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피사체는 무엇인가
피사체[被寫體]란 무엇인가. 사진이나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피사체란 말에서 시작한다. 피사체는 주제이기도 하다. 당신을 어떤 주제로 피사체를 다루고 있는지 묻는다. 피사체와 어떤 소통을 하고 있으며 어떤 거리를 취하고 있는지, 어떤 렌즈로 바라보는지 선택한다. 마치 우리 눈이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느끼는지 그리고 다시 묻는다. 결국 작가든 아니든 우리는 무언가를 보고 생각한다. 피사체는 결국 ‘사진의 의미’일지 모르겠다. 피사체에 질문을 던지고, 다시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피사체는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피사체에 대한 우리의 편협된 사고는 우리의 머리로 판단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경험의 잣대로 마구 재단한다. 피사체와의 우리의 거리는 경계가 허물어져 있다. 경계가 흐려진 인식은 피사체와의 교감은 안개속의 뿌연 환경일지, 사진작업은 순간순간 이미지로서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많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나는 어떻게 줄까. 박물관에 박제화된 늑대의 허구를 현실속의 늑대를 사실적으로 촬영한 것처럼 표현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의 <Alaskan Wolves>의 작품처럼 사진의 진실은 무엇이고, 사진의 ‘피사체’라는 것에 대한 의문.
알래스카 늑대들 Alaskan Wolves Gelatin silver print, 119.4x185.4cm(152.4x218.4cm framed), 1994, © Hiroshi Sugimoto
피사체에 대한 일반적인 것을 인물사진에 경우 인물의 얼굴이다. 그 인물의 가장 클라이막스한 것이 얼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심스럽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클로즈업은 다소 자극적이고, 공격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교과서라고 생각하는 로버트 카파의 말이 있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말에서 많은 1인미디어뿐만 아니라 사진작가들은 모두들 피사체의 바로 코앞에서 사진을 찍어댄다. 여기에 망원렌즈(대포?)를 들고 촬영을 해댄다. 가까이 들이댄다고 좋은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니며, 장비자랑할려고 망원렌즈를 들고 폼잡는 다고 좋은 사진을 찍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망원렌즈에 아웃포커스된 이미지(보케)를 만들려고 웨딩화보처럼 촬영을 한다면, 이 또한 피사체에 대한 신뢰없이 얼마나 폭력적인 사진촬영이 아닐까. 결국 의미는 고갈되고, 그저 자극적인 시각만 쫓는 격이 되었다.
많은 큰 집회현장에 가면 코 앞에서 촬영하는 많은 작가들을 본다. 당신은 피사체에 어떤 교감을 가지고, 무엇을 보여주려고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크고 화려한 것에 주목한다. 쉽게 눈에 띄지 않거나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것들은 무심히 스쳐지나간다. 크게 드러나지 않고 한 발자국 물러난 곳에 고즈넉하게 숨어있는 존재들, 얼핏 볼 때 그것들은 낡아 빠졌거나 쓸모를 다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그 속에 스민 이야기가 새어 나온다. 작고 조용한 존재들에 말을 걸고 귀를 기울이는 행위, 지금껏 내가 해온 사진작업의 큰 축은 이러한 시선에 기조를 두고 있다.” (구본창, 공명의 시간을 담다 P11)
우리는 피사체를 괴롭히는 진상 사진가들인가, 나만 찍겠다고 나만 특종을 해야겠다고 꽃 사진 찍고 없애버리는 사진 진상가인가, 어린 새끼 다리에 본드칠을 해서 어미가 먹이를 주는 장면을 찍기 위해 촬영하는 사진 진상가인가. 피사체를 학대하면서까지 촬영하거나 피사체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자신의 작품사진을 만드는 사진 진상가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피사체는 내게 무엇인지 질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