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 2002년
필립 K. 딕은 1928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나 198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48편의 장편소설과 100편 이상의 단편을 썼다. 주로 현대문명 속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인간의 모습을 섬뜩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의 원작인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와 영화 ‘토탈리콜(1990)’의 원작 단편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이다. 두 작품의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가보다 더 인간에 가까운 복제 인간들로 인해, 혹은 자신의 기억을 잃고 다른 기억이 이식되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SF 문학상 가운데 권위 있는 ‘존 W. 캠벨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필립 K. 딕’상이 있다.
발달된 현대문명은 인간과 가까운 복제 인간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인간을 지배할 만큼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기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스위블>과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해 버린 기계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기술과 정보가 인간을 지배하는 한편, 인간 역시 그 기술과 정보에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기계의 오류로 가치관의 혼동을 겪는가하면(<마이너리티 리포트>),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고도로 발달된 인공지능 기계에 의해 감정을 조절당하기도 한다(<스위블>). (P281)
[스위블]
수리공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지금은 그런 조잡한 제품은 취급하지 않아요. 불순해 보이는 개인이 이념을 달리할 때까지 기다려서 제 발로 떠나기를 바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죠. 어떤 의미에선 모순이 아닌가요? 2043년 전쟁이 끝난 후, 반대의 이념은 딱 하나였습니다. 그건 바로 스위블의 거부였죠.“
그리고 젊은이가 행복하게 웃었다. “그래서 스위블은, 스위블로 자기가 어떤 부류인지 결정되길 원치 않는 사람들을 식별했습니다. 저에겐 그게 바로 전쟁이었어요. 폭탄과 네이팜탄이 총동원되어 유혈이 낭자한 전쟁과는 차원이 달랐죠. 다분히 과학적인 전쟁이었어요. 지하실이나 폐허, 은신처를 샅샅이 뒤져 불순 세력을 찾아내는 일을 바로 스위블이 했습니다. 빠짐없이 다 찾아낼 때까지 말이죠. 그리고 그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구요.” 그가 장비들을 끌어모으며 말을 맺었다. “이제 우린 전쟁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반대 이념이 사라져 더 이상 대립이 일어날 까닭이 없죠. 롸이트의 말대로 우리에게 무슨 이념이 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공산주의냐 자유주의냐 사회주의냐 민족주의냐 노예찬성주의냐 따위는 중요치 않다는 거죠. 중요한 건 우리가 완전히 하나의 이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절대적인 충성 말입니다. 우리에게 스위블이 있는 한--”
그리고는 커트랜드에게 은밀히 눈짓을 보냈다. “신형 스위블을 소유하게 될 여러분은 많은 혜택을 받으시게 될 거에요. 이제 자신의 생각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안도감과 만족감을 동시에 느끼시게 됩니다. 여하튼 다른 사람과 이념이 달라질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더구나 스위블이 지나가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면 덥석 잡아먹을 테니까요.”
가장 먼저 냉정을 되찾은 사람은 맥도웰이었다. “그렇군요.” (P27)
수리공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스위블은 조건을 통제한 단백질이 들어 있는 배양기에서 진화한 유기체예요. 스위블의 중추를 이루는 신경조직은, 스위블이 자라고 생각하고 먹고 배설한다는 점에서 살아있다고 할 수 있죠. 네, 분명히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스위블은 전체 기능을 볼 때, 제조된 제품입니다. 유기 조직이 주저장 장치에 주입되어 봉해지거든요. 전 절대 그것을 수리할 수 없어요. 다만 식이 균형을 유지하도록 영양분을 공급할 뿐이죠. 균형잡힌 영양 공급을 통해 스위블이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는 게 제 일이에요. 물론, 그 유기체는 기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죠.”
“스위블이 인간의 마음을 직접 조종하나요.” 앤더슨이 넋을 잃고 물었다.
“물론입니다. 스위블은 인공적으로 진화된 텔레파시를 이용합니다. 그로 인해 롸이트는 현대에 당면한 가장 기본적인 문제인 다양성, 이념 갈등, 배신, 대립 등을 사라지게 만들었죠. 슈타이너 장군의 유명한 격인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투표소에서 전쟁터로 대립이 확대된 것이 전쟁이다.’ 그리고 ‘세계서비스헌장’의 전문을 보시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인간의 마음에서 전쟁을 제거할 수 있다면 제거해야 한다. 모든 대립의 씨앗은 인간의 마음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2045년까지, 우린 인간의 마음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그 방법을 몰랐어요. 그래서 2045년까지,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었죠.”
