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1975년

by 노용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데일 와서먼 각색으로 1963년에는 브로드웨이에서, 1969년에는 샌프란시스코 무대에서 상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1975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밀로스 포먼이 감독을 맡고 잭 니콜슨이 주인공으로 열연해 1976년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각본상 등 가장 중요한 5개 부문 상을 수상했다. 이 ‘톱 파이브(the top five)’를 모두 수상한 작품은 영화 역사상 세 편밖에 없다. 이것은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It Happened One Night, 1934)〉 이후 4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으며, 세 번째가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 1991)〉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2.jpg

노동형을 선고받고 작업농장에서 일하다가, 더 편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미치광이 흉내를 내며 말썽을 일으켜 정신병동에 위탁된 가짜 환자 맥머피(잭 니콜슨)의 등장으로 정신병동의 억압적인 구조(수간호사를 중심으로 환자들을 교묘히 학대하고 있다)에 반기를 들고 ‘콤바인’으로 상징되는 권력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인디언 혈통의 브롬든의 시선으로 서술한다. 랫치드 수간호사의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전기충격치료나 뇌 전두엽 절제술을 받게 만들어 환자들이 감히 저항하지 못하도록 해왔는데, 정신병동의 환자들에게 맥머피의 등장은 선동자의 모습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4.jpg

나 역시 공포심에 타 버릴 것만 같아서 이제는 입을 열지 않을 수 없다. 병원, 수간호사, 흑인 녀석들, 그리고 맥머피에 관련된 이야기들...... 나는 지금까지 너무나 오랫동안 침묵을 지켜 왔기 때문에 내가 입을 열면 그 모든 이야기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다. 어쩌면 여러분은 내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주절거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너무 무시무시한 이야기라서 믿기지 안을 것이다. 너무 끔찍해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리라. 하지만 제발 내 말을 믿어 주기 바란다. 나 자신도 완벽하게 확신할 수 없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엄연한 사실인 것이다. (P21)


새 환자는 거기에 서서 누가 말이라도 건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건네지는 않는다. 그가 큰소리로 웃기 시작한다. 그가 왜 웃는지 아무도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우스운 일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기 때문이다. 그의 웃음은 호탕하다. 홍보 담당 직원의 웃음과는 다르다. 그 웃음은 양쪽으로 크게 벌어진 입에서 터져 나와 점점 더 큰 원을 그리며 퍼져서는 사방 벽에 부딪혀 병동 전체에 메아리친다. 뚱뚱한 홍보 담당 직원의 웃음과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웃음소리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문득 나는 그것이 수년 만에 처음 들어보는 웃음소리라는 걸 깨닫는다.

새 환자는 우리를 바라보고는 부츠를 신은 채 몸을 뒤로 젖히면서 웃고 또 웃는다. 그는 주머니에 엄지손가락을 끼우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배를 툭툭 두드린다. 손이 커다란 데다 울퉁불퉁하다. 환자든 직원이든 그의 모습과 웃음소리에 다들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그를 말리거나 그에게 말을 걸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는 한동안 계속 웃다가 마침내 웃음을 멈추고 휴게실 안으로 들어온다. 그가 웃고 있지 않는데도 웃음소리가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커다란 종이 울린 뒤에 그 여운이 남아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웃음소리는 그의 눈 속에, 미소 속에, 뽐내며 걷는 모습 속에, 그리고 말투 속에도 남아 있다.

“어이, 형씨들! 내 이름은 맥머피, 랜틀 패트릭 맥머피올시다. 도박에 빠진 멍청이지.” (P27-28)


급성 환자를 맞은 편에는 콤바인의 허섭쓰레기라고 할 수 있는 만성 환자들이 있다. 이들이 병원에 있는 것은 치료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들이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면 콤바인의 명예가 더럽혀진다. 결국 그것을 막기 위해 그들을 병원에 가두고 있는 것이다. 의사나 간호사들도 만성 환자들은 나처럼 잘 먹기만 하면 거동할 수 있는, 스스로 보행 가능한 환자들을 비롯하여 휠체어를 타는 환자들, 식물인간들,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만성 환자, 아니, 대다수의 환자들은 고치려고 해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내부적 결함을 지닌 기계들이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결함이 있든, 단단한 물건에 수없이 부딪혀서 머리에 고장이 났든, 오랜 세월 녹이 슬대로 슬어 녹물이 줄줄 흘러내릴 즈음에야 병원으로 끌려온다. (P32)


“나도 그럴까 봐 걱정이야, 병동을 휘어잡을 것 같아. 이를테면 그는 ‘선동자’타입이랄 수 있어,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걸 이용하려는 사람이지, 내 말 알아듣겠어, 플린?”

