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의 <적과 흑>

영화 <적과 흑> 1997년

by 노용헌

<적과 흑The Red and the Black, Le Rouge et le noir>(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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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세하기 위해서라면 그는 더 고통스러운 일도 참아냈을 것이다. 그는 이런 반감을 루소의 <고백록>에서 끌어왔다. 그 책은 쥘리앵의 상상력이 세계를 그려볼 수 있게 도와주는 유일한 책이었다. <대군회보집(大軍回報集)>과 <세인트 헬레나 회상록>등이 이 책과 함께 그의 애독서였다. 그는 이 세 권의 책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늙은 군의관의 한마디 말로 인하여 쥘리앵은 세상의 다른 모든 책을 거짓으로 여겼으며 사기꾼들이 출세를 위해 쓴 것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불같은 영혼을 지닌 쥘리앵은 흔히 어리석음으로 이어지기 쉬운 놀랄 만한 기억력을 가졌다. 장차 자신의 운명이 셀랑 노사제에게 달려 있다고 확실히 믿은 쥘리앵은 그 노인의 환심을 사려고 신약성서를 라틴어로 통째로 암기해버렸다. 또한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교황론>도 암기하고 있었으나 그 어느 것도 별로 믿지는 않았다.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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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인)의 길인가, 흑(사제)의 길인가]

'보나파르트가 유명해졌을 때 프랑스는 침략의 두려움을 겪고 있었다. 군인의 공훈이 필요했고 또 그게 유행이었다. 요즘에는 마흔 살 가량의 성직자들이 연봉 십만 프랑, 즉 나폴레옹 사단의 이름 있는 장군들보다 연봉을 세 배나 더 받는다. 그들에게는 자기들을 보좌할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머리 좋고 정직한 사람이었던 치안판사가 나이가 드니 서른 살 먹은 젊은 보좌신부의 비위를 거스를까 두려워 명예롭지 못한 판결을 내리지 않는가! 그러니 사제가 되어야 한다.‘ (P43)


나폴레옹 몰락 이후 지방의 풍속에서 외관상 우아한 분위기는 엄격하게 추방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했다. 사기꾼들은 수도회에서 도움을 찾았고, 위선이 자유주의 계층에까지 만연했다. 권태가 가중되었고 독서와 농사 이외에 다른 즐거움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았다. (P72)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인간은 어리석은 인간이다. 돌은 무거우니까 밑으로 떨어진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언제까지 어린 아이로 머물러 있어야 한단 말인가? 언제부터 돈 때문에 영혼을 파는 습관을 들였단 말인가? 저들과 나 자신에게서 존경받으려면 남들의 부유함과 거래하는 것은 내 가난뿐이고 내 영혼은 그들의 불손으로부터 수천 리외 떨어진 곳, 그들의 사소한 경멸이나 호의의 표시가 당도하기에는 너무 높은 창공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P110-111)


쥘리앵은 초록빛 잔으로 눈물을 감추려 애썼다. 그러나 라인 산 포도주를 찬양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다. 노래 부르는 것까지 금지하다니! 오, 하느님! 당신께서 이런 일을 묵인하시다니요!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다행히 아무도 그의 이런 좋지 않은 연민을 눈치채지 못했다. 세무관이 왕당파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래의 후렴을 모두 떠들썩하게 합창하는 동안에 쥘리앵의 양심은 이렇게 부르짖고 있었다. 네가 도달하려고 하는 더러운 행운은 바로 이런 것이야. 너는 이런 조건에서 이런 무리와 즐길 수밖에 없을 거야! 너는 아마도 2만 프랑짜리 자리를 얻을지도 몰라. 그러나 잔뜩 고기를 처먹는 동안에 가엾은 죄수가 노래 부르는 것을 막아야 할 것야. 너는 죄수의 비참한 양식에서 훔쳐온 돈으로 오찬을 베풀 거야. 하지만 네가 식사하는 동안 죄수는 더욱더 불행해지겠지! 오, 나폴레옹이여! 위험한 전투로 행운을 개척하던 당신 시대는 얼마나 좋았던가. 그런데 비열하게도 불쌍한 사람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다니! (P218-219)


