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헌 Nov 10. 2022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영화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 1990년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은 198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파리대왕>을 통해 악한 본성에 기초한 인간이 만들어나갈 미래를 매우 비관적으로 그린다. 핵전쟁이 일어난 가운데 비행기로 후송되던 한 무리의 어린 소년들이 태평양 어느 무인도에 불시착한다. 처음에는 랠프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구성하지만 곧 봉화를 피워 구조받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랠프 무리와 사냥으로 살아남는 것을 중시하는 잭의 무리로 나뉜다. 멧돼지 사냥에 성공한 잭의 무리는 소년들을 겁에 질리게 하는 숲 속 괴물에게 멧돼지 머리를 제물로 바친다. 섬에 괴물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소년들은 안전을 위해 잭의 무리로 들어간다. 잭의 무리는 잔치를 벌이던 중 흥분하여 괴물의 정체가 낙하산병의 시체임을 알리려 한 사이먼을 살해한다. 랠프 무리가 불을 피우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과정에서 잭의 무리는 또 다른 소년 한 명을 죽인다. 광기에 찬 잭의 무리는 점점 더 포악해지고 랠프마저 죽이려 한다. 잭은 야만과 무법을 상징하는 야만인의 그룹으로, 랠프는 이성과 상식이 존재하는 문명인의 그룹으로 서로 대치하게 된다.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랠프와 소년들은 가까스로 영국 순양함에 구조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극한 상황에 처한 두 리더 소년들의 선함의 상징인 랠프가 진정한 리더 자격이 있는지, 상황에 적응하는 악함의 상징인 잭이 진정한 리더 자격이 있는 것인지? 집단 사회에서 잘못된 리더를 뽑게 되면 그 결과는 참혹하다. 리더의 역할을 과연 무엇인가?    

  

무인도에 남겨진 아이들은 민주적인 투표로 리더를 선출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문명의 이기인 안경을 통해서 불을 만든다. 불은 봉화를 피우는 것과 추위로부터, 그리고 음식을 먹는 것 까지. 그러나 안경은 깨지고, 집단은 분열을 하게 된다. 공포는 분열을 더욱 심화시킨다.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해 불안감이나 공포는 잠재된 폭력성을 불러일으키고 서로를 죽이게 된다. 공포는 외부로부터 올수도 있고, 인간 내면에서도 올수도 있다. 자신들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공포와 두려움은 인간에게 어떤 본성을 자극할 것인가?     

     

안간힘을 쓰고 있는 멧돼지를 모두가 둘러쌌을 때 그들이 알게 된 사실, 한 살아있는 생물을 속이고, 자기들의 의지를 거기에 관통시키고, 맛있는 술을 오랫동안 빨 듯이 그 목숨을 빼앗아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생생한 기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두 팔을 한껏 벌렸다. “너도 그 피를 보았더라면 오죽 좋았을까!” (p101) 

    

소음에지지 않고 랠프가 다시 외쳤다. “법을 지키고 구조되는 것과 사냥을 하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 중 어느 편이 좋으냔 말이야?” (p270) 


"규칙을 지켜 합심하는 것과 사냥이나 하고 살생을 하는 것 어느 편이 더 나을까?" (p276)    

  

랠프는 몸부림치면서 목메어 울었다. 이 섬에 와서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온몸을 뒤흔드는 듯한 크나큰 슬픔의 발작에 몸을 떠맡긴 채 그는 울었다. 불길에 싸여서 섬은 엉망이 되고 검은 연기 아래 그의 울음소리는 높아만 갔다. 슬픔에 감염되어 다른 소년들도 몸을 떨며 흐느꼈다. 그 소년들의 한 가운데에서 지저분한 몸뚱이에 머리는 헝클어지고 코를 흘리며 랠프는 잃어버린 순결과, 인간성의 어두움과, 새끼돼지라는 건실하고 지혜롭던 친구가 떨어져 죽은 일이 슬퍼서 마구 울었다. (p309)     

‘파리대왕’이라는 소설의 제목은 바알제붑(Ba‘al Zebûb), 히브리어로 ‘파리의 왕’을 뜻하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중세 마법 책에 등장하는 바알제붑은 거대한 파리로 그려진다. 고대 사람들은 파리라는 생물이 악령 자체이거나 혹은 사람에게 악령을 옮기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썩은 고기나 쓰레기에 떼 지어 몰려드는 파리를 보고 죽음의 냄새와 병을 일으키는 더러움을 연결했고, 악마의 이미지와 연결했다. 숲 속의 괴물을 하등 두려워할 게 없다고 소년들에게 알리려는 사이먼을 이 파리대왕이 가로막은 것이다. 섬에 괴물이 있다는 두려움이 퍼지면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력을 앞세운 잭 무리로 소년들이 몰려드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사이먼은 이를 막으려 했다. 파리대왕은 자신으로 상징되는 두려움을 인간의 일부분, “아주 가깝고 가까운 일부분”이라고 한다. 사람들 속으로 내려가더라도 결국 거기에서 다시 자신을 만나게 되리라고 한다. 두려움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냈기 때문에 결국 어디에서나 괴물을 마주하게 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폭력을 추구하는 집단에 의존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멧돼지 머리통 위에 올라앉은 파리 대왕이 사이먼에게 하는 말이다. “넌 알고 있지? 내가 너희들의 일부라는 것을……. 일이 왜 이 모양으로 되어 가고 있느냐 하면, 그건 모두 나 때문이야. 어서 돌아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 모두를 가만두지 않겠다.”     

무인도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많다. ‘캐스트어웨이’, ‘로빈슨 크루소’ ‘블루 라군’과 같은 무인도에 남은 인간의 생존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파리대왕은 무인도라는 설정보다는 인간 군상의 선과 악한 본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전 03화 서머싯 몸의 <면도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