“어머, 그럴 리가요.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한테 무슨 목적이 있겠어요?”

수간호사는 주사기에 약액을 채우는 일에 집중하며 침착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목적이야 여러 가지 있지, 편안한 가운데 하고 싶은 대로 생활하는 게 목적일 수 있고, 권력을 거머쥐고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것도 목적일 수 있어, 돈을 손에 넣는 것도 목적일 수 있고 말이야. 어쩌면 이 모든 걸 이루는 게 목적일지도 몰라. 간혹 선동자가 병동을 붕괴시킬 목적으로 환자들 사이에 분열을 조장하는 경우도 있어. 사회에는 반드시 그런 사람이 있는 법이야. 선동자는 얼마든지 다른 환자들을 부추겨서 분열시킬 수 있어. 일단 그렇게 되면 모든 걸 다시 정상으로 돌리는 데 수개월이나 걸리게 돼. 정신병원이 자유로운 분위기로 운영되는 요즘 같은 때 그렇게 하는 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야. 옛날, 아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러는 건 어려웠지. 몇 해 전이 병동에 테이버란 환자가 있었는데, 정말 감당하기 벅찬 선동자였어. 그래서 한동안 애를 먹었지.”

<켄 키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P50-51>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3.jpg

병원의 환자들은 그 부조리함에도 불구하고 저항하지 않다가 저항DNA를 가진 맥머피가 옴으로써 차츰 변화하게 된다. 무모한 시도가 변화의 단초가 되는 것이다. 맥머피는 환자들을 끌고 병원을 빠져나가 낚시를 다녀오거나 파티를 여는 등 의도적인 반항을 시도하지만, 랫치드 수간호사로 대표되는 병원내의 시스템이 너무나 막강하다. 벙어리인줄 알았던 추장(브롬든)이 말문을 열자 그와 함께 캐나다로 도망가려던 맥머피는 이를 저지하는 랫치드 수간호사에 의해 전기치료실로 끌려간다. 다시 돌아온 맥머피를 본 추장은 그가 완전히 무력한 인간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맥 머피는 뇌전두엽절제술을 받고 식물인간이 되어버리지만, 브롬든에게 힘과 용기를 되찾아줌으로써 자유를 향한 열망을 심어주었고, 결과적으로 정신병원을 탈출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짓는다. 과연 자유란 무엇일까?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자유론에서 그는 “양심의 자유, 기호와 직업의 자유, 결사의 자유가 존중되지 않는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자유론>이 전제하는 자유의 원칙은 명확하다. 첫째, 개인은 그의 행위가 그 자신을 제외한 어떤 사람의 이익과도 관련되지 않는 한, 그의 행위에 대해 사회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둘째, 하지만 타인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행위에 대해 개인은 책임이 있으며, 필요하다면 사회적 또는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이 두가지 대원칙을 기준으로 개인적 행위 또는 사회적 행위로 분류되어, 그에 따라 허용되거나 또는 제재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개인의 자유는 여전히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지만 더 이상 절대적 권리는 아니다. “개인은 오직 타인과 관련된 부분에만 사회에 책임을 진다.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대해서는 그 자신이 주권자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5.jpg

수간호사는 병동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정밀한 기계처럼 운영되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녀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뒤죽박죽이 되거나 조금이라도 거치적거리면 불같이 화를 낸다. 그리고 언제나 턱과 코 사이에 잔주름이 지도록 인형 같은 미소를 지으며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그녀의 표정은 온화해 보인다. 하지만 속마음은 단단하게 경직되어 있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느낄 수 있다. 그녀는 골치 아픈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즉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위 환경에 맞게 조정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병동 내부는 수간호사가 정한 규칙에 따라 거의 완벽하게 조정되어 있다. 다만 문제는 그녀가 항상 병동에 있을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그녀는 밖에서도 지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깥세상을 조정하는 일에도 신경을 쓴다. 수간호사가 병동 내부를 조정하듯, 내가 콤바인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조직은 바깥세상을 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간호사는 그녀와 같은 부류인 콤바인 사람들과 함께 일해 온 만큼 조정하는 일에 능수능란하다. 내가 오래전 바깥세상에서 이 병동에 들어왔을 때에도(그때는 병동이 구관에 있었다.) 그녀는 수간호사였다. 따라서 그녀는 꽤 오랫동안 조정하는 일에 골몰해 온 셈이다. (P52-53)


