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스타이런의 <소피의 선택>

영화 <소피의 선택> 1982년

by 노용헌

‘최고의 여배우’라는 찬사가 전혀 아깝지 않은 메릴 스트립의 존재가 이 영화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큘라 감독은 처음 소피 역을 메릴 스트립으로 선정했으나, 워낙에 역할에 신중하게 고르는 스트립은 대본을 본 후에 대답을 하겠다고 했다. 그 사이 이 역을 다른 여배우에게로 돌아갔고, 대본을 본 메릴 스트립은 이 역을 하고 싶어 감독에게 무릎까지 꿇어가면서 간청을 해 결국 얻어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에서는 소피가 엄청난 미인으로 설정돼 있는데, 사실 메릴은 미인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녀의 연기가 이를 충분히 덮어주고 있음 또한 틀림없다. 병적으로 보일 만큼 창백한 연기로 소피 역을 소화하여 1982년 뉴욕영화비평가상과 LA영화비평가상, 1983년 아카데미상과 골든 글로브상의 여우주연상을 받는 등 <소피의 선택>을 통해 그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했다. - ebs 일요시네마

소피의 선택 02.jpg

전쟁과 학살의 비극을 체험한 아우슈비츠 생존자 소피

유대인이라는 굴레 속에서 종종 발작을 일으키는 지식인 네이선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에 대한 고뇌하던 남부인 스팅고

소피의 선택 07.jpg

[1]

나는 오래도록 그곳에 남아 미래를 생각했는데, 나의 미래는 뉴저지 초원 위로 펼쳐진 스모그에 뒤덮인 지평선처럼 희미하고 불분명해 보였다. 많은 것을 걱정하기에는 너무 어렸지만, 그렇다고 확실한 걱정거리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어린 것은 아니었다. 그때까지 내가 읽었던 그 우스꽝스러운 원고들은 어떻게 보면 내게 경고를 하고 있었고, 야망이란 특히 문학과 관련된 야망이란 얼마나 허망하고 슬픈 것인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나는 단순한 희망이나 꿈의 차원을 넘어 정말로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파렐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심하게 흔들어 놓아 난생처음 내 안에 있던 커다란 공허를 느끼게 되었다. (P51)


그 소동을 벌인 장본인은 내 목록에 처음으로 이름이 올라있던 네이선 랜다우였다. 그렇다면 그 소란과 죄악과 혼돈에 동참했던 그의 파트너는 누구란 말인가? “그러면 여자는요? 그로스먼인가요?”

“아니, 그로스먼은 돼지야. 소피라고 폴란드 여자요. 소피 Z. 난 그렇게 불러요. 그 여자 성(姓)은 발음하기가 너무 어렵거든. 어쨌든 꽤나 매력적인 여자지. 그 소피라는 여자 말이오.” (P80)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내가 거기에 참전하면서 마리아는 내 인생의 무대에서 서서히 퇴장해 버렸지만, 그 후로도 그녀는 그리움의 대상으로 종종 떠오르곤 했다. 그런 그녀가 창문으로 뛰어내려 자살을 했고, 놀랍게도 바로 몇 주 전 맨해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내가 살던 6번가 모퉁이의 어느 건물에 살았다고 했다. 우리가 그리니치빌리지라는 작은 동네에 살면서도 단 한 번도 서로 부딪친 적이 없다는 것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비인간적인 거대함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나는 양심의 가책에 가까운 격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혹시 그녀가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녀를 구해 줄 수 있었을까, 그런 끔찍한 일을 막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기사를 읽고 또 읽으면서 거의 경련을 일으킬 정도가 되었고, 이 젊은 아가씨의 절망과 상실을 다룬 무정한 기사에 신음을 뱉어 냈다. 왜 그랬을까? 기사 내용 중 가장 가슴 아팠던 것 중 하나는 알 수 없는 복잡한 이유들로 인해서 사체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채 극빈자 묘지에 묻혔다가 몇 주가 지나서야 다시 꺼내져 버지니아로 보내졌고 그러고 나서야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끔찍한 이야기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날은 일에 대한 생각을 집어치우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맥주를 꺼내 마시면서 위안을 찾았다. (P84-85)