이 옹졸한 인간이 사소한 두려움에 떨게 내버려두기로 하자. 그는 하인 근성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는데 왜 용기 있는 인물을 자기 집에 두었을까? 그가 자기 사람 고를 줄을 몰랐을까? 힘있고 가문 좋은 사람이 용기 있는 인물을 만나면 그를 죽이거나, 추방하거나, 가두거나, 그렇지 않으면 심한 모욕을 준다든가 해서 상대방이 고통에 못 이겨 죽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하는 것이 19세기의 보편적 풍조였다. 우연히도 여기서는 고통당하는 사람이 아직 용기 있는 인물이 아니다. 프랑스의 작은 도시나 뉴욕처럼 선거로 정부를 구성하는 곳의 큰 불행은 레날 씨 같은 사람들이 존재함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구 2만명 가량 되는 도시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여론을 만드는데, 자치권을 가진 지역의 여론은 무서운 것이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이 고상하고 관대한 마음을 지녔고, 당신의 친구가 될 수 있고, 당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산다면 그는 당신이 사는 도시의 여론에 따라 당신을 판단하게 되는데, 그 여론이라는 것은 우연히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고상하고 부유하며 온건한 바보들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에게는 불행이 따르는 것이다! (P231-232)


‘이렇게 모든 것이 거짓투성이구나’하고 쥘리앵은 생각했다. ‘제로니모 씨는 육만 프랑을 벌어서 런던으로 가겠지. 그러나 산 카를리노 극장 지배인의 처세술이 없었다면 하늘이 내린 그의 목소리도 세상에 알려져 찬양받기까지 아마 십 년은 더 걸렸겠지.... 사실 나는 레날보다는 제로니모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제로니모는 사회에서 그리 큰 명예는 얻지 못하겠지만 오늘처럼 입찰의 슬픔은 겪지 않아도 되니까. 더구나 그의 삶은 즐겁잖아.’ (P241)


피라르 사제는 거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세상의 헛된 화려함의 결과란 바로 그런 것일세. 자네는 분명 웃는 낯에만 익숙할 거야. 그야말로 거짓투성이의 연극이지. 이보게, 진실은 엄격한 것이라네.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사명 또한 엄격하지 않을까? 자네의 양심이 ‘외면의 헛된 우아함을 향한 지나친 감수성’이라는 약점을 경계하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네. 만약 자네가 셸랑 신부님 같은 분에게 추천받지 않았다면.”

피라르 사제는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현저하게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라틴어로 말을 이었다.

“만약 자네가 셸랑 신부님 같은 분에게 추천받지 않았다면, 나도 자네가 익숙할 속세의 공허한 언어로 얘기할 거야. 자네가 청원하는 전액 장학금은 세상에서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네. 그러나 오십육 년 동안 사도직을 수행한 셸랑 신부 같은 분이 신학교에서 장학금 하나 마음대로 얻어줄 수 없다면 대접이 아니지.”

이렇게 말하고 나서 피라르 사제는 자기의 승낙 없이는 어떤 단체나 비밀 수도회에도 들어가지 말라고 쥘리앵에게 일렀다. (P272)


신학교에서 하는 얘기에서는 모든 부인되는 이런 다양한 진실을 어중간하게나마 간파한 쥘리앵은 깊은 우울에 빠졌다. 그는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서 그가 보기에는 매우 거짓된 것이지만 성직자에게는 매우 유익한 여러 가지를 재빨리 습득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단지 달리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듯이 생각되었을 뿐이다. (P278-279)


쥘리앵은 자신의 언행을 위선적으로 꾸미려고 해보았지만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는 어느 순간 싫증을 느꼈으며 완전한 좌절에 빠지기까지 했다. 그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것도 하찮은 인생 행로에서 실패했던 것이다. 외부에서 조금만 도와줬다면 그는 충분히 용기를 회복할 수 있었으리라. 극복해야 할 어려움은 그다지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망망한 대양 한복판에 버려진 작은 배 한 척처럼 외로웠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성공한다 해도 평생을 이런 형편없는 인간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 점심에 베이컨을 곁들인 오믈렛을 게걸스럽게 먹을 궁리만 하는 식충이들! 아니면 어떤 죄악 앞에서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을 카스타네드 사제 같은 부류! 그들이 권력을 쥐게 되겠지. 그러나 아아!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한단 말인가! (P290-291)


[2]