수간호사가 팔을 놓아주자 테이버는 투덜거리며 그 자리를 떠난다. 그는 오전 내내 침울한 얼굴로 화장실 주위를 서성이며 그 캡슐에 대해 생각한다. 나 역시 그와 똑같은 빨간 캡슐을 받고 먹지 않은 적이 있다. 나는 그것을 혓바닥 밑에 감추고 삼킨 척했다. 그런 다음 청소 도구실에 가서 으깨어 보았다. 캡슐이 흰 가루로 부스러지는 순간, 나는 그것이 소형 전자 기기임을 알아챘다. 군대의 레이더 반에서 일할 때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캡슐 안에는 미세한 전선과 절연체, 트랜지스터 등이 들어 있는데, 이런 것들은 공기와 접촉하면 녹게 되어 있다. (P63)


하딩은 돌연 입을 다물더니 상체를 숙여 두 손으로 맥머피의 한 손을 잡는다. 그러고는 얼굴을 이상한 모양으로 기울인다. 그의 얼굴이 깨진 포도주 병처럼 날카롭게 일그러지며 자줏빛과 회색을 띤다.

“이 세계는....... 힘센 자들의 것이에요, 친구! 이 세계는 약한 자들을 잡아먹을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힘센 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지요. 우리는 이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세상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건 당연해요. 우리는 이것을 자연 세계의 법칙으로 받아들여야 해요. 토끼는 자연세계의 법칙이 정해 놓은 자기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늑대를 강한 자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교활해지고, 수세에 몰리면 겁을 먹고 도망을 칩니다. 그래서 늑대가 주위에 나타나면 구멍을 파서 거기에 숨지요. 토끼는 그런 식으로 버티며 목숨을 부지해 갑니다. 자기 분수를 아는 거지요. 그래서 늑대와 싸우려 대드는 일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그게 현명한 걸까요? 그럴까요?” (P111)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01.jpg

“아니, 당신 말이 옳았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간호사가 집중적으로 쪼아 대는 곳이 어디인지 우리에게 일깨워 준 사람은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 말이 맞았어요. 자신이 성욕을 잃고 있다는, 혹은 이미 잃었다는 사실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여기 한 사람도 없어요. 우스꽝스러운 우리 작은 존재들은 토끼 세계에서조차 남자 구실을 못하고 있어요. 그것만 보더라도 우리는 정말로 약하고 무능해요. 말하자면 우리는 토끼 중에서도 가장 한심한 토끼들이지요!” (P116)


“맥머피 씨, 쇼크 숍은 EST 기계, 그러니까 전기 충격 치료(Elctro Shock Therapy)의 은어예요. 마취제, 전기 의자, 고문대의 역할을 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지요. 짧은 과정을 거쳐 교묘하고 단순하고 빠르게, 거의 아무 고통도 느끼지 못하게끔 순식간에 치료해 주는 기계지요. 하지만 아무도 두 번 다시 받고 싶지 않은 치료법이에요. 절대로......”

“그 기계가 뭘 어떻게 하는 데요?”

“우선 테이블에 묶습니다. 얄궂게도 십자가 형태로 말이죠. 그런 다음 가시관 대신에 전기 불꽃이 일어나는 왕관을 씌워요. 그리고 머리 좌우에 전선이 닿게 합니다. 찌지직! 5센트어치 전기가 뇌를 통과하죠. 그러면 당신은 지옥에 가라는 적대적인 행동을 한 대가로 치료와 벌을 동시에 받는 거예요. 게다가 사람에 따라서 여섯 시간에서 삼 일 동안 독방에 갇히지요. 정신이 돌아온 뒤에도 며칠 동안 혼미함을 느낍니다. 논리적인 생각을 할 수 없게 돼요. 기억도 잃어버려요. 이런 치료를 진저리 날 만큼 받으면 결국 저기 벽에 붙박여 있는 에리스처럼 되고 말지요. 서른다섯 살에 침을 질질 흘리고 바지에 오줌을 싸는 바보가 되는 겁니다. 아니면 먹고 싸고 ‘망할 여편네’하고 소리를 지르는 분별없는 유기체가 되거나, 럭클리처럼 말입니다. 당신 옆에서 자기랑 똑같은 이름이 붙은 빗자루를 꼭 잡고 있는 브롬든 추장을 봐도 알 거예요.”

