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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114

유리문 안에서

by 노용헌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태도는 우선, 지금껏 겪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다. 그리고 앞뒤 관계와 주위의 상황에서 비롯된다. 마지막으로는, 애매한 말이기는 하지만, 내가 하늘로부터 점지받은 직감이 얼마쯤 작용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또는 상대방을 바보 취급하거나, 드물게는 상대방에게 걸맞은 대우를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내 경험이라고 하는 것은 넓은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몹시 좁다. 게다가 대부분 어떤 한 사회의 일부분에서 수없이 되풀이된 경험이어서 다른 사회의 일부분으로 가지고 갔을 때 전혀 통용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앞뒤 관계라든지 주위 상황 같은 것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그 응용 범위가 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두루 다름을 헤아리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더욱이 마음 헤아리는 시간이나 재료가 충분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극히 위태로운 자신의 직감이라는 것에 의지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직감이 과연 맞았는지 틀렸는지, 요컨대 객관적 사실에 의거해서 그것을 확인할 기회가 없을 때가 많다. 거기에 또 내 의심이 시종 안개처럼 끼여서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

만약 이 세상에 전지전능하신 신(神)이 있다면 나는 그 신 앞에 무릎을 꿇고서 나에게 티끌만한 의심도 끼여들 여지가 없을 만큼 밝고 맑은 직감을 주시어 나를 이 괴로움으로부터 해탈시켜 주기를 기도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불민한 애 앞에 나타나는 모든 사람들을 맑고 향기롭고 정직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나와 그 사람의 영혼이 딱 들어맞는 행복을 내려주기를 기도한다. 지금의 나는 바보로서 사람들에게 속거나 혹은 의심이 많아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거나, 이 두 가지밖에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불안하고 불투명하고 불유쾌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만일 이것이 평생 계속된다면 인간이란 얼마나 불행한 존재일까.


-나쓰메 소세키, 유리문 안에서, P13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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