쥘리앵은 살롱 안에 무엇인가 야릇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을 눈치챘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문 쪽으로 움직여갔고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 하인이 최근 선거로 모든 이의 주시를 받게 된 유명한 톨리 남작의 내방을 알린 것이다. 쥘리앵은 다가가서 그를 아주 자세히 보았다. 남작은 어떤 선거구를 주재하고 있었는데, 정당 가운데 어느 하나에 투표한 작은 투표용지를 훔쳐낸다는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그러고 나서는 부족한 투표용지를 채우기 위해 마음에 드는 후보자의 이름이 적힌 다른 투표용지를 모자라는 수만큼 대체해 넣었다. 이런 결정적인 술책이 몇몇 선거인들에게 발각되었는데, 그 술책을 알아낸 선거인들이 톨리 남작에게 서둘러 공손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 작자는 그 큰 사건으로 말미암아 아직도 얼굴이 창백했다. 심술궂은 사람들은 감옥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기도 했다. 라 몰 씨는 그를 쌀쌀하게 맞이했다. 가련한 남작은 총총히 사라져버렸다. (P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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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죽음이 우리를 이 낡은 부패에서 벗어나게 해주는가‘

그가 수행한 여러 가지 업무는 시골에서 올라올 때 싱싱했던 쥘리앵의 안색을 곧 사라져버리게 했다. 그의 창백한 안색은 동료 신학생들에게는 장점의 하나로 보였다. 쥘리앵은 파리의 신학생들이 브장송의 신학생들보다는 훨씬 덜 심술궂고 돈에 대해서도 훨씬 덜 비굴함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쥘리앵이 폐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후작은 쥘리앵에게 말 한 필을 주었다.

말을 타는 동안 동료 신학생들을 만나게 될까봐 쥘리앵은 의사의 처방에 따라 승마운동을 한다고 미리 말해놓았다. 피라르 사제는 몇몇 얀센주의자의 집에 쥘리앵을 데려갔다. 쥘리앵은 놀랐다. 그때까지 그의 종교 관념은 위선이나 돈을 벌려는 희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금전에는 관심 없는 경건하고 엄격한 사람들을 보고 감탄했다. 몇몇 얀센주의자는 그를 좋아하여 여러 가지 충고도 해주었다. 그의 앞에 새로운 세계가 하나 열린 셈이었다. 그는 얀센주의자들의 집에 출입하다가 알타미라 백작을 알게 되었다. 그는 키가 6피트나 되는 사람으로, 자기 나라에서는 사형 선고를 받았던 자유주이자지만 독실한 신자였다. 경건한 신앙과 자유를 향한 사랑이라는 이 기이한 대조가 쥘리앵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P68)


일손을 놓기만 하면 그는 죽을 지경으로 권태로웠다. 그것은 상류 사회에서 두드러진 것으로 감탄할 만하지만 계급에 따라 눈금을 새겨 놓은 예절이 낳은 메마른 결과였다. 조금만 예민한 사람이라면 거기서 인위적인 기교를 보게 되는 것이다. (P69)


음모는 사회의 변덕으로 얻은 모든 지위를 소멸시킬 수 있다. 반면 죽음을 각오하고 뛰어드는 사람은 대번에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 패망한 쪽은 정신마저도 권위를 잃어버리고 만다.....

발르노와 레날 같은 자들이 활개 치는 이 시대에 당통 같은 인물은 어떻게 될까? 재판소 검사대리도 못 할 것이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는 수도회에 매수되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대신이 되겠지. 그 위대한 당통도 결국 공금을 횡령했으니까. 미라보도 지조를 팔았고 나폴레옹도 이탈리아에서 수백만 금을 약탈했잖아.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나폴레옹도 부하 피슈그뤼 장군처럼 가난 때문에 앞길이 막혔을 거야. 도둑질하지 않은 사람은 라파예트뿐이야. 도둑질을 하고 지조를 팔아야만 하는가? 쥘리앵은 생각했다. (P122)


"1574년 4월 30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이 모른다는 것이 있을 법한 일이오?“

“어디서요?”

쥘리앵이 놀라서 물었다.

“그레브 광장에서 말이오.”

쥘리앵은 너무나 놀라서 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호기심 그리고 그의 성격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비극적 흥미에 대한 기대로 그의 두 눈은 빛났다. 이야기꾼이 자기의 말을 듣는 청중에게서 보고 싶어하는 그런 눈빛 말이다.

아카데미 회원은 아무것도 모르는 청중을 얻은 것을 기뻐하며 쥘리앵에게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1574년 4월 30일 그 당시 가장 멋진 청년이었던 보니파스 드 라 몰과 그의 친구이며 피에몬테의 귀족인 한니발 드 코코나소가 그레브 광장에서 참수되었다. 라 몰은 나바르의 마르그리트 왕비의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아카데미 회원은 덧붙여 말했다.