하딩이 담배로 날르 가리킨다. 나는 달아나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계속 비질할 수밖에 없다. (P119-120)


“최고의 사기꾼이 되는 비결은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알고, 상대방이 자기가 원하는 걸 손에 넣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겁니다. 내가 그걸 알게 된 건 카니발에서 잠깐 룰렛을 할 때였소. 상대방이 접근하면 그 사람을 눈으로 살펴보고 속으로 ‘자, 녀석이 온갖 폼을 다 잡고 오는 군.’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가 돈을 잃고 화를 낼 때마다 당신은 겁먹은 듯 벌벌 떨며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제발, 선생님, 문제는 일으키지 말아 주세요. 이번 한 판은 그냥 하세요.’ 그러면 둘 다 각자 원하는 걸 얻게 되는 거요.” (P137-138)


그는 무릎을 치고 머리를 흔들어 대며 크게 웃는다. 그리고 옆에 누가 앉아 있건 엄지로 옆구리를 쿡쿡 찔러 웃게 만든다.

그 주에는 몇 번씩이나 그가 꺽꺽대며 웃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배를 북북 긁고 기지개를 켜면서 하품을 하고 뒤로 물러서서 농담을 주고 받는 사람들에게 윙크를 보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일이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그래서 나는 수 간호사와 그녀의 배후에 있는 콤바인에 대해 걱정을 끊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가 자신을 지켜 나갈 만큼 강인했다. 수간호사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가 정말 특별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닌 인간이다. 그렇다. 그래서 강인한 것이다. 콤바인은 긴 세월동안 그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수간호사는 어떻게 몇 주 만에 그를 변화시키겠다고 생각했을까? 맥머피가 녀석들에 휘말려 새롭게 변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 후 나는 흑인 보조원들의 눈을 피해 화장실에 숨어들어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인간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저런 굉장한 존재가 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생각했다. 거울 속에 나의 얼굴이 있다. 거무스름하고 냉철한 얼굴, 툭 튀어나온 커다란 광대뼈가 보인다. 광대뼈 아래 뺨은 도끼로 깍인 것 같다. 눈은 새까만 데다, 엄격하면서도 어딘지 비굴해 보인다. 아버지의 눈 혹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강인하고 심술궂은 인디언의 눈과 비슷하다. 저건 내가 아니야, 내 얼굴이 아니라고. 심지어 내가 그런 얼굴을 가지려고 할 때도 그건 내가 아니었다. 그때도 나는 정말로 내가 아니었다. 나는 남들이 원하는, 겉으로 보이는 나밖에는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나였던 적은 없었다. 맥머피는 어떻게 있는 그대로의 그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그의 모습을 보았다. 큰 손과 붉은 구레나룻과 울퉁불퉁한 코 끝에 맺힌 미소 말고도 많은 것을 보았다. 그는 그의 얼굴과 손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을 했다. 가령 작업 요법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 따위가 그것이다. 그는 색칠을 해야 하는 곳을 표시하는 선이나 숫자가 없는 백지에 진짜 그림을 그린다. 혹은 아름답게 흐르는 필체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수 있을까? 어떻게 그는 부친 편지가 되돌아 왔을 때 화를 내거나 걱정스러운 내색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일은 빌리 비빗이나 하딩에게서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하딩의 손은 그림을 그려야 하는 손이다. 하지만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다. 하딩은 개집을 만들려고 널빤지를 톱질하는 일에 그 손을 억지로 사용하고 있다. 맥머피는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그는 겉모습에 좌우되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은 하지 않는다. 콤바인에 굴복하여 그들이 바라는 인간으로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P261-263)


“제기랄, 하딩!”

맥머피가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모르겠단 말이야! 내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길 바라는 거요? 내가 당신 결혼 상담원이라도 되는 줄 아쇼? 난 이것밖에 몰라요. 처음부터 아주 관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소. 모두들 평생 다른 사람들을 깎아내리면서 살지. 당신이 내게 무슨 말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고 있소. 내가 당신에게 동정심을 가졌으면 하는 거겠지. 당신 부인이 정말 멋진 여자라고 내가 생각했으면 좋겠지. 그런데 당신도 부인을 여왕 취급하지는 않았잖소. 형씨, 어떻게 생각하냐고? 당신 문제에 끼어들 만큼 한가하지 않소, 난 나대로 걱정이 있소. 그러니 그만두란 말이오!”

맥머피는 도서실을 둘러보며 다른 환자들을 노려본다.

“자네들! 날 그냥 내버려 둬!” (P297)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02.jpg

“저곳에 환자를 끌어들여 두개골에 전류를 통하게 하는 거로군.”