소피의 선택 17.jpg

나는 처음으로 소피를 대면하게 되었고, 즉시는 아니지만 굉장히 빨리 또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깨닫게 된 거지만, 그 사랑은 여러 가지 이유로 내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그런 사랑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녀가 희미하게나마 정말로 마리아 헌트를 닮았다는 것이 그 많은 이유들 중 하나였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그리고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것은 그녀에게서 보았던 죽은 아가씨의 사랑스러운 모습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얼굴에도 드리워져 있었을, 죽음을 향해 무모하게 돌진하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비극적인 절망의 그림자였다. (P89)


“맞아요. 르 스코르뷔, 괴혈병이었어요. 이가 다 빠져 버렸어요! 그리고 발진티푸스에 성홍열에 빈혈까지, 전부 앓았어요. 정말 몰골이 말이 아니었죠.” 그녀는 자기 연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어조로, 어린아이처럼 진지하게, 마치 애완동물들의 이름을 늘어놓듯이 병명을 읊어 내려갔다. “하지만 그때 네이선을 만났고, 네이선이 날 돌봐줬어요.”

“이론적으로는 포로수용소가 해방되었을 때 구원을 받은 거지.” 네이선이 설명했다. “죽음을 면했으니까.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오랫동안 난민 수용소에 있었대. 거기엔 수천명, 아니 수만 명이 있었는데, 나치가 그들에게 입힌 상처를 모두 치료할 만큼 의료 시설이 충분하지 않았다는군. 그래서 작년에 소피가 이곳 미국으로 건너왔을 때, 여전히 심각한, 정말 심각한 빈혈을 앓고 있었어. 척 보고 알았지.”

“어떻게 척 보고 알았어요?” 나는 그의 전문가적 지식에 호기심을 느끼며 물었다.

네이선은 짧고 분명하게, 그리고 호감이 갈 정도로 겸손한 어조로 설명했다. 자신은 내과의가 아니라고 했다. 하버드 대학 이공학부를 졸업했고, 세포 및 발달 생물학 석사 학위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 분야의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브루클린에 본부를 둔 미국 최대의 제약회사 중 하나인 파이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고도 했다. 자신의 배경 설명은 그 정도였다. (P122-123)

소피의 선택 06.jpg

그러나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가운데서도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전날 밤 소피와 네이선 사이의 끔찍한 소동을 기억하며 나는 웃음과 편안함과 친밀감이 가득한 이 단란한 모임이 그들의 본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가장된 모습에 너무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으로, 지난밤 내가 목격했던 그 끔찍한 소동이 안타깝지만 드물게 일어나는 연인끼리의 사랑싸움일 뿐이고 보통 때는 낭만적인 사랑이 가득할 것이라고 쉽게 믿어 버렸다. 그러나 사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우정에 대한 갈망이 대단히 커서 - 그리고 소피에게 열중해 있었고, 그녀의 애인이며 역동적이고 어딘가 모르게 이국적이며 희한하게도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는 이 젊은 남자에게 이상하게 끌려서 - 감히 그들의 관계를 장밋빛이 아닌 다른 색으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분명히 잘못됐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명랑함과 상냥함과 배려 저 밑에 불온한 긴장이 존재하는 것이 느껴졌다. 두 연인 사이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는 말이 아니다. 분명히 존재하는 그 불안한 긴장감은 주로 네이선에게서 나오는 것 같았다. 산만하고 들떠 보이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레코드판들을 만지작거리다가, 헨델을 비발디로 바꿔 걸었고, 속이 타는지 물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다시 자리에 앉아 바지 위에 손을 올려놓고 호른의 유쾌한 리듬에 맞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P127)


그가 열변을 토했다. “오늘날의 남부는 인류와 연계를 맺을 권리를 포기해 버렸어. 남부의 백인 하나하나가 다 바비 위드의 비극에 책임이 있어.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어!”

나의 온몸이 심하게 떨렸고 손은 경련이 일 듯 씰룩였다. 나는 맥주가 잔 속에서 출령이는 걸 노려보았다. 1947년. 1.9.4.7. 그해 여름. 뉴어크가 불바다가 되고, 디트로이트의 하수구가 흑인들의 피로 물들기(1967년 7월 뉴어크와 디트로이트에서 일어난 흑인 인종 폭동) 딱 한 달 빠진 이십년 전인 그때는, 남부 태생에 예민하고 분별력이 있으며 끔찍하고 사악한 자신들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같은 가혹한 비난에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 비난이 주로 노예 폐지론자의 다시 고개를 드는 독선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리고 너무도 순진하게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해서 참을 만은 하지만 우울한 기분에 피식 웃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해도, 고통받기는 매한가지였다. (P133-134)

소피의 선택 08.jpg

소피가 내게 말했다.

