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일본영화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55·是枝裕和)가 쓴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이란 책을 보면서 나는 ‘사진을 찍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하고 다시 물어본다. 나는 현장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을까. 2017년도 한해가 저물어가고, 어쩌면 어떤 의미와 가치를 위해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지 내 스스로 되돌아보며 반성도 해본다. 그다지 별 의미를 내 스스로 찾지 못한다면, 다른 누군가도 의미를 찾지 못할 것이다. 내가 지킨 약속을 내 스스로 다짐과 약속을 하지만, 온통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곤 한다. 세상은 세월이라는 시간으로 덧칠해져 하루하루 쌓여가며 축적된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축적하여 진실을 그리는 것이다.”
이런 소리가 예전부터 텔레비전 현장에서 계속 들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다큐멘터리 방송을 제작해 보니 사실, 진실, 중립, 공평과 같은 말은 매우 공허하게 들렸습니다. 오히려 다큐멘터리란 ‘디양한 해석 가운데 한 가지 해석을 자기 나름대로 제시하는 것’일 뿐이지 않을까요. 예전에 닛폰 TV에서 <논픽션극장>이라는 다큐멘터리 방송을 만든 우시야마 준이치 씨는 “기록은 누군가의 기록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는데, 정말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 시기에 사와키 씨의 방법론을 경유하여 ‘나’의 시점으로 말하는 방법론에 이르렀던 저와 ‘다큐멘터리란 이래야 한다’라는 세간의 말 사이의 괴리는 매우 심각했습니다. -113~114P
‘기록은 누군가의 기록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라는 말이 뇌리에 남는다. 기록으로서의 사진인가, 표현으로서의 사진인가라는 두 가치의 말 사이의 괴리는 기록자와 예술가 사이의 나는 어디에 서 있었던가. ‘다큐멘터리란 이래야 한다’라는 고전적인 말에 강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던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종종 ‘영상은 자기표현인가 메시지인가’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적어도 저는 다큐멘터리로 시작했기 때문에 작품은 결코 ‘나’의 내부에서 태어나는게 아니라 ‘나’와 ‘세계’의 접점에서 태어난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상은 카메라라는 기계를 거치므로 이 부분이 두드러집니다.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세계와 만나기 위해 카메라를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다큐멘터리의 기본이며, 그것이 픽션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요. -252~253P
영화에서의 픽션이 아니고, 표현의 순수예술이 아닌, 그야말로 평범한 일상을 담으며, 그 속에서 나를 만나고, 세계를 만나는 그 접점에 카메라가 있다. 카메라는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자인 셈이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자인 셈이다. 카메라는 항상 현재를 찍고 있지만, 사진은 언제나 과거를 보여주고 있다.
텔레비전은 재즈입니다. 그럼 재즈란 무엇인가 하면,
그래요, R. 휴즈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재즈는 원주圓周입니다. 당신은 그 한가운데 있는
점이고요. 재즈는 작곡된 음악이 아니라 박자와 리듬이
있는 한 느끼는 대로 나아가며 작곡하는 즉흥연주, 매우
행복하고 때로는 슬픈 연주 행위입니다.”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송신자와 수신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모두가 송신자와 수신자입니다. 이전에
쓰인 각본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다가오는
‘현재’에 모두가 저마다의 존재로 참여하는 잼 세션입니다.
텔레비전에 ‘이전’은 없습니다. 언제나 ‘현재’입니다.
언제나, 언제나 현재의 텔레비전. 그러므로 텔레비전은
재즈입니다. -3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