“간단히 말하면 그런 셈이죠.”

“대체 왜 그러는 거요?”

“그야 물론 환자의 이익을 위해서죠. 이곳에서 행해지는 일은 모두 환자의 이익을 위한 겁니다. 우리 병동에만 있으면 병원이라는 게 거대하고 능률적인 기구여서, 환자가 강요당하는 것만 없으면 꽤 잘 돌아간다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ETS는 우리 수간호사가 사용하듯이 언제나 징벌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의료진들의 사디즘적 경향의 표출이라고 볼 수도 없어요. 치료 불능이라고 생각되던 수많은 환자들이 충격 요법을 받고 정상에 가까운 상태로까지 호전되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뇌 전두엽 절제술과 전두엽 백질 절제로 도움을 받은 것처럼 말이에요. 충격 요법은 좋은 점이 있어요. 값싸고, 빠르고, 고통이 전혀 없죠. 단지 발작을 일으키게 할 뿐이에요.”

“무슨 놈의 인생이 이런가.”

시펠트가 한탄한다.

“한쪽에서는 발작을 멈추게 하려고 약을 주고, 또 한쪽에서는 발작을 일으키게 하려고 충격을 주니, 원.”

하딩은 앞으로 다가앉아 맥머피에게 설명한다.

“충격 요법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알려 드리죠. 정신과 의사 두 명이 도살장에 갔습니다. 무슨 바람이 불어 거기에 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들은 소가 커다란 해머로 양미간을 얻어맞고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소가 모두 죽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몇몇은 바닥에 쓰러져 간질병 발작과 아주 비슷한 상태로 된다는 것을 알았죠. ‘아, 그래. 우리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겁니다. 인공적으로 일으키는 발작이에요!’라고 첫 번째 의사가 말했어요. 동료 의사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간질병이 발작했다가 정상으로 돌아온 후에는 한참 동안 보통 때보다 침착하고 온화해진다고 알려져 있거든요. 그리고 완전히 접촉이 불가능한 난폭한 환자라도 발작한 다음에는 이성적인 대화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해요.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르죠. 지금도 여전히 모르고 있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연 발생적인 간질병에 의하지 않고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는 굉장한 효과를 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아무튼 두 의사 앞에서 한 사내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게 소를 쓰러뜨려 몇 번이나 발작을 일으키게 했어요.”

스캔런이 그 사내는 해머 대신 촉탄을 사용한 것 같다고 말한다. 하딩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계속 설명한다.

“도살자가 사용한 것은 분명히 해머였어요. 아무튼 이 점에 대해 또 한 명의 의사가 몇 가지 조건을 생각했지요. 결국 인간은 소가 아니거든요. 해머로 내려치다 코를 부러뜨릴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면 엄청난 치과 비용은 어떻게 되겠어요? 인간의 머리에 일격을 가하려면, 해머보다는 좀 더 확실하고 정확한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전류를 사용하자는 결론에 이르렀죠.”

“이런, 그런 짓을 하면 어떤 해를 입힐지는 생각 안 했나요? 사람들은 그런 일에 들고 일어나지도 않았소?”

“세상 사람들을 잘 모르는 모양이군요. 이 나라에서는 고장난 물건이 있으면 제일 빨리 고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에요.”

맥머피는 고개를 젓는다.

“휴! 머리에 전류를 쑤셔 넣다니, 전기의자에 앉혀 사형시키는 것과 다름없네.”

“그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둘 다 질병의 치료를 위한 거죠.”

“그런데 그건 아프지 않다고 했잖소?”

“개인적으로 그 점은 보장합니다. 전혀 아프지 않아요. 한번 전류가 흐르면 곧바로 의식을 잃어버립니다. 가스나 주사, 큰 해머는 필요 없어요. 완전히 고통이 없지요. 다만 문제는 누구든 두 번 다시 그 치료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사람이....... 변해요.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죠. 그것은 마치......”

그는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꾹 누르면서 눈을 감는다.

“그 충격으로 이미지, 감정, 기억의 바퀴들이 카니발의 룰렛 판처럼 격렬하게 회전해요. 당신도 그런 룰렛 판을 본적이 있을 거예요. 호객꾼이 큰 소리로 손님을 끌어 모으고는 버튼을 누르죠. 짠! 그러면 불빛과 소리와 숫자들이 회오리바람처럼 빙글빙글 돌다가 멈춘 뒤 승부가 결정됩니다. 이길 수도 있지만, 지게 되면 다시 게임을 해야 합니다. 자, 호객꾼에게 돈을 내고 다시 한 번 회전을 시켜 봅시다. 어이, 돈을 내라고.”