“어릴 적 크라쿠프에 있을 때 우리는 대학에서 멀지 않은, 꼬불꼬불한 거리에 있는 아주 오래된 집에 살았어요. 아주 오래돼서, 몇 세기 전에 지어졌을 법한 집도 있을 정도였어요. 희한죠. 그 집과 예타 짐머맨의 집이 평생 내가 살았던 유일한 집이었어요. 진짜 집 말예요. 왜냐하면 난 그 집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그 집에서 보냈고 결혼해서도 거기서 살았거든요. 독일군이 들어와서 바르샤바로 가서 잠시 머무르기 전에 말예요. 난 그 집을 아주 좋아했어요. (P145)


네이선이 폴란드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거라곤 폴란드가 얼마나 반(反) 유대주의적으로 되어 가는지뿐이고, 그래서 그런 농담은 날 슬프게 해요. 사실이거든요. 폴란드는 반유대주의가 강한 것으로 유명하고, 그래서 여러 면에서 정말 부끄러워요. 스팅고, 당신처럼요. 남부 흑인들의 미제르(비참함) 때문에 부끄러워하는 당신처럼요. 하지만 난 네이선에게 말했죠. 맞다고. 폴란드의 유감스러운 역사에 대해선 그의 말이 맞다고. 하지만, 브래멍(정말), 폴란드 사람들이 모두 그런 건 아니라는 걸, 내 가족처럼 좋은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이죠..... 아, 이런 이야기하기 정말 끔찍하네요. 네이선에 대해서 자꾸 슬픈 생각이 들게 하거든요. 그는 집착이 심해요..... 아무래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P147-148)


소피의 선택 11.jpg

그해 여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녀도 내가 있었던 포로수용소에 있었는데, 자매 둘을 잃었다고 하더군요. 그녀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모르겠어요. 그곳에 많은 유대인들이,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했거든요. 하지만 어찌됐든 내가 살아남았듯이 그녀도 살아남았고, 이렇게 살아남은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녀는 독일어 외에도 영어를 아주 잘했고, 나는 미국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죠.

그녀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서, 매일 그곳에 있는 유대인 회당으로 가서 기도했어요. 자기는 아직도 하느님을 굳게 믿는다면서, 언젠가 한번은 자기가 자신의 하느님 즉 아브라함의 하느님을 믿듯이 나는 기독교의 하느님을 믿지 않느냐고 물었어요. 하느님이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자기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 때문에 더욱더 굳게 하느님을 믿게 됐다고도 하더군요. 나도 한때는 그리스도와 성모님을 믿었지만, 이 가혹한 세월이 흐른 뒤에는 하느님이 영원히 가버렸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대답했죠. 그리스도가 내게서 얼굴을 돌려 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예전에 크라쿠프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기도할 수는 없게 되었다고도 말해 줬어요. 기도를 할 수도, 울 수도 없게 되었다고요. 그리스도가 내게서 고개를 돌렸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그녀가 묻기에 그랬죠. 그냥 안다고. 동정심이 없고 나를 신경쓰지 않는 하느님만이, 그런 예수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 두고, 나로 하여금 그렇게 고통스러운 죄책감 속에서 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죽은 것도 끔찍했지만, 이 죄책감은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거든요. 옹 푀 수브리르(누구나 고통을 겪을 수 있어요). 하지만 너무도 고통스러워요. (P158-159)


소피의 선택 19.jpg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헨델의 레코드에 있는 <내 주는 살아 계시니>(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에 나오는 소프라노 아리아)라는 곳인데, 그것만 들으면 내 죄책감 때문에, 그리고 내 주는 살아 계시지 않고, 내 몸은 벌레들에게 파먹힐 것이고, 내 눈은 결코 다시는, 다시는 주를 보지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에, 자꾸만 눈물이나요....... (P160)