“그랬군요!” 페이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P29)
[마이너리티 리포트]
노란 조명이 켜진 채 사무실이 일렬로 늘어선 분주한 복도를 걸어가면서 앤더턴이 말했다. “범죄예방 이론은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 우린 자네가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공개된 정보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국장님께서는 범죄자를 감옥에 가두거나 벌금을 물리는 형벌 제도를 대담하게 철폐한 뒤, 돌연변이 예지자들의 예지 능력을 활용해 범죄를 성공적으로 예방하셨지요. 사실, 처벌은 그리 효과적인 억제책이 되지 못하며, 이미 고인이 된 희생자들에게도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내려가는 승강기에 올라탔다. 승강기가 빠르게 내려가는 동안, 앤더턴이 말했다. “자네, 범죄예방 이론의 기본적이고도 합법적인 결함을 이미 파악했나? 우린 법을 어기지 않은 사람들을 잡아넣거든.”
“하지만 언젠가는 이길 사람들이 아닙니까?” 워트워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다행히 아직 법을 어기지 않은 사람들이기도 하지. 그 자들이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손을 쓰니까 말이야. 그래서 범행 자체는 전적으로 형이상학적인 개념이 돼 버렸어. 우린 그들을 유죄로 보지만 그들은 끝까지 결백을 주장한다네. 사실, 어떻게 보면 무죄라고도 할 수 있지.”
두 사람은 승강기에서 내려 다시 노란 조명이 켜진 복도를 걸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범죄가 발생할 확률은 매우 낮다네. 반면 미래의 범죄자들을 수용할 수용소가 점점 늘어나고 있지.” (P80-81)
어두침침한 구석에서 세 명의 백치가 나란히 앉아 연신 무어라고 열심히 지껄여대고 있었다. 그들이 닥치는 대로 내뱉은 말들을 기계가 분석하고 비교하여 눈에 보이는 기호 형태로 재조합한 다음 천공 카드(천공기로 구명을 뚫어 데이터를 기록하는 데 사용하는 카드. 컴퓨터의 입출력 매체(媒體)로 쓰임)에 기록하면, 그 카드가 다양하게 부호화된 구멍으로 튀어나왔다. 하루 종일 백치들은 등받이가 높은 특수의자에 앉아 철제수갑에 손목이 묶이고 온몸에 전선이 부착된 채 쉴새없이 중얼거렸다. 그들의 생리적 욕구는 자동으로 해결되었다. 그들에게 정신적 욕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저 알아듣기 힘든 말을 자기 혼자 지껄이다가 지치면 잠을 자면서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게다가 어둡고 짙은 그늘 속에서 정처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이 아닌 미래의 그늘이었다. 기형적으로 큰 머리통에 쓸모 없는 몸뚱아리로 쉴새없이 중얼거리는 이 백치들은 아직 펼쳐지지 않은 미래를 응시하고 있었다. 한편 분석기는 그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주의 깊게 들은 다음, 그 중에서 예언이 담긴 말들만 기록하고 있었다. (P82)
"난 당신 기관에서 어떤 통보도 받지 않았어.“ 캐프랜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말을 가로챘다. ”당신이 나에 대해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레오폴드 캐프랜, 서방연합동맹군(AFWA) 사령관.” 그리고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미중 전쟁이 끝나고 연합군이 해체되면서 퇴역했지.” 그럴듯한 말이었다. 앤더턴은 육군이 자신들을 비호하기 위해 그 카드 사본을 바로 처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조금 가라앉자, 앤더턴이 물었다. “그래요? 날 여기까지 끌고 왔으니, 이젠 어쩔 셈이요?” (P94)
앤더턴은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생각을 캐프랜에게 재빨리 털어 놓았다. “그 카드에 적힌 예언은 경찰국 내부에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조작한 겁니다. 카드를 조작해서 놓은 덫에 내가 걸려든 거예요. 이제 내 권한은 자동으로 박탈되겠죠. 내 보좌인은 범죄예방국의 효율적인 시스템을 이용하여 살인을 막았다고 나서서 주장할 거구요. 내가 살인을 할 거라니 가당찮은 말입니다. 난 추호도 그럴 생각이 없어요.” (P95)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들리더니, 곧이어 원고를 능숙하게 읽어 내려가는 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가 방안 가득 울려 퍼졌다.
“당국은 시민들에게 이 위험 인물의 도피를 어떤 식으로든 도와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습니다. 범인의 탈주로 살인 사건이 일어날 위기에 처한 이 특수한 상황은 현대에 들어 가장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당국은 경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시민은 모두 은닉죄로 간주할 예정이라고 통보했습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방연합정부 범죄예방국은, 범죄예방 시스템을 통해 살인 혐의를 받고 자유와 특권을 박탈당한 존 앨리슨 앤더턴 전 국장을 추적하여 체포하기 위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P96)
"당신이 더 잘 알 텐데. 이 음모는 아주 빈틈없이 짜여졌어요. 아주 계획적이란 말이요. 카드는 워트워가 출현하는 바로 그날 나오기로 된 거구요. 이제 워트워는 국장이고, 당신은 덫에 걸린 범죄자 신세가 됐군요.”
“배후 인물은 누군가요?”
