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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93

음모론

by 노용헌

내가 알고 지낸 사람들 중에는 비밀에 싸인 어떤 원수의 음모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할아버지에게는 유대인들이 그런 음모를 꾸미는 원수였고, 예수회 신부들에게는 프리메이슨이, 가리발디파인 아버지에게는 예수회가, 유럽의 절반쯤 되는 나라들의 군주에게는 카르보나리가, 마치니파인 내 동학들에게는 사제들의 조종을 받는 국왕이, 세상 절반의 경찰들에게는 바이에른의 일루미나티가 그런 적들이었다. 어떤 음모 때문에 자기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지상에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누가 알겠는가. 뒤마는 하나의 서식을 만들어 낸 셈이다. 누구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 서식을 작성하면, 자기 나름의 음모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뒤마는 진정 인간의 흉중을 꿰뚫어 본 작가였다. 인간은 저마다 무엇인가를 열망한다. 불행한 사람, 운명의 여신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일수록 갈망도 크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열망하는가? 돈을 열망하고, 누구나 그 유혹에 빠지기 쉬운 권력(남에게 명령을 내리고 남을 모욕하는 쾌감)을 열망하며, 자기가 겪은 부당한 일(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부당한 일을 겪게 마련이다)에 대한 복수를 열망한다. 뒤마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우리에게 초인적인 권력을 줄 수 있을 만큼 막대한 부를 획득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그 부와 권력을 이용하여 원수를 하나하나에게 어떤 식으로 앙갚음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구심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왜 나에게는 그런 행운이 따르지 않는가(그렇게 엄청난 행운은 고사하고 그저 소박한 바람이라도 이룰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도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을 불행하게 만든 죄인을 찾아내려고 한다. 뒤마는 욕구 불만에 빠진 모든 사람들에게(모든 개인과 모든 민족에게) 그들의 실패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천둥산 꼭대기에서 열린 모임에서 어떤 무리가 그대의 몰락을 계획했다는 식으로.....

따지고 보면, 뒤마는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말씀대로라면 프리메이슨회의 음모를 밝혀낸 것은 바뤼엘 신부였고, 뒤마가 한 일은 그 폭로를 이야기 형식으로 꾸민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그 점에 비추어 나는 그 시절에 벌써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어떤 음모를 폭로하는 문서를 만들어서 팔아먹으려면 독창적인 내용을 구매자에게 제공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구매자가 이미 알아낸 것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만을 제공해야 한다. 사람들은 저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믿는다. 음모론의 보편적인 형식이 빛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움베르토 에코, 프라하의 묘지, P14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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