그녀는 뉴욕에 도착한 직후부터 줄곧 음식에 상당히 집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먹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난민 수용소에서 그녀를 돌봤던 스웨덴 적십자사 소속의 의사는 그녀의 영양실조가 너무도 심각해서 신진대사에 영구적인 해를 끼쳤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음식에 대한 유혹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음식, 특히 지방을 과도하게 급히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사실 덕분에 소피는 점심때쯤 플랫부시에 있는 멋진 조제 식품점들 중 한 군데에 들러 프로스펙트 파크 만찬을 위한 음식을 사는 일을 더욱더 재미있고 유쾌한 게임으로 여기게 되었다. 음식을 선택하는 일이 그녀에게는 굉장한 관능적인 기쁨을 주었다. 먹을 것이 너무도 다양하고 너무도 많아서 그녀는 매번 숨이 멎는 것 같았고, 기쁨으로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그 산재한, 상큼한 향이 나고 맛있어 보이는 풍요로운 음식들 중에서 먹을 것을 천천히 아주 신중히 고르곤 했다. (P165-166)


소피의 선택 24.jpg

“비르케나우의 독자스실이 아니라 아우슈비츠로 가게 되었어요. 일하기 적당한 나이인 데다 비교적 건강했기 때문이죠. 아우슈비츠에서 이십 개월을 있었어요. 내가 도착했을 무렵엔 죽음을 언도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비르케나우로 보내졌는데, 얼마 안 가서 그곳은 유대인들만 학살당하는 곳이 됐어요.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하는 곳 말이에요. 아우슈비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생테티크 카우추, 합성고무를 만드는 거대한 위진(공장)이 있었어요.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사람들은 거기서도 일을 하긴 했지만, 주요 임무는 비르케나우의 라 주이프(유대인)를 학살하는 걸 돕는 거였어요. 그래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주로 아리아인들이 수용됐는데, 그들은 비르케나우 화장장을 유지하는 일을 했죠. 유대인 학살을 돕는 일이요. 하지만 결국에는 그들도 모두 죽게 되어 있었어요. 기력이 다 빠지고 상테(건강)가 나빠져서 인위튈르(불필요한 존재들)가 되면, 그들도 죽임을 당했죠. 총살을 당하거나 비르케나우의 독가스실로 끌려가거나.” (P261)


시몬 베유(프랑스의 여성 철학자)는 이런 종류의 고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체적, 정신적 고통은 경멸감, 타인과 심지어 자기에 대한 혐오감, 그리고 죄책감을 인간의 영혼에 깊숙이 각인시킨다. 논리적으로 볼 때는 범죄가 그러해야겠지만 실제로는 고통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렇게 파괴적인 죄책감과 단순하지만 강한 동기에 의해 유발된 과묵함이 한데 어우러져 소피로 하여금 일부 사실에 대해서 침묵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소피는 대체로 지옥의 중심에 머물렀던 시간에 대해서는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비밀을 지키려고 했고, 그녀가 정말로 그것을 원한다면 이는 존중받아야 했다. (P264)

소피의 선택 26.jpg

사상 최악의 유대인 학살자로 여겨지는 저 아둔한 하인리히 히믈러도 양계장 주인이었다는 사실 정도만 덧붙여도 되겠다.

이 모든 사실이 특별히 놀랍거나 충격적이지 않은 것은 현대에는 군의 탓으로 돌려지는 죄악의 대부분이 사실은 민간인의 동의와 허락하에 자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헤스는 아우슈비츠로 부임하기 전에 군인으로 복무하기도 했고 농사도 지었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경우로 보인다. 여러 자료들은 그가 대단히 헌신적인 사람이었고, 그 엄격하고 완고한 정신 -모든 훌륭한 군인의 마음 속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투철한 의무감과 복종 정신- 이 씁쓸한 일이지만 그의 회고록에 설득력을 실어주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그 소름 끼치는 회고록을 읽는 사람들은 그가 독가스 살포나 화장 혹은 ‘선택’을 할 때 느끼는 불안감이나 심지어 감정의 부침을 토로할 때 그것을 진심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범죄를 자행하면서도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음울한 의혹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그의 말을 믿게 된다. (P272-273)


열한 살의 장로교인인 내게 신비하게 느껴졌던 유대인의 모습은 밤이 내리고 가정으로 돌아갔을 때 그 격리된 공간에서 행하는 그들의 불길하고도 신비주의적인 종교 관행이었다. 자욱한 향내와 숫양의 뿔, 희생의 제물을 바치는 예배, 탬버린, 베일로 얼굴을 가린 여자들, 사어(死語)로 부르는 애처롭고 기괴한 곡소리 같은 찬송가 말이다.