“하딩, 적당히 하쇼.”

문이 열린다. 이동 침대가 시트로 덮힌 환자를 싣고 다시 나온다. 그리고 기사들은 커피를 마시러 나간다. 맥머피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린다. (P303-306)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03.jpg

“이봐요.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생각해요. 당신이 전기 충격 요법을 받게 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그건 유행이 지나간 데다, 다른 방법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극단적인 증상에만 사용되는 것이니까. 뇌 전두엽 절제술처럼요.”

“아, 뇌 전두엽 절제술은 뇌의 일부를 잘라 버리는 거요?”

“명답이에요. 전문 용어 선택이 꽤 세련되었군요. 그래요, 뇌를 자르는 거예요. 전두엽 제거지요. 그 여자는 벨트 아래에 있는 걸 자르지 못하면, 눈 위의 것을 자르려 할걸요.”

“랫지드 수간호사 말이오?”

“물론이죠.”

“수간호사가 그 일에는 결정권이 없는 것 같은데.”

“그녀에게 권한이 있어요.”

맥머피는 충격 요법과 뇌 전두엽 절제술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두고 수간호사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오게 되어 기뻐하는 눈치가. 그는 수간호사의 어떤 점이 안 좋은지 하딩에게 묻는다. 하딩과 스캔런, 그리고 다른 환자들이 저마다 의견을 내놓는다. 그들은 잠시 동안 수간호사가 모든 문제의 근원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하딩은 대부분 그렇다고 말한다. 다른 환자들도 대부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맥머피는 분명히 단정 지을 수는 없다며, 한때 그렇게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모르겠다고 말한다. 더 큰 원인이 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며 그것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하지만 설명할 수가 없어 결국 포기하고 만다.

맥머피는 그것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오래전에 깨달은 것을 지금 알아채려 하고 있다. 그건 수간호사 한 사람이 아니라 콤바인 전체, 즉 진짜 커다란 힘인 온 나라에 걸쳐 있는 콤바인이다. 수간호사는 그들을 위해 일하는 고위 관리 중 한 사람일 뿐이다. (P306-307)


“이해해 주세요, 우리는 치료의 효용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특정한 규칙과 제한 규정을 부과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상당수는 바깥 세상의 규칙에 적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곳에 와 있습니다. 그 규칙을 당당하게 대하지 못하고 그 주위를 맴돌거나 회피하려고 했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사회의 규칙을 비웃고도 용케 빠져나올 수 있었겠죠. 그런데 규칙을 어겼을 때 여러분은 그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응분의 조치가 내려지기를 바라고 있었지요. 사실 그런 조치는 꼭 필요했던 겁니다. 그런데도 처벌은 없었습니다. 부모님들이 어리석게도 여러분의 응석을 받아 준 일이 현재의 병을 키운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규율과 질서를 강조하는 것도 모두 여러분을 위해서라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간호사는 방 안을 휙 둘러보았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가 그 얼굴에 서려 있었다. 주위는 조용했다. 다만 내 머릿속에서 열이 올라 미친 듯이 울려 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징벌을 내리는 일은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이 점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벌을 내려야 할까요? 여러분을 체포할 수도 없습니다. 빵과 물만 먹이는 벌을 내릴 수도 없어요. 의료진들도 정말 난처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P319-320)


맥머피는 우리가 강한 척하는 것이 순전히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들 이상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농담을 해도 우리를 진짜로 웃길 수는 없었다. 어쩌면 그는 우리가 왜 웃을 수 없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물에 대하여 우스운 면을 발견할 때 비로소 강해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사실 그가 너무 심각한데 사물의 유머러스한 면을 지적하는 것을 보면, 혹시 그가 다른 면은 보지 못하는 건 아닌지, 뱃속 깊은 곳에 웃음을 마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보통 사람들도 사물의 다른 면은 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전파나 주파수의 압력을, 요컨대 이쪽저쪽에서 가해지는 콤바인의 압력만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변화라는 것은 서서히 진행되므로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인간의 변화에 대해서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인간의 변화는 금세 눈치 채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예전에 지나다녔던 때와 비교해 보면, 오랫동안 콤바인이 이 해안선 일대에서 어떤 일을 해 왔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기차 같은 것이다. 그것은 정거장에 정차하여 거울에 반사된 듯이 똑같은 양복을 입고 기계로 찍어 낸 것처럼 똑같은 모자를 쓴 남자들을 토해 내고 있다. 똑같은 곤충이 부화되듯 남자들을 낳아 놓는다. 아직 반쯤밖에 자라지 못한 남자들이 마지막 기차에서 훅훅 소리를 내며 쏟아지고 있다. 이제 기차는 전기 기적 소리를 울리며 또 다른 정거장에서 남자들을 토해 내기 위해 황폐한 대지를 달려간다. (P379-380)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06.jpg

