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영화 <고도를 기다리며> 2001년

by 노용헌

언제나 큰 나무 아래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은 그곳을 지나가는 포조와 럭키를 만난다. 언제나 ‘우리 뭐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달고 사는 에스트라공에게 블라디미르는 ‘고도를 기다려야지’라고 대답한다. 소년은 ‘고도는 내일 온다’고 말을 전해주고, 두 사람은 계속 기다린다.


에스트라공 멋진 경치로군. (블라디미르를 돌아보며) 자, 가자.

블라디미르 갈 순 없어.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사이) 여기가 확실하냐?

블라디미르 뭐가?

에스트라공 기다려야 하는 게 여기냔 말야?

블라디미르 나무 앞이라고 하던데. (둘은 나무를 바라본다) 다른 나무들이 보이냐?

에스트라공 이건 무슨 나무지?

블라디미르 버드나무 같은데.

에스트라공 잎이 없잖아?

블라디미르 죽었나 보지.

에스트라공 진이 다 빠진 거야.

블라디미르 제철이 아닐 수도 있잖아.

에스트라공 이건 버드나무라기보단 차라리 관목 같다.

블라디미르 교목이야.

에스트라공 관목이라니까.

블라디미르 교-- (말을 고쳐서) 너 그런 말을 하는 속셈이 뭐냐? 우리가 장소를 잘못 알기라도 했다는 거야?

에스트라공 이리 오기로 돼 있는데.

블라디미르 딱히 오겠다고 말한 건 아니잖아

에스트라공 만일 안 온다면?

블라디미르 내일 다시 와야지.

에스트라공 그리고 또 모레도.

블라디미르 그래야겠지.

에스트라공 그 뒤에도 죽.

블라디미르 결국......

에스트라공 그자가 올 때까지.

블라디미르 너 지독한 놈이로구나.

에스트라공 우린 어제도 왔잖아. (P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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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트라공 (다친 다리를 추켜들고) 난 이제 걸을 수도 없게 됐다!

블라디미르 (다정하게) ..... 내가 업고 가지. (사이) 정 그렇다면.

포조 이젠 울음을 그쳤군. (에스트라공에게) 그러니까 당신이 저놈을 대신하게 된 거구려. (생각에 잠긴 듯)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웃음도 마찬가지요. (웃는다) 그러니 우리 시대라고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오. (침묵)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것도 없지. (침묵) 그런 얘긴 아예 할 것도 없어요. (침묵) 인구가 는 건 사실이지만”

블라디미르 좀 걸어봐.

에스트라공,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하더니 럭키 앞에 가서는 침을 뱉고 처음 막이 올랐을 때 앉아 있던 자리로 가서 앉는다.

포조 그런 훌륭한 걸 다 누가 나한테 가르쳐줬는지 아시오? (사이, 손가락으로 럭키를 가리키며) 럭키 저놈이오!

블라디미르 (하늘을 쳐다보며) 왜 이렇게 밤이 안 오지? (고도를 기다리며,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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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의 ‘고도’가 누구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작가도 모른다고 했다 한다. 대신 관객들은 스스로 ‘고도’의 존재에 대해서 질문하고 수많은 해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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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가오싱젠의 <버스 정류장>과 닮아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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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결정해야 해! 갈까 기다릴까? 기다릴까 아님 갈까? 정말 사람 미치겠군! 운명이다. 그래 기다려보자. 늙어 죽을 때까지. 사람은 왜 자신의 미래를 열어가지 않고 운명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지? 거 참. 운명이란 게 뭐지? (아가씨에게) 운명을 믿어요?” (버스정류장)


블라디미르 “확실한 건 이런 상황에선 시간이 길다는 거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우린 온갖 짓거리를 다해가며 시간을 메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 뭐랄까 얼핏 보기에는 이치에 닿는 것 같지만 사실은 버릇이 되어버린 거동을 하면서 말이다. 넌 그게 이성이 잠드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짓이라고 할지 모르지. 그 말은 나도 알겠다. 하지만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성은 이미 한없이 깊은 영원한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야. 너 내 말 알아듣겠냐?”

에스트라공 인간은 모두 미치광이로 태어나는 거다. 그중에는 끝내 미치광이로 끝나는 자들도 있고.

포조 사람 살려! 돈을 줄께!

에스트라공 얼마 주겠소?

포조 100프랑.

에스트라공 너무 적어.

블라디미르 난 그렇게까진 생각지 않아!

에스트라공 그럼 넌 적지 않단 말이냐?

블라디미르 아니, 그게 아니라 난 내가 태어날 때 미치광이였다고 생각하진 않는단 말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p134-135)


포조 난 어제 누구를 만난 기억이 없소. 내일이 되면 오늘 누굴 만났다는 게 생각 안 날 것이오. 그러니 내게 뭘 물어본다는 건 쓸데없는 짓이오. 어쨌건 그런 얘긴 그만해 둡시다. 일어서!"

블라디미르 어제는 당신이 저자를 팔려고 생 소뵈르에 데려간다고 하지 않았소? 그리고 우리한테 얘기도 해줬어요. 저자는 춤도 추고, 생각도 했고, 그때는 당신 눈이 잘 보였다고요.

포조 그렇다면 그렇다고 해둡시다. 이젠 날 놓아주시오. (블라디미르가 그에게서 떨어진다.) 일어서!

블라디미르 일어서는군.

럭키가 일어나서 짐을 든다.

포조 이젠 됐어.

블라디미르 이제 어디로 가시오?

포조 그런 건 생각해 보지도 않았소.

블라디미르 참 많이 변하셨구려! (P148)


블라디미르 아직은 가지 마시오.

포조 (발을 멈추며) 난 가겠소.

블라디미르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데서 가다가 넘어지면 어쩔려고?

포조 일어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겠지. 그리고 나서 다시 떠나는 거요.

블라디미르 떠나기 전에 저자한테 노래나 한 곡 부르게 하쇼.

포조 누구에게 말이오?

블라디미르 럭키 말이오.

포조 럭키에게 노래를?

블라디미르 그렇소. 아니면 생각을 하게 하든가. 낭독을 시켜도 좋고.

포조 저놈은 벙어리인걸.

블라디미르 벙어리라니?

포조 그렇다니까. 신음소리 한마디 못 낸다오.

블라디미르 벙어리라! 언제부터요?

포조 (버럭 화를 내며) 그놈의 시간 얘기를 자꾸 꺼내서 사람을 괴롭히지 말아요! 말끝마다 언제 언제 하고 물어대다니! 당신, 정신 나간 사람 이니야? 그냥 어느 날이라고만 하면 됐지.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 저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 거요.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테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날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오. 그만하면 된 것 아니냔 말이오? (더욱 침착해지며)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요. (그는 끈을 잡아당긴다) 앞으로! (P14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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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의 초연 때 연출자 알랭 슈나이더가 베케트에게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작가 자신이 그와 같은 대답을 한 이상 관객들 사이에 물음은 끊이지 않았고, 그 해답 역시 물음만큼이나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고도는 신이다, 자유다, 빵이다, 희망이다......

고도Godot가 영어의 God과 프랑스어의 Dieu를 하나로 압축한 합성어의 약자라는 해석도 있다. 어쨌건 고도에 대한 정의는 구원을 갈망하는 관객 각자에게 맡겨진 셈이다.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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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이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눈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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