그때는 너무 어리고 무지해서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는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그 기괴하고도 지금은 분명해 보이는 역설을 알아차릴 수도 없었다. (P292)

소피의 선택 27.jpg

그날 저녁 <뉴욕 포스트> 3면에 악명 높은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선동가인 시어도어 길모어 빌보라는 미시시피 주 상원 의원에 대한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었다. 빌보 - 전쟁 중과 그 후 몇 년 동안 그의 얼굴과 말이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했었다 - 가 구강암 수술을 받기 위해 뉴올리언스 오시너 병원에 입원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읽어보니 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았다. 사진 속 그의 모습은 벌써 송장 같았다. 엄청난 아이러니였다. 공적인 자리에서 ‘깜둥이’, “깜둥이 새끼‘라는 말을 거침없이 사용해 남부를 비롯한 전국의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의 그 상징적인 신체 조직이 암에 걸리다니 말이다. 라 구아디아 뉴욕 시장을 ’이탈리아 놈‘이라 칭했고 유대인 하원 의원을 ’친애하는 유대인‘이라고 불렀던 폭군이 입에 암이 걸려서 그 거친 주둥이와 사악한 혀가 곧 조용히 쉬게 될 거라니, 참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일이었고, <뉴욕 포스트>도 이런 사실에 주목한 것이 분명했다. 기사를 읽은 나는 그 늙은 악마가 곧 사라진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현대 남부의 이미지에 먹칠을 한 사람들 중에서 그가 제일 악질이었는데, 그건 그가 전형적인 남부 정치인이어서가 아니라, 그 거친 입과 유명세 덕분에 귀가 얇은 사람들이 그를 남부 정치인의 대표격으로 여겼고 따라서 얼마 전 바비 위드를 살해한 인간 말종들과 마찬가지로 남부가 가진 선하고 점잖고 모범적인 모든 것에 먹칠을 했기 때문이다. ’곧 사라진다니 잘됐어, 이 사악한 범죄자.‘ 나는 다시 혼잣말을 했다. (P339-340)


"맞아요. 내 아버지처럼 목숨 걸고 유대인들을 구한 사람은 죽고, 유대인들을 죽인 사람들은, 그렇게나 많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사실은 정말 대단한 아이러니 아닌가요?“ (P355)


소피의 선택 29.jpg

'뤼니베르 콩상트라시오네르(수용소 세계)‘에서 많은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나 자신을 고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조지 스타이너의 글을 읽으면서 깨달음의 충격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동안 이에 대해 많은 글을 쓰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 중의 하나는 시간 관계다.” 스타이너의 글이다. 죽음의 수용소 트레블링카에서 끔찍하게 학살 된 두 명의 유대인들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메링과 랭그너가 죽어 가고 있던 바로 그 시각, 다른 수많은 사람들은 수용소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폴란드의 어느 농장에서, 혹은 8000킬로미터 떨어진 뉴욕에서, 잠을 자거나 음식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사랑을 나누거나 치과 치료를 기다리며 걱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내 상상력은 멈춰 버리고 만다. 동시에 일어나는 일들이 어떤 보편적인 인간 가치에 비추어 보더라도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도 달라서, 그리고 그런 판이한 성격의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사실이 너무도 끔찍한 모순처럼 느껴져서 - 누군가가 트레블링카를 세웠고 다른 누군가는 이 시설이 존재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지 않았는가 - 시간이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나는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공상과학 소설이나 그노시스파(영적 인식을 중시하는 초기 기독교 시대의 신비주의 교파)의 추론이 암시하듯, 이 세상에는 다른 두 종류의 시간이, ‘선한 시간’과 인간을 생지옥의 손아귀로 몰아넣는 ‘비인간적인 시간’이 존재한단 말인가?” (P386-387)


생존자인 엘리 비젤은 이렇게 썼다. “소설가들은 홀로코스트를 자유롭게 자기 작품 속에서 이용해 왔다......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그것을 값싼 주제로 전락시켰고, 중요한 본질을 빼버리거나 왜곡했다. 홀로코스트는 이제 엄청난 주목과 즉각적인 성공을 보장하는 주제가 되어 작가들이 유행처럼 너도나도 이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말이 어디까지 타당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비칠 위험이 있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침묵이 최선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쓸데없는 문학적, 사회학적 논쟁에는 덤비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스타이너의 말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또한 “어떤 현실에 있어서는 문학은 별 의미가 없거나 관련이 없다.”는 생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문학의 신성함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특히 스타이너 자신의 침묵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P390)


