 해서 그대는 불안 해 하는데, 그러나 그대가 걷는 한걸음 한걸음과 수많은 날들은 그대로 하여금 다시 어머니에게로 다가가게 하는 것이다.

고향은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거나 혹은 아무 것에도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녁녘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 소리를 듣노라면 방랑에 대한 그리움이 내 가슴을 쥐어뜯는다. 그것을 오랫동안 조용히 듣고 있노라면 그 그리움은 핵심과 의미를 보여준다.

그것이 설사 괴로움으로부터의 도피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며, 어머니의 추억에이며 생의 모습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것은 집을 향해 가고 있다. 길은 어느 것이나 모두가 집으로 통해 있어 한걸음 한걸음이 새로운 탄생이요, 죽음이다. 그리고 모든 무덤은 곧 어머니이다.,

우리들이 어린애 같은 신념으로 불안을 느낄 때, 나무는 어스름 저녁 우리들에게 그렇게 살랑거리며 일러준다, 나무는 그들이 우리보다 오랫동안 산만큼 심오하고 냉철한 사념을 갖고 있다. 그들은 우리들이 그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지 않는 한 우리들보다 훨씬 현명하다.

그러나 우리들이 나무의 속삭임을 알아듣게 되면 우리들의 사념과 모자람과 졸속拙速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만족을 얻게 된다. 나무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나무가 되고 싶다는 것, 이상의 소망을 갖게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람은 현재의 자기 자신 이상의 것이 되려고도 않는다. 그의 현재가 바로 고향이며 행복이므로,“


-헤르만 헤세의 <나무>-

안성 죽주산성ROH_778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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