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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Feb 02. 2023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시와 사진 그리고 영화

나 여기 왔네 바람에 실려

여름의 첫 날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가을의 마지막 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영상의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이란의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는 1990년대 중반, 할리우드 영화 일색이었던 우리 극장가에 다양한 예술영화들과 제3세계 영화들이 소개되는 새로운 흐름을 대표했던 비서구 영화감독 중 하나다. 그의 작품들은 할리우드식 상업 영화와는 달리, 또 다른 삶의 모습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경험하게 했다. 그는 사진작가이면서 시인이고,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기법을 결합하여 모호하고 다층적이며 사실적이면서도 시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1987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통해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 1997년에 <체리 향기>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1999년에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로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최신작인 <사랑을 카피하다>(2010년)와 <사랑에 빠진 것처럼>(2012년)은 처음으로 이란이 아닌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제작되기도 하였다. 80년대 이란의 척박한 사회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이란 3부작' 또는 '코케르 3부작' 또는 '지그재그 3부작'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2)>,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999년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로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제목이 시에서 가져온다는 것은 화가이기도 한 키아로스타미가 꿈꾸는 영화가 바로 '시와 회화의 만남'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 제목은 이란의 여성 시인 <파로흐자드>의 시구에서 따왔다. 여기서 키아로스타미의 풍경화는 이전 영화와는 비교할수 없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여류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Forugh Farrokhzad>는 이슬람 사회에서 이혼을 했다는 전력 탓에 시달렸으며, 그 고통을 다큐멘터리 영화 <검은 집>(1963)로 표현하다가, 33세에 요절한 인물이다. 파로흐자드는 키아로스타미를 비롯 1980년대 이후 이란의 뉴시네마를 이끈 영화감독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시집은 2012년 <문학의 숲>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푸르른 이여 

불타는 기억처럼 그대의 손을 

내 손에 얹어 달라 

그대를 사랑하는 이 손에 

생의 열기로 가득한 그대 입술을 

사랑에 번민하는 내 입술의 애무에 맡겨 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사진전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에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길(The Roads)]과 '무제(Untilted)' 두 개의 컬렉션 84점과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2005년 신작 35점 등 1978년부터 2005년까지 자신이 직접 촬영한 119점의 흑백 사진 작품들을 ‘금호미술관’에서 8월 26일에서 9월 15일까지 선보였다.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사진집은 2015년 디자인하우스에서 출판되었다. 길을 주제로 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이 사진집은 마치 그가 찍은 영화의 한 장면을 스틸하기라도 한 듯이 절제돼 있고 담백하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진의 정적이고 시적인 메타포를 영화속에 담는 작업은 영화 <24 프레임>(2017)에서도 볼 수 있다. <24 프레임>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생애 마지막 3년 동안 그가 만든 실험적인 프로젝트로 사후에 완성되었다. 그림과 사진을 아우르는 고정된 이미지로 구성된 24개 프레임들의 모음집이다. 대부분은 흑백이며 새, 소, 늑대, 사슴, 사자, 바람, 파도, 해변 등의 동물과 자연을 묘사하는 이미지가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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