소피의 선택 28.jpg

[2]

선택된 민족. 그의 표현을 들으니 미약하지만 분명히 나타나기 시작한 장벽의 틈새를 좀 더 벌려 볼 용기가 생겼다. “다스 에어 벨테 폴크......” 사령관의 말을 따라 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경멸이 배어 있었다. “이런 말씀을 드려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각하, 그 선택된 민족은 오만하게도 자기들을 인류의 나머지와 차별화한 것에 대해서, 자기들만이 구원받을 가치가 있는 민족이라고 자부한 것에 대해서 드디어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토록 오랫동안 그토록 뻔뻔스럽게 신을 모독하는 행동을 자행해 놓고 이제 와서 그 보복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아버지의 모습이, 그 괴물 같은 모습이 떠올랐다) 불안한 마음에 잠시 말을 멈췄던 그녀는 거세게 흐르는 거짓의 강 위를 까닥거리며 흘러가는 나뭇조각 같은 또 다른 거짓말 하나를 보탰다. “저는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각하처럼 저도, 핑계와 얼버무림으로 소일하는 그 한심한 신앙을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왜 유대인들이 각하처럼 -오늘 아침에 말씀하신 고트글로이비거(유신론자) 말입니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질서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서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에게서조차 그런 증오를 받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세계의 질서를 위협해 왔고, 지금에 와서야 마침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제거하는 것이 백번 지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P48-49)


나치의 정책들 중 덜 알려졌지만 사악하기로는 더 심한 것 중 하나로 레벤스보른이라는 정책을 꼽을 수 있다. 나치의 광적인 종족 우월주의와 종족 번식욕의 산물인 레벤스보른(말 그대로 ‘생명의 원천’이란 뜻이다)은 우선 체계화된 출산 장려 정책을 통해, 그 다음에는 점령국에서 인종적으로 ‘적당한’ 아이들을 조직적으로 유괴함으로써, 신질서에 속하는 우수 인종을 확산시킨다는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이렇게 유괴한 아이들은 본국으로 이송, 총통에게 충성하는 가정에 입양시켜, 철저한 국가사회주의 환경에서 길렀다. 이 아이들은 이론상으로는 순수 독일 혈통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 어린 희생자들 중 상당수가 폴란드인이었다는 사실은 인종 문제에서 나치가 흔히 보여 주었던 냉소적인 편의주의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폴란드인은 열등한 민족으로, 다른 슬라브계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유대인 다음으로 대량 학살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고 간주되었지만, 이들은 또한 게르만 민족과 유사한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얼굴 모양이 게르만 민족의 그것과 상당히 비슷했고, 게다가 밝은 금발이기도 해서 다른 어떤 민족보다 나치의 미적 감각을 만족시켜 주었다.

레벤스보른은 나치가 의도했던 것만큼 전면적으로 실시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기는 했다. 부모의 품에서 빼앗아 온 아이들이 바르샤바에서만 수만 명에 이르렀고, 이들 중 압도적인 다수는 -이들은 카를이나 리셀, 하인리히, 트루디라는 새 이름을 받아 제국의 품에 안겼다- 다시는 친부모와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1차 검사에는 통과했지만 더 엄격한 2차 인종 요건 검사에서 불합격한 수많은 아이들은 대량으로 학살되었다. (그중 일부는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되었다) 이 정책은 히틀러의 잔혹한 정책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비밀리에 수행되었지만, 이런 사악한 범죄가 완전한 어둠 속에서 실시될 수는 없었다. (P94-95)