충격 요법을 받은 후 이 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멍하게 돌아 다니던 때가 몇 번 있었다. 나는 잠과 현실 사이의 불완전한 경계선이라 할 수 있는 흐리멍텅하고 혼란스러운 안개의 세계에 살았다. 빛과 어둠 사이, 혹은 잠과 깨어남의 사이, 아니면 생과 사의 흐릿한 경계에서 살았던 것이다. 더 이상 무의식의 상태는 아니지만, 오늘 무슨 요일인지, 내가 누구인지, 현실 세계로 돌아오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른 채 이 주 동안이나 시간을 보냈다. 깨어날 이유가 없다면, 그런 흐릿한 세계에서 오랫동안 취한 듯 멍한 상태로 방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의지만 있다면, 열심히 싸워 거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번에 나는 전보다 빨리, 겨우 하루도 안 되어 거기서 빠져나왔다.

마침내 내 머리에서 짙은 안개가 걷혔다. 마치 깊고 깊은 물속에 들어가 100년 동안이나 잠겨 있다가 수면에 떠오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튼 그것은 그들이 내게 마지막으로 사용한 전기 충격 요법이었다.

그 주에 그들은 맥머피에게 세 번 더 전기 충격 요법을 썼다. 그가 눈을 깜박거려 의식을 되찾고 그 요법의 충격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면, 렛치드 수간호사는 의사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들은 그에게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자신의 문제에 맞서 다시 치료를 받기 위해 병동에 돌아갈 기분이 드는지 물었다.

맥머피는 화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중환자실 환자들의 시선이 모두 자기에게 쏠려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무슨 대답을 기대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가 수간호사에게 말했다.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밖에 없어서 유감이오.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 따위에겐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거요. 내가 굴복하기를 기대하느니 내 엉덩이를 핥는 게 나을걸. 암, 그렇고 말고!

그는 벌떡 일어나 자신을 보고 싱글싱글 웃는 환자들에게 두세 번 인사했다. 그러자 수간호사는 의사를 앞세워 간호사실로 가서는 본관에 전화를 걸어 다시 충격 요법 수속을 밟게 했다. (P456-457)


처음에 나는 그를 말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설득시켜 지금까지의 승리에 만족하고 마지막 대결에서는 수간호사가 승리하게 내버려 두도록 하려고 했다. 그런데 좀 더 분명한 생각이 처음 생각을 밀어내 버렸다. 나는 명확하게 깨달았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중 누구도 맥머피를 말릴 수 없다는 사실을, 하딩이 설득하거나 내가 뒤에서 붙들거나, 아니면 나이 지긋한 매터슨 대령이 가르치려고 들거나, 스캔런이 불평을 해도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우리로서는 맥머피를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맥머피가 그렇게 하도록 만든 장본인이 바로 우리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그런 행동을 강요한 사람은 수간호사가 아니었다. 바로 우리였다. 그는 의자의 가죽 팔걸이에 큼지막한 손을 대고 천천히 일어섰다. 영화에 나오는 좀비처럼 우뚝서서 마흔 명의 주인이 내리는 명령에 따랐다. 몇 주 동안 윙크를 하고 웃게 하거나, 그의 유머가 두 전극 사이에서 말라 없어진 뒤에도 그가 계속 행동하도록 한 원동력은 바로 우리였던 것이다.

