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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Nov 08. 2022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영화 <고도를 기다리며> 2001년

언제나 큰 나무 아래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은 그곳을 지나가는 포조와 럭키를 만난다. 언제나 ‘우리 뭐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달고 사는 에스트라공에게 블라디미르는 ‘고도를 기다려야지’라고 대답한다. 소년은 ‘고도는 내일 온다’고 말을 전해주고, 두 사람은 계속 기다린다.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웃음도 마찬가지요. 그러니 우리 시대라고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오.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것도 없지. 그런 얘긴 아예 할 것도 없어요. 인구가 는 건 사실이지만” (고도를 기다리며, p51)

작품 속의 ‘고도’가 누구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작가도 모른다고 했다 한다. 대신 관객들은 스스로 ‘고도’의 존재에 대해서 질문하고 수많은 해답을 찾는다.  

    

‘기다림’은 가오싱젠의 <버스 정류장>과 닮아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은 기다린다.     

“어쨌든 결정해야 해! 갈까 기다릴까? 기다릴까 아님 갈까? 정말 사람 미치겠군! 운명이다. 그래 기다려보자. 늙어 죽을 때까지. 사람은 왜 자신의 미래를 열어가지 않고 운명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지? 거 참. 운명이란 게 뭐지? (아가씨에게) 운명을 믿어요?” (버스정류장)       


“확실한 건 이런 상황에선 시간이 길다는 거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우린 온갖 짓거리를 다해가며 시간을 메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 뭐랄까 얼핏 보기에는 이치에 닿는 것 같지만 사실은 버릇이 되어버린 거동을 하면서 말이다. 넌 그게 이성이 잠드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짓이라고 할지 모르지. 그 말은 나도 알겠다. 하지만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성은 이미 한없이 깊은 영원한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야. 너 내 말 알아듣겠냐?” (고도를 기다리며, p134-135)     

미국에서의 초연 때 연출자 알랭 슈나이더가 베케트에게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작가 자신이 그와 같은 대답을 한 이상 관객들 사이에 물음은 끊이지 않았고, 그 해답 역시 물음만큼이나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고도는 신이다, 자유다, 빵이다, 희망이다......

고도Godot가 영어의 God과 프랑스어의 Dieu를 하나로 압축한 합성어의 약자라는 해석도 있다. 어쨌건 고도에 대한 정의는 구원을 갈망하는 관객 각자에게 맡겨진 셈이다. (p164)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이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눈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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