소피의 선택 25.jpg

그때 갑자기 그가 폴란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는 전쟁 중에 일부 유대인들이 폴란드에 있는 강제 수용소에서 도망쳐 나와 폴란드 사람들한테 숨겨 달라고 간청했지만 폴란드 사람들은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 도와주지 않았다는 증언이 뉘른베르크인지 어디 다른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범 재판에서 나왔다고 말했어요. 폴란드 사람들은 그 끔찍한 일을 했다고도 말했어요. 그런 유대인들을 모두 죽였다고요. 폴란드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모두 죽였다는 거예요. 쇼엔탈은 계속 말했어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사실이라고, 그리고 이것이 유대인은 어디에서도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고요. ‘어디에서도’라는 말을 할 때는 거의 절규하는 것 같았어요. 심지어 미국에서도 안전할 수 없다고 했어요! 몽 디외!(맙소사!) 분노에 찬 그의 표정이 기억에 생생해요. 그가 특별히 나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그가 폴란드에 대해서 말할 때는 정신이 더 아득해지면서 다 토할 것 같고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어요. 그는 어쩌면 폴란드가 독일보다 더 나쁠지도 모른다고, 적어도 독일만큼은 나쁘다고 말했어요. 유대인을 보호하던 필수트스키가 죽자마자 유대인을 박해하기 시작한 곳이 폴란드가 아니었냐면서요. (P143)

몇 분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한 말은 모두 사실임이 분명했고, 나는 우울한 기본에 사로잡혔다. 그런 기분이 든 것은 양심에 거리꼈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의 이성적인 부분은 나와 요제프를 다른 상황으로 몰아넣은 세계적인 사건들에 대해서 나 자신을 비난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내게 일어난 일을 부끄러워하며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요제프와 소피와 반다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지옥에서 고통 받는 동안 스팅고는 무얼 하고 있었나? 글렌 밀러의 음악을 듣고, 맥주를 퍼마시고, 술집에서 법석을 떨고, 자위나 하면서 보내지 않았던가? 이 얼마나 불공평한 세상인가! 끝도 없이 계속되는 것 같은 침묵이 흘렀다. (P195)

소피의 선택 03.jpg

반다가 말했다. “살다보면 모두가 발 벗고 나서야 할 때가 있어. 내가 당신을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으로 생각하는지는 당신도 잘 알거야. 그리고 요제프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거고!” 반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소피의 아픈 곳을 마구 찔러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우리를 이런 식으로 대접해서는 안 돼. 책임을 져야 돼. 조지아, 이제 더 이상 살살 피해 다닐 수 없게 된 때가 온 거야. 선택을 해야 돼!” (P223)

나치의 새로운 정책으로 인해 그녀가 유대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처럼 낙인 찍힌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했을 것이다. 상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소피를 비롯한 비유대인들은 분류 과정에서 즉각적인 가스실행을 면제받았다. 이때 행정적인 편의를 위해 새로운 문신제도가 등장한다. 아리아계 포로들에게 문신을 실시하는 정책은 3월 후반에 가서야 도입되었고, 소피는 그 정책하에 문신이 새겨진 최초의 비유대인들 중 한명이었다. 처음에는 당혹스럽게 느껴질지 몰라도 새 정책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것은 죽음의 발전기를 돌리는 일과 관련이 있었다. ‘최종 해법’이 수립되고 만족스러울 만큼 많은 유대인들이 새 가스실로 향하도록 결정된 상태에선 더 이상 그들의 숫자를 셀 필요가 없었다. 유대인은 한 명도 예외 없이 죽이라는 히믈러의 명령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이제 유대인이 사라진 수용소에서는 아리아인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신원 파악을 위해 그들에게 문신이 새겨졌으며, 그들은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다가 천천히 죽어가는 운명을 맞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소피의 팔에도 문신이 새겨진 것이다. (P234)


“자네와 함께 갈게, 친구.” 네이선이 내 뒤 의자에 앉아서 말했다. “남부에 가 볼 때가 된 것 같아. 지난 초여름에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군- 자네가 남부에 대해서 한 말이 잊히지 않고 자꾸만 생각났어. 북부와 남부에 대해서 한 말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군. 우리는 종종 그랬듯이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자네가 이런 말을 했던 게 기억나. 적어도 남부 사람들은 북부에 와서 어떤지 보기라도 하는데, 북부 사람들 중에는 남부에 와서 어떤지 보는 수고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야. 제멋대로고 독선적인 무지에 사로잡혀 있는 북부 사람들이 참 오만해 보인다고도 했지. 북부 사람들이 지적인 오만에 사로잡혀 있다고도 했어. 자네가 사용한 단어들이 그때는 지나치게 과장되고 강한 표현이다 싶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자네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열정적인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나 자신도 오만했다는 생각이 들어.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알지도 못하는 곳을 어떻게 혐오한다고 말할 수 있겠나? 자네와 함께 갈게. 우리 같이 가자고!”

