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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Nov 09. 2022

서머싯 몸의 <면도날>

영화 <면도날The Razor’s Edge> 1946년

<인간의 굴레에서>, <달과 6펜스>와 함께 서머싯 몸의 소설 <면도날>의 주인공 래리는 공군 조종사로 1차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만난 친한 동료가 죽고 난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프랑스의 탄광, 수도원, 독일의 농장, 스페인과 이탈리아 곳곳을 거쳐 인도의 아슈라마로의 여정을 통해서 자신의 열망과 생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우리에게 인생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카타 우파니샤드  

   

“말로 표현하기가 참 힘들어. 표현하려고 하면 혼란스럽기만 하고. 어떤 땐 이런 생각이 들어. ‘이런 것 저런 것을 고민하는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내가 거만하고 몹쓸 인간이라서 그런 걸지도 몰라. 나도 남들 가는 길을 가면서, 그럭저럭 세상사에 순응하면서 사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 말이야. 하지만 한시간 전까지만 해도 쌩쌩하던 녀석이 죽은 모습으로 누워 있던 게 떠올라. 그러면 얼마나 잔인하고, 얼마나 무의미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인생이란 대체 무엇인가, 산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가, 아니면 삶이란 눈먼 운명의 신이 만들어 내는 비극적인 실수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 (p84)  

   

"지난 한두 달간은 스피노자를 읽었어. 아직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굉장히 흥미로웠어. 산악 지대에 있는 넓은 고원에 비행기를 착륙시키고 내려선 기분이야. 마치 와인을 마시고 취하는 것처럼 고독감과 맑은 공기에 취하지. 정말 흥분되고 행복한 기분에 젖게 돼, 어쨌든 지금은 시카고로 돌아갈 수 없어. 이제 막 뭔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니까.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정신세계가 나를 부르고 있어. 난 그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해."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확실히 알고 싶어.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지도. 또 내게 불멸의 영혼이 있는지, 아니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지 알고 싶어."  "하지만 래리, 그런 질문들은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물어 온 것들이잖아. 만약 해답이 있다면 벌써 밝혀졌을 거야." (p117)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포를 안고 살다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폐쇄공포증이나 고소공포증 같은 게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 심지어는 삶에 대한 공포, 그런 것들이었어요. 건강하고 부유한 사람들, 그러니까 걱정이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더군요. 가끔은 그것이 가장 끈질긴 인간의 고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곤 이런 의문이 들기도 했죠. 그것이 어떤 깊은 동물적 본능, 즉 인간이 삶에 대한 전율을 처음 느낀 원시 생명체로부터 받은 동물적 본능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p408) 

    

“애초에 해답이 없었을 수도 있고 제가 모자라서 끝내 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죠. 라마크리슈나는 이 세상을 신의 장난으로 보았어요. ‘그것은 유희와도 같으며, 그 유희에는 기쁨과 슬픔, 미덕과 악덕, 지식과 무지, 선과 악이 존재한다. 삼라만상에서 죄와 고통이 모두 제거되면 그 유희는 끝은 맞는다’라고 말했죠. 하지만 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런 생각을 거부하고 싶습니다. 제가 주장할 수 있는 건, 절대자가 이 세상에 그 자신을 현현했을 때 선과 악이 본질적인 상관관계를 갖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거예요. 지각변동이라는 상상하기 힘든 공포가 없었다면 히말라야 산맥의 장관은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겁니다. 중국의 장인들은 얇은 도자기로 예쁜 모양의 꽃병을 만들어 거기에 아름다운 디자인을 넣고 멋지게 색칠한 다음, 완벽한 광택을 추가하죠.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꽃병도 그 본질적인 속성 때문에 쉽게 깨질 수밖에 없어요. 바닥에 떨어뜨리면 산산조각이 나고 말죠.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도 오직 악과 결합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서머싯 몸, 면도날, P461-462>     

이것으로 이야기를 끝내려 한다. 그 이후로 나는 래리에 대해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고, 들을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평소에 자신이 말 한 것은 꼭 지키는 친구였으니, 미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정비소에 취직했다가, 그다음에는 트럭을 몰면서 너무 오랫동안 떠나 있었다는 조국에 대해 원하는 만큼 배웠을 것이다. 이것을 모두 끝낸 후에는 택시를 모는 환상적인 계획을 실행에 옮겼을 게 분명하다. 그 뒤로 나는 뉴욕에서 택시를 탈 때마다 운전수를 흘끗흘끗 보는 버릇이 생겼다. 래리의 진지한 미소와 움푹 들어간  눈을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는 야망도 없고 명예욕도 없다. 어떤 식으로든 유명해지는 것은 그가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삶의 행로를 따르며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는 데 만족할 것이다. 그는 겸손한 성격 때문에 자신을 타의 모범으로 내새우진 않을 것이다. 다만, 적절한 때가 되면 나방이 촛불에 모여들 듯 확신 없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그에게 이끌릴 거라고, 그리하여 궁극적인 만족은 오직 정신적인 삶을 통해서만 구할 수 있다는 자신의 믿음을 함께 나눌 거라고, 그리고 스스로 사심없이 자제하며 자기완성을 추구하려 노력하다 보면 저술 활동이나 대중 연설 못지 않게 사회에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p514)    

 

엘리엇은 사교계에서 명성을, 이사벨은 막대한 재산을 확보하여 활동적이고 교양 있는 지역사회에서 확실한 지위를 얻었으며, 그레이는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직업과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하여 6시에 나설 수 있는 사무실을 얻었다. 수잔 루비에는 안정을, 소피는 죽음을, 래리는 행복을 얻었다. 물론'자칭' 지식인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트집을 잡겠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대중은 모두 성공담을 좋아한다. 그러니 나의 결말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고는 할 수 없다. (p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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