“당신 아내”
그 말을 듣자마자 앤더턴은 현기증을 느꼈다. “정말입니까?” (P100-101)
그런데 무언가가 더 있었다. 여러 신분증과 함께 지폐 만 달러가 봉투에서 나왔다. 앤더턴은 돈과 신분증을 주머니에 넣은 다음, 동봉된 편지로 눈을 돌렸다.
그는 처음에 아무 생각없이 그 구절을 읽었다. 그리고 의미를 되새기자 한동안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다수가 있다면 필연적으로 그에 대응하는 소수가 있기 마련이다. (P102)
앤더턴은 구멍에 25센트를 떨어트리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지역에는 어김없이 경찰국에서 알리는 벽보가 나붙어 있었다. 그야말로 당대에 일어나기 힘든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 범죄자가 도망치다니!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지나칠 정도로 뜨거웠다.
“...... 그는 자신의 막강한 권한을 악용해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절제된 분노가 드러났다. “예언이 담긴 자료를 가장 먼저 입수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추적을 당하기 전에 미리 달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그는 강력한 권한을 발휘하여 잠재적 범죄자들을 감금함으로써 희생자들의 목숨을 구해 왔습니다. 돌연변이 예지자들의 예언이 담긴 암시를 분석기를 통해 파악함으로써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는 범죄예방 시스템을 처음 고안한 인물이 바로 존 앨리슨 앤더턴입니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세 명의 돌연변이 예지자들은.......”
그가 조그만 욕실로 들어가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P103)
어쨌거나 지금은 사고로 피투성이가 된 경찰국장이 아니라 해고된 전기기사이기 때문이다. (P104)
"..... 세명의 돌연변이 예지자의 예지 능력을 이용하여 범죄를 예방하는 이 시스템은 이번 세기 중반 무렵부터 이용되었던 컴퓨터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럼, 컴퓨터의 분석 결과는 어떻게 검증되는 걸까요? 똑같이 설계된 다른 컴퓨터에 그 분석 자료를 입력함으로써 검증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컴퓨터 두 대가 각각 다른 결과를 도출한다면 어느 결과가 옳다 말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통계적 방법에 근거한 해결책은 세 번째 컴퓨터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다수 보고서인 소위 메조리티 리포트가 도출될 수 있습니다. 컴퓨터 각각에서 도출된 세 결과 가운데 서로 일치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 결과가 정답일 확률이 높아집니다. 세 대 중 두 대 이상이 잘못된 결과를 똑같이 도출할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앤더턴은 손에 쥐고 있던 수건을 떨어트리고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몸을 떨며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세명의 예지자가 미래를 똑같이 예언하는 일은 희망사항일 뿐 불가능하다고 워트워 국장대리는 설명했습니다. 예지자 둘의 예언이 합해져 만들어진 다수 보고서인 소위 메조리티 리포트와 미미하지만 시간과 장소가 변수로 작용해 둘과 다른 예언을 한 예지자의 소수 보고서인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이는 ‘미래의 다양성’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미래의 길이 오직 하나만 열려 있다면, 다른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미래를 예언하는 일부터가 무의미해집니다. 우리는 우선 ---”
앤더턴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작은 방 안을 서성거렸다. 그렇다! 천공 카드에 적힌 내용을 예언한 돌연변이 예지자는 셋 가운데 둘이었다. 봉투에 동봉된 글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바로 이것이었다. 나머지 예지자의 예언이 담긴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중요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게 무엇일까? (P104-105)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단 하나예요. 당신은 자신이 무죄라는 사실을 내게 계속 말해왔어요. 당신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거라는 말 나도 분명히 믿어요. 하지만 원본인 메조리티 리포트가 가짜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해요. 아무도 그걸 조작하지 않았어요. 에드 워트워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어요. 당신을 모함에 빠트리려는 음모는 애초부터 없었다구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진짜라고 믿는다면 메로리티 리포트 역시 인정해야 할 거예요.” (P113)
앤더턴은 집으로 운전하는 도중 캐프랜의 군사정보국 요원들에게 납치당한다. 그리고 국제 퇴역장교 연맹의 총사령부인 캐프랜의 별장으로 끌려간다. 앤더턴은 범죄예방 시스템을 해체하라는 최후통첩을 받는다.
경찰국장인 앤더턴은 상원에 지지를 호소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에게 등을 돌린다. 상원은 그 사건이 내전으로 비화될 것을 우려해 범죄예방 체계 해체 비준안을 통과시키고 임시 조처로 군사법 부활을 포고한다. 이에 앤더턴을 비롯하여 불만을 품은 경찰들이 조직을 결성하고, 앤더턴이 퇴역장교 캐프랜을 찾아 연맹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그를 총으로 쏜다. 그러나 오직 캐프랜만 죽는다.
이것이 ‘도나’의 예언이었다. 앤더턴은 이번에 ‘마이크’의 예언이 담긴 테이프를 재생했다. 그 예언은 ‘도나’의 것과 거의 비슷했다. (P122-123)
“눈을 항상 크게 뜨는 게 좋을 거야." 앤더턴이 젊은 워트워에게 속삭였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거든.” (P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