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사건들
사람들은 아마 내게 이렇게 말할 게다. "당신은 지금 날씨가 어떻다는 둥, 막연히 미적인, 어쨌든 순전히 주관적인 느낌만 얘기하네요. 사람들, 관계들, 그곳의 산업, 상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언급하지 않지요? 아무리 그냥 사는 사람일 뿐이라도 이런 것들은 전혀 눈에 안 들어오나요?" 무슨 말씀! 나는 내 방식대로 현실의 이 지역 속에 들어간다. 즉 내 몸을 갖고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 몸은 곧 내 유년 시절이다. 역사가 만들어놓은 그대로의 어린 시절. 이 역사는 내게 시골의, 남프랑스의, 부르주아 계층의 청년기를 부여했다. 내게서 이 세 가지 요소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나에게 부르주아 계층 하면 지방이고, 지방하면 바욘이며, (어린 시절의) 시골 하면 항상 바욘에서 좀더 내륙 쪽으로 들어간 시골, 소풍과 방문과 이야기로 짜인 망(網)이다. 이런 식으로 기억이 형성되는 나이에, 나는 '거대한 현실들'로부터 오직 그것들이 내게 부여하는 '감각'--냄새, 피로감, 목소리, 돌아다니기, 빛, 즉 실재에서 어찌 보면 무책임한 것, 그리고 의미라면 오로지 훗날 잃어버린 시간의 추억을 형성한다는 의미뿐인 것--만을 취했던 것이다. (내 어린 시절 중 파리에서 보낸 시기는 이와 전혀 달랐다. 물질적 곤궁에 찌들었던 그 유년은 말하자면 빈곤이라는 것을 혹독하게 추상화해 놓은 개념이었고, 그 시절의 파리에서 나는 어떤 '느낌'이라 할 만한 것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추억으로 내 안에 굴절된 모습 그대로의 남서부 지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주베르가 공식화해 놓은 이런 말을 믿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가 느낀 대로 속마음을 표현해선 안 되고, 자기가 기억한 대로 표현해야 한다."
-롤랑 바르트, 소소한 사건들, P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