“라 몰 양의 이름이 마틸드 마르그리트라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한편 라 몰은 알랑송 공작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었고 후에 앙리 4세가 된 나바르 왕, 즉 자기 정부(情婦)의 남편과 친한 친구였어요. 1574년 사순절 전 화요일, 즉 사육제의 마지막 날에 궁정은 저 가엾게 죽어가는 샤를 9세와 함께 생 제르맹에 있었습니다. 라 몰은 메디치 집안의 카트린 왕비가 궁정 감옥에 가두고 있는 자기 친구인 왕자들을 구해 내려고 했어요. 그는 이백 명의 기사들을 생 제르맹의 성벽 아래로 미리 보냈습니다. 그런데 알랑송 공작은 겁을 먹었고 라 몰은 사형 집행인에게 넘겨졌어요.

마틸드 양을 감동시킨 것은, 칠팔 년 전 그녀가 열두 살이었을 때 직접 나에게 고백한 바에 따르면, 그 머리, 잘린 머리였어요!.......”

아카데미 회왼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이 정치적 재앙 속에서 그녀에게 충격을 준 것은 바로 나바르의 왕비였어요. 그녀는 그레브 광장의 어떤 집에 숨어 있다가 용감하게도 사형 집행인에게 연인의 머리를 달라고 했지요. 다음날 자정, 그녀는 마차에 그 머리를 싣고 가서 손수 몽마르트르 언덕 밑에 있는 성당에 묻어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쥘리앵이 감동하여 소리쳤다. (P129-130)


위선이란 쓸모가 있으려면 자신을 숨겨야 한다. 그런데 쥘리앵은 우리가 보았듯이 라 몰 양에게 나폴레옹에 대한 자신의 숭배를 반쯤 털어놓았던 것이다.

이게 바로 저들이 우리보다 훨씬 유리한 점이구나. 정원에 혼자 남은 쥘리앵은 생각했다. 자기 조상의 이야기가 속된 감정들을 초월하여 그들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먹고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비참한가! 그는 씁쓸한 기분으로 생각을 이어갔다. 나는 이런 큰 문제는 생각해볼 자격도 없다. 빵을 살 1000프랑의 연금이 없기 때문에 내 삶은 위선의 연속에 불과하다. (P134)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면 재미있겠군! 그녀가 나를 사랑하건 아니건. 아무튼 나는 재치 있는 아가씨를 은밀한 말벗으로 갖게 된 셈이야. 쥘리앵은 계속 생각했다. 그녀 앞에서는 온 집안 사람들이 벌벌 떠는데 말이야.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크루아즈누아 후작이 쩔쩔매지. 그렇게 예의 바르고 용감하고 부드러운 젊은이가. 출생의 온갖 혜택과 부를 한꺼번에 누리고 있는 젊은이가 말이야. 그중 하나만이라도 내게 있다면 내 마음이 얼마나 편안할까! 그는 그녀에게 마음은 온통 빼앗겼으니 그녀와 결혼하겠지! 그 결혼을 성사시키려고 내가 두 명의 공증인에게 얼마나 많은 답장을 썼던가! 손에 펜을 잡고 있을 때 나는 그처럼 보잘것없는 모습이지만 그로부터 두 시간 후 여기 이 정원에서는 그 사랑스러운 청년을 이기고 있어. 그녀가 나를 더 좋아한다는 것이 놀랍고도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니까. 어쩌면 그녀는 그에게서 보이는 미래의 남편 모습을 싫어하는지도 몰라. 그녀는 충분히 그럴 만큼 오만하지. 그녀가 내게 품고 있는 호의라는 것도 보잘것없는 말동무 신분으로 내가 얻어낸 것이다!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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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대신이 될 수도 있고 성직자에게 산림을 되찾아줄 수도 있는 유능한 인물이 딸로서 라 몰 양은 성심 수녀원에 있던 시절에 가장 아첨을 받는 대상이었다. 그런 불행은 결코 보상될 수 없는 것이었다. 신분과 재산 등등 모든 혜택을 누리니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리라고 사람들은 그녀에게 말하곤 했다. 이것이 바로 귀공자들의 권태와 그들의 모든 광기의 원천이기도 했다.

마틸드는 이런 생각의 불길한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영리하다고 해도 십 년 동안이나 온 수녀원의 아첨을 받으면, 그것도 근거가 확실한 아첨을 받으면 그런 영리함을 유지할 수가 없는 법이다.

쥘리앵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그녀는 더 이상 권태롭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위대한 정열에 자신을 맡기기로 한 결심을 축복으로 여겼다. 이런 즐거움은 많은 위험이 따르지. 잘된 거야. 천만번 잘 된 거야.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P152)


“결국 프랑스에는 두 개의 당이 있습니다.”

