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156.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아닐지

by 노용헌

사진은 사각 틀에 담겨진다. 4:3이든 16:9의 화면비율이든 네모난 프레임안에 담겨진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유작인 <24 프레임>은 그가 무빙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로서의 열망을 담은 4분 30초짜리 단편 24편을 연작 형식으로 묶은 작품이다. 1878년 ‘말의 움직임’의 연속사진은 찍은 머이브릿지의 사진에서 보듯이 사진은 단일 프레임을 보여준다. 세상을 쇼트로 보느냐 시퀀스로 보느냐에 따라 사진과 영화는 여기서 길을 달리한다. 물이 담긴 컵의 사진과 컵이 쓰러져 물이 엎어진 사진 두 장은 내러티브의 연속성을 암시한다. 사진 한 장은 순간적인 쇼트의 의미인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프레임에 갇혀져 있는 공간을 보게 된다. 따라서 공간은 고립되어 보인다. 프레임밖의 공간은 상상할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존재에 관한 마음의 착시와 믿음에 관한 의문들이 프레임에 갇혀서 인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파이프 그림은 우리의 맹목적 믿음에 관해서 다시 질문하는 예일 것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만 믿는 것인지, 믿는 것을 보는 것인지, 우리는 자신의 관념에 빠져 세계를 판단하고 그 프레임에 가두려고 한다. 그래서 아마 우물안의 개구리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오는 것일지 모른다. 우물 정(井)자의 가운데는 프레임을 뜻할지도 모른다. 마치 첨성대 위의 네모난 사각틀로 우주를 관측한다. 우리는 자신만의 우물로 세계를 바라본다. 그것이 어쩌면 자신만의 개똥철학일지 모르겠다. 사각틀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사진에서 구도를 결정짓는 틀이기도 하다.

사진의 가장 기본적인 노출과 같은 기계적인 속성 외에 사진가는 프레임이라는 틀로 사진을 만들어간다. 작가의 의식세계는 프레임이라는 틀에 의해서 형성되어간다. 결국 사진에서의 프레임은 현실의 공간적인 테두리이면서, 작가의 표현 범위로서의 경계를 의미할 것이다. 프레임이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띄는 것에서 사진은 프레임에 갇히기도 한다. 우리는 프레임 안에서 그 의미를 찾으려고만 하고, 보이는 것만으로 인지하고 인식을 확장한다. 사진 한 장의 가지는 의미의 한계와 관객과의 소통의 문제는 다음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루버(Jan Groover)의 사진은 바로 사진의 의미를 작품 안에 가두기보다는 그것이 발생하는 구조에 대한 탐구라고 말한다.1) 이 말은 사실상 사진이 사각틀 프레임에 구성되자마자, 의미를 받아들이기에는 무리일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각자의 프레임에서 프레임된 사진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1) 이영욱, 잔 그루버


광의의 프레임에서 협의의 프레이밍은 사진에서 구성(Construction)일 것이다. 사각틀안에서 무엇을 담을지의 고민은 작가의 구성에서 보여진다. 구성은(Construction)은 넓은 의미에서 구도(Composition)일 것이다. 사진의 테마는 무엇인지? 빛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칼라와 톤, 질감은? 형상과 배경은? 사진의 그래픽적인 요소는 어떠한지? 시선의 흐름, 균형과 조화는 어떠한지? 가로인지 세로 프레임인지, 이 모든 요소들이 프레이밍되는 순간, 짧은 1/500초동안 결정되어진다. 회화적 원근법이 지향하는 구도를 벗어나는 탈프레임의 형식을 주장했던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의 파격은 이야기의 맥락으로부터 독립된 화면이고자 했다.2) 사진은 프레임으로 시작하여 프레임으로 끝이 난다. 결국 사진은 프레임을 벗어날 수 있을까? 프레임으로 경계된 안과 밖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2) 박신의, 사진에서의 탈프레임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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