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143. 비평적 거울로서의 사진기자

by 노용헌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 국빈방문 행사를 취재하던 한국의 한 사진기자가 중국 측 경호 관계자로부터 폭행을 당한 언론기사로 논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사진기자들은 어떤 위치에 있으며, 사진기자의 자세와 태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여러 생각들을 해본다. 사진기자라는 직업이 일정부분 특권의식을 가진 자로서의 갑질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기래기라는 혐오아닌 혐오를 받고 있는건 아닌지.


예전 사진학과 학생시절 많은 학생시위가 있었고, 데모 현장에서 사진을 찍던 선배들이 있었다. 하이바에 방독면을 쓰고 취재하던 사진기자가 엄청 멋있고, 부러웠었다.(사진집단 현장의 류기남 선배, 송정근 후배가 생각난다) 학생들은 기껏해야 마스크에 치약이나 눈가에 바른게 다였으니 말이다. 페퍼포그(pepper fog)가 뜨면 지랄탄은 시위대 중간은 아수라장이 된다. 최루탄의 연기는 바람을 타고 시위대 후미까지 날라 오고 매케한 연기속에 모두 콧물 눈물 뒤범벅이 되었다. 그때 사진기자는 맨 앞 전경과 시위대 중간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기자는 전경의 뒤에서부터 시위대 후미까지 바쁘게 움직이며 이리저리 모든 곳을 커버하기 위해서 애쓰던 모습이다. 물론 흥분한 전경과 시위대 양쪽에서 폭행을 당할 위험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전쟁 사진기자의 목숨은 자신을 지킬 총도 없고, 오로지 카메라 하나에 자신의 목숨을 담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폭행은 사실 정당화될수 없지만, 프레임에 갇힌 사고는 우리의 시선이 한정되기 마련이다. 2008년 광우병 사진을 일년내내 사진을 찍게 되었다. 이때는 뉴시스에 있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행위에서 사실 제지를 받거나 뭐라고 했던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때도 사실 기레기에 대한 혐오의 프레임에서 폭행을 당했던 후배 사진기자도 있었다. 사진은 과연 어떤 프레임에 갇혀있었던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기자들은 어떠한 생각으로 현장에 있는 것일까? 우리 스스로 자문한다. "사진기자들은 왜 그 뉴스의 현장에 있는가? 그는 무엇을 취재하고 있는가? 누구를 위해서 뛰어든 것인가?" 내 생각으로는 역사라는 시대의 압력이 그를 본능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 같다. 사진기자들은 모두들 나름의 방식으로 이 세계의 다양한 부분들과 연관을 맺어 가면서 취재한다, 때때로 사진 작업은 일반인들이 가볼 수 없는 곳으로 사진기자들을 이끌기도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기자는 사건을 만들지 않는다. 그는 시대를 기록하는 비평적 거울인 것이다.


텔레비전 기자들과 달리 사진기자들은 팀을 구성해 취재하지 않는다. 사진기자는 사건과 홀로 마주선다. 홀로 선 사진가는 더 많은 결정을 해야 한다. 사진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는 작가의 개성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개입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진기자 역시 다양한 개인사와 이데올로기들로 복잡하게 얽힌 존재들이다. 취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사건과 주제들은 사진기자들의 개인사(個人史)들, 이데올로기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취재과정에서 이러한 것들이 반영된다. 그리하여 때때로 사진 작업의 결과물은 우리 사진기자들 자체가 되기도 한다. 우리의 사진을 보여준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잡지사진가로 불리든, 포토저널리스트로 불리든, 혹은 다큐멘터리사진가, 사회사진가로 불리든, 사진기자들은 숨어서 엿보는 자가 아니다. 그들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다.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사진가가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다. 사진은 세상의 여러 가지 사실들, 우리 자신들 모두를 따져 볼 만한 것으로 만든다. 사진기자는 우리 세상의 온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사진기자는 그 자신이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사진이 논쟁을 일으키고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을 떠올릴 때 우리는 동영상보다는 사진들을 먼저 떠올린다. 베트남 전쟁의 "결정적인 순간들"-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 우리의 집합적 기억의 일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진들은 베트남과 같은 상황에 대한 시각적인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상황들이 더욱 잔혹할수록,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더욱 처참할수록 유념해야 할 것은,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이 세상이자 이 세상의 폭력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러한 상황을 모두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사태들을 우리는 충분히 볼 수 없었다. 나는 우리 사진기자들이 르완다의 인종청소 사건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진들은 아프리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주고, 해결방법을 찾아내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사진들을 보아야 한다. 보스니아도 체첸의 경우도 모두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이런 사진들을 보고 스스로의 잔혹성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스스로 이 사실을 깨우치지 못한다면, 이러한 비극적 희생의 원인제공자인 우리 인류는 하루 아침에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 사회의 참다운 영혼을 연결하는 이러한 사진기자들 속에 내가 속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사진의 놀라운 힘은 모든 이들에게 번역할 필요도 없이 곧 바로 전달된다는데 있다. 사진은 인간 존엄성의 가장 순수한 표현일 수 있으며, 그것의 범세계적인 언어이자 비평적 거울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진으로 보여지는 인간의 존엄성을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사회의 진보와 변화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이다. <World press photo This Critical Mirror, One of the leading photographers of our times reflects on his profession by Sebastiao salgado>

"문화는 어느 누구의 생명도 살려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구해낼 수 없다. 문화는 그 스스로 정당하지도 못하다. 그러나 문화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인간은 문화를 통해 자신을 투사한다. 이 비평적 거울만이 인류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 사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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