라 몰 씨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런데 두 당은 이름만 다른 것이 아니라 분명히 분리된 두 개의 당입니다. 무엇이 없어져야 하는지 알아봅시다. 한쪽에는 저널리스트, 유권자들. 한마디로 여론이 있습니다. 젊은 층과 그들을 지지하는 모든 것입니다. 그들이 떠들어대는 헛된 소리에 정신이 없는 동안 우리는 예산을 소비할 수 있는 확실한 이점이 있습니다.” (P249)


프랑스에는 이제 모든 이들이 알고 사랑하는 명망 있는 장군은 하나도 없고, 군대는 왕좌와 제단의 이익에 맞게 조직되어 있으며,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각 연대에는 전쟁 경험이 있는 하사관이 오십 명씩이나 있는 반면 프랑스 군대는 노병들을 모두 퇴역시켰다고 말해봤자 소용없는 일입니다.

소시민에 속하는 이십만의 젊은이들은 전쟁을 바랍니다.....“

“불편한 진실은 그만둡시다.” (P251)


전에는 야망이나 허영심의 단순한 만족이 레날 부인이 그에게 불어넣은 감정들을 내몰았다. 그러나 마틸드는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그는 미래의 어디에나 그녀가 있음을 알았다.

이 미래 속의 모든 곳에서 쥘리앵은 성공의 결핍을 보았다. 베리에르에서 우리가 보았던 그토록 긍지가 가득하고 자신만만하던 청년이 이제 우스운 자기 비하에 빠져 있었다. (P266-267)


공작이 켈 함락에 대한 성명을 마치더니 “당신은 수도승 같은 얼굴을 하고 있군요. 내가 런던에서 알려주었던 근엄의 원칙을 지나치게 지키고 있어요. 슬픈 표정은 좋은 표정이 아닙니다. 권태로운 표정을 보여야지요. 만일 당신이 슬프다면 그건 당신이 성공하지 못했거나 당신에게 뭔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쥘리앵에게 말했다. (P268)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인상을 주는지 야심적으로 살피는 삶의 방식이 가져다주는 권태, 그런 것이 가져다주는 성공에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실제적인 기쁨이 없는 법이다. 쥘리앵을 생각하면서부터 그런 권태가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P304)


가난하고 탐욕스러운 그 사람은 가장 완벽한 위선으로 약하고 불행한 여인을 유혹하여 어떤 신분을 얻고 무언가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것이 제 의무의 일부이기에, 저는 J씨가 어떠한 종교원칙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덧붙여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양심적으로 말씀드려, 그가 어떤 가정에서 성공하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는 그 가정에서 가장 신뢰받는 여인을 유혹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사무욕한 외모와 소설 같은 말로 가장한 그의 유일한 큰 목표는 그 집의 주인과 그의 재산을 자유로이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는 영원한 불행과 회한을 남기는 사람입니다.....

아주 길고 눈물에 의해 반은 지워진 이 편지는 분명 레날 부인의 필체로 쓰여 있었다. (P359)


쥘리앵은 베리에르의 새로 지은 교회로 들어갔다. 교회의 높은 창에는 모두 진홍빛 커튼이 걸려 있었다. 쥘리앵은 레날 부인이 앉아 있는 의자 뒤 몇 걸음 거리에 가서 섰다. 그녀는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를 그토록 사랑했던 그 여인을 보자, 쥘리앵은 너무도 팔이 떨려 처음에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못 하겠다. 몸이 이래서는 하지 못하겠어.

바로 그때, 미사를 거들던 젊은 성직자가 거양성체(擧揚聖體)를 위해 종을 울렸다. 레날 부인이 머리를 숙였다. 그녀의 머리가 잠시 숄의 주름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았다. 쥘리앵에게 그녀의 모습이 그리 선명하게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부인을 향해 권총 한 발을 발사했다. 빗나갔다. 그러자 그는 두 번째로 또 발사했다. 부인이 쓰러졌다. (P360-361)


군중에 의해 엎어진 의자에 발이 걸렸던 것이다. 다시 일어나려는 순간, 그는 목이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그를 체포한 것은 정복 차림의 헌병이었다. 쥘리앵의 손이 기계적으로 권총에 갔으나, 두 번째 헌병이 그의 팔을 붙들었다.