“고마워요, 네이선.” 나는 갑자기 샘솟는 애정을 느끼면 대답했다. (P307-308)


소피의 선택 09.jpg

“냇 터너!” 내가 말했다.

“냇 터너?” 네이선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도대체 냇 터너가 누구야?”

“냇 터너는 1831년 육십 명 정도의 백인을 죽인 흑인 노예였어요. 참고로 그에게 살해당한 백인들 중에 유대인은 없었어요. 그는 제임스 강 가에 있는 내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어요. 그가 유혈 폭동을 주도했던 지역의 한중간에 아버지의 농장이 있어요.” 나는 네이선에게 이 비범한 흑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정보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이 삶과 행적은 두꺼운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P310)


소피는 두려움에 목이 콱 막힌 것 같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이든 하려고 하는 찰나에 군의관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하나만 데리고 있어.”

“비테?(뭐라고요?)” 소피가 말했다.

“네 아이들 중에 하나만 살려 줄 수 있다고” 그가 다시 말했다. “다른 아이는 가야 하고, 누구를 데리고 있겠나?”

“제가 선택을 해야 한단 말인가요?”

“넌 유대인이 아니라 폴란드인이라며, 그래서 특별히 봐주는 거야. 하나라도 선택할 수 있게.”

사고 과정이 점점 더 느려진다 싶더니 딱 멈춰 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곧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럴 수는 없어요! 선택할 수 없어요!” 그녀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그녀는 자신이 지른 비명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천사들도 이렇게 큰 소리로 절규하진 못했을 것이다. “이히 칸 니히트 벨렌!(저는 선택할 수 없어요!)” 그녀가 외쳤다.

군의관은 바라지 않은 이목이 자신에게로 쏠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닥쳐!” 그가 명령했다. “지금 당장 선택해, 알았어? 안 그러면 아이들 둘 다 보내 버릴 거야. 빨리!” (P423-424)


소피의 선택 22.jpg

“제게 선택하라고 하지 말아 주세요” 그녀가 목쉰 소리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선택할 수 없어요.”

“그러면 둘 다 보내 버려.” 군의관이 부관에게 말했다. “나흐링크스(왼쪽으로)”

“엄마!” 소피가 에바를 밀쳐 내고 비틀거리며 콘크리트 바닥에서 일어나자 에바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울어 댔다. “이 아이를 데려가세요!” 소피가 외쳤다. “내 딸을 데려가요!”

그러자 부관은 -그녀가 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잊을수 없었던 그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태도로- 에바의 손을 잡아끌고는 죽음을 언도받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아이는 끌려가면서 계속 비명을 지르며 울었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소피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짠 눈물에 눈이 완전히 가려져 에바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보지 못했고, 항상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았다. 만약 그 표정을 보았더라면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미쳐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안 그래도 사라져 가는 그 조그만 몸뚱이를 마지막으로 흘끗 바라본 것이 영원히 기억 속에 각인되어 시시때때로 그녀를 고문하고 있는데 말이다. (P425)


언젠가 아우슈비츠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용감하지만 터무니없는 문장이었다. 어느 누구도 아우슈비츠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렇게 썼어야 옳았다. 언젠가 소피의 삶과 죽음에 대해 글을 쓸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절대 악이 결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줄 것이다. 아우슈비츠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곳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제까지 아우슈비츠에 대해 나온 설명 중 가장 진리에 근접한 것은 단정 짓는 문장이 아니라 되물음이었다.

질문: “아우슈비츠에서, 신은 어디 있었는가?”

대답: “인간은 어디 있었는가?”

무(無)에서 부활시킨 두 번째 문장은 다소 단순하고 진부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다. 그대의 사랑이 살아있는 모든 것에 흘러넘치게 하라. 어떻게 보면 설교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단어들이 모여 이루어 낸 너무도 아름다운 문장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그 말이 적힌 노트를,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산화되어 마른 수선화처럼 노랗게 빛이 바래고 있는 그 페이지를 들여다보니 화가 난 듯 사납게 밑줄을 친 것이 눈에 들어온다. (P474)


소피의 선택 04.jpg


keyword
이전 09화에릭 재거의 <라스트 듀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