우리는 천천히 기계적인 동작으로 그를 일으켜 세워 검은 반바지를 마치 말가죽 바지인 양 끌어올리고, 그 모자를 챙이 넓은 스테트슨처럼 손가락으로 치켜 올려 주었다. 그가 걸어갈 때면 맨발 뒤꿈치에 쇠가 달린 듯 타일 바닥에 불꽃을 일으키며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그는 유리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수간호사가 얼굴을 이쪽으로 홱 돌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 얼굴에는 그녀가 앞으로 어떤 표정을 지으려 해도 결코 지워지지 않을 공포가 짙게 배어 있었다. 그는 수간호사에게 달려들어 유니폼의 앞자락을 잡아 찢었다. 순간 그녀의 가슴에서 두 개의 젖꼭지가 달린 둥그런 공 같은 것이 튀어나오더니 점점 부풀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커져서는 빛을 받아 포근한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수간호사는 또 한 차례 비명을 질렀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야 거기에 있던 의사와 경비원과 간호사들은 세 명의 흑인 보조원들이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서서 멍하니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의 도움 없이 맥머피를 제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일제히 달려들어 수간호사의 희디흰 목에 감겨 있는 붉은색의 두툼한 손가락을 그녀의 목뼈라도 되는 양 하나하나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헉헉거리며 간신히 숨을 쉬는 수간호사에게서 맥머피를 떼어 놓았다. 그때 맥머피는 자신에게 주어진 힘겨운 의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냉정하고 의지가 강하며 끈기있는 인간과는 다른 면모가 그에게도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맥머피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갈 때, 그의 얼굴이 잠깐 거꾸로 비쳤다. 흰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그를 바닥에 완전히 넘어뜨렸다. 그의 입에서 또다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궁지에 몰린 동물이 질러대는 공포와 증오, 항복과 반항의 감정이 뒤섞인 비명이었다. 너구리나 푸마, 혹은 스라소니를 쫓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동물이 나무 위까지 몰렸다가 총에 맞고 땅에 떨어져 개에게 물렸을 때 그 같은 비명을 지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자신과 자신의 죽음 외에 그 어떤 것도 개의치 않는다고 생각할 때 지르는 마지막 비명이었다. (P503-505)


수간호사는 병동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맥머피의 환영이 복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회의 때에는 그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리며 화장실에서는 그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예전처럼 권력을 휘두를 수가 없게 되었다. 종이쪽지를 통해 명령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 터에 환자들도 하나둘씩 줄어들었다. 하딩은 퇴원 신청을 하여 부인이 데라가고, 조지도 다른 병동으로 옮겨 갔다. 그리하여 낚시에 갔던 환자들 중에서 남은 사람은 나, 마티니, 스캔런, 이렇게 셋뿐이었다.

나는 아직 떠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수간호사의 확신에 찬 태도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녀는 마지막 라운드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예상한 일이 일어나게 되면 나는 그 자리에 있고 싶었다. 어느 날 아침, 그러니까 맥머피가 사라진 지 삼 주째 되는 날이었다. 마침내 수간호사가 마지막 라운드에 나섰다.

병동 문이 열리면서 흑인 보조원들이 이동 침대를 밀고 들어왔다. 침대 가장자리에 차트가 달려 있었는데, 거기에 검정색의 굵은 글씨로 ‘맥머피, 랜들 P. 수술 완료’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잉크로 ‘뇌 전두엽 절제술’이라고 쓰여 있었다. (P508-509)


결국 나는 캐나다에 갈지도 모른다. 만약 가게 된다면 도중에 컬럼비아를 둘러보고 싶다. 포틀랜드와 후드 강, 그리고 더댈스에도 가서 마을의 옛 친구들 가운데 술 때문에 신세를 망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확인하고 싶다. 또 정부가 인디언으로 살아갈 권리를 돈으로 사버린 이후, 그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고 싶다. 부족 중 더러는 몇백만 달러나 들여 만든 댐 위에 옛날 방식에 따라 덜컹거리는 나무 발판을 만들어 놓고 방수로에서 연어를 잡고 산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서 확인해 보고 싶다. 기왕이면 옛날 협곡 주변의 땅을 보고 싶다. 다시 한번 그곳을 내 머릿속에 또렷하게 새겨두고 싶다.

꽤 오랫동안 그곳을 떠나 있었으므로. (P514-515)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7.jpg

미셸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정신병원의 기원을 설명하는 부분을 통해 정신병원의 억압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더나아가 국가의 통제,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국가권력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 스스로 영속적인 불안-죄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위협받는 환경을 조성하고, 푸코의 또다른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처럼 감옥의 구조와 세계의 구조가 같다는 것이고, “세상에 감옥이 존재하는 까닭은 세상이 감옥이라는 걸 감추기 위함”이라고 그는 말한다.


권력은 가시적인 폭력 대신에 자기의 횡포와 전제성을 은폐하면서 그 기능을 효과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즉 육체적으로 잔인하게 처벌하는 방법보다 감시하는 방법에 의존한 권력은 전략적으로 인간의 육체를 규율에 길들일 수 있다.

이전 03화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