그는 감옥으로 끌려갔다. 사람들이 그를 감방에 가둔 뒤 그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는 혼자 남겨졌다. 그리고 감방 문이 엄중히 잠겼다. 그 모든 일은 아주 빨리 행해졌지만 쥘리앵은 무관심했다.

“그래, 모든 것이 끝났어.” (P362-363)


레날 부인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첫 번째 총알은 그녀의 모자를 꿰뚫었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두 번째 총알이 발사되었다. 총알은 그녀의 어깨에 맞았는데, 놀랍게도 어깨뼈에서 튕겨나와 고딕 식 기둥에 다시 맞았고, 커다란 돌 파편이 떨어져 내렸다.

고통스럽고 긴 치료를 마친 뒤 근엄한 외과 의사가 레날 부인에게 “당신의 생명에 지장이 없음을 제가 보증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몹시 괴로웠다. (P363)


쥘리앵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계속했다.

“저는 어떠한 용서도 구하지 않습니다. 저는 환상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죽음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죽음은 당연합니다. 저는 온갖 존경과 찬사를 받을 만한 훌륭한 부인의 살해를 기도했습니다. 레날 부인은 제게 어머니 같은 분이었습니다. 저의 범죄는 끔찍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것은 계획적이었습니다. 배심원 여러분, 그러니 저는 죽어 마땅합니다. 그런데 저의 죄가 더 가벼운 것일지라도, 저는 제 젊음이 동정할 만하다는 사실에 신경 쓰지 않고 도리어 저를 통해 저와 같은 하층민으로 태어나 어떻게 보면 가난에 짓눌리면서도 운좋게 좋은 교육을 받고 부유한 사람들의 오만이 사교계라고 부르는 곳에 대담하게 끼어들려 한 저 같은 하층계급 젊음이들의 용기를 영원히 꺾으려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배심원 여러분, 그 점이 바로 저의 죄입니다. 그러니 저는 저와 같은 계급의 동료들로부터 판결을 받지 못하는 만큼 더 가혹하게 벌을 받을 것입니다. 저의 눈에는 배심원석에 부유한 농민은 보이지 않고 오직 분개한 부르주아들만 보입니다......“ (P410)


막 두시를 치자 움직이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배심원실의 작은 문이 열렸다. 발르노 남작이 엄숙하고 과장된 걸음으로 앞서 나왔고, 다른 배심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발르노 남작이 기침을 하고 나서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쥘리앵이 살인죄를 저질렀다고, 그것도 계획적인 살인죄를 저질렀다고 결론을 내렸음을 선언했다. 그 선언은 곧 사형 언도를 의미했고, 잠시 후 판사는 사형을 언도했다. 쥘리앵은 자기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 라발레트 씨 사건을 떠올렸다. 새벽 두시 십오분이었다. 오늘은 금요일이구나, 하고 쥘리앵은 생각했다. (P411)

나는 진실을 사랑했다.... 그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도처에 위선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협잡뿐. 가장 덕망 놓은 사람들에게도. 가장 위대한 인물들에게도. 그리하여 그의 입술에 역겨움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렇다. 인간은 인간을 믿을 수 없다. (P438)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종교에?..... 그래, 마슬롱과 프릴레르와 카스타네드 같은 인간들의 입 속에?...... 그는 극도의 멸시로 인한 씁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니면 사제들이 예전의 사도들만큼 적은 보수를 받는 진정한 기독교에?..... 그러나 성 바오로는 명령하고, 얘기하고, 남들에게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게 하는 즐거움으로 보상을 받았다.....

아아! 진정한 종교가 있다면..... 나도 정말 어리석구나! 고딕 식 성당의 거룩한 그림 유리창을 보고 약해진 마음으로 그 유리창에 그려진 사제를 상상하다니..... 나의 영혼은 그런 사제를 이해할 것이다. 내 영혼이 그런 사제를 갈구하고 있으니까..... 나는 보부아지 기사 같은, 조금의 매력을 제외하면 지저분한 머리 모양을 한 거들먹거리는 인간들밖에 발견하지 못한다. (P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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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이 ‘적과 흑’(1830)을 통해 출신은 비천하지만 타고난 외양이 수려해 여심(女心)을 끌고, 그 여심(사랑)을 매개로 가슴속 야망(욕망)을 실현하려고 했던 한 청년의 초상을 쥘리앵 소렐로 창조했다면,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뒤, 모파상은 ‘벨아미’(1885)를 통해 쥘리앵 소렐 이후 변화된 세계 속에, 조르주 뒤루아라는 또 다른 청년의 삶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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