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 2005년

by 노용헌

데이비드 린 감독 올리버 트위스트(1948), 올리버 트위스트(1997), 올리버 트위스트(1974), 올리버 트위스트(1982), 올리버 트위스트(1922), 올리버 트위스트(1933), 캐럴 리드 뮤지컬 원작 영화 올리버!(1968)


올리버 트위스트 02.jpg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는 큰 줄거리에 다소 각색이 가해졌는데, 올리버의 출생의 비밀과 관련된 대목, 예를 들어 브라운로와 올리버 아버지의 친분이나 몽크스 등과 관련된 언급이 빠졌고, 교수형 집행을 앞둔 페이긴이 올리버에게 귀띔하는 재산 은닉처도 빼돌린 올리버의 유산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올리버에게 자기 사유 재산을 유산으로 넘겨주는 것처럼 표현했다.

올리버 트위스트 13.jpg

[1]

맨 부인은 놀랍다는 듯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문득 생각난 듯이 잠시 후 덧붙여 말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그 애 이름을 지어 준 거지요?”

하급 관리는 몸을 반듯이 세우며 아주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내가 지어 줬소.”

“당신이라고요, 범블 씨!”

“그렇소, 맨 부인. 우린 주워 온 아이들에게 알파벳 순서대로 이름을 지어 주오. 이 애 직전 아이가 S 자라서 스워블이라고 이름을 지었소. 그러니 다음은 T자, 따라서 트위스트라고 그 애 이름을 지어 준 거요. 다음에 오는 아이는 U자인 언윈이 되고, 그 다음은 V자인 빌킨스가 될 거요. 이런 식으로 난 알파벳 끝까지 이름을 다 준비해 놓았다오. 그러다가 Z까지 가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요.”

“어머나, 당신은 정말 문학적 소양이 풍부하신 분이군요, 범블 씨!” 맨 부인은 말했다. (P31)


음식물이 배 속에서 쓰디쓴 독으로 바뀌고 피는 얼음처럼 차갑고 심장은 쇳덩어리인 어떤 살찐 철학자님께서 개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이 산해진미 요리를 올리버 트위스트가 허겁지겁 집어삼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굶주림의 화신처럼 사납게 달려들어 음식 쪼가리를 정신없이 뜯어 먹는 올리버의 이 끔찍한 식욕을 그 철학자님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보다 더 보고 싶은 것이 딱 하나 있는데,m 그것은 바로 이 철학자님이 이와 똑같은 종류의 식사를 올리버와 똑같이 맛있게 먹어 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P70)

올리버 트위스트 14.jpg

그가 여러 달 동안 노어 클레이폴의 지배와 학대를 온순하게 계속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노어는 처음보다 훨씬 심하게 올리버를 못살게 굴었는데, 그것은 고참인 자기는 자선 학교의 납작모자와 가죽 바지 차림 그대로 머물러 있는 반면 신참인 올리버는 승진해서 검정 지팡이에 상장이 달린 모자까지 쓰고 다니는 것에 질투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그런 노어를 따라 샬럿도 올리버를 학대했다. 싸워베리 부인 또한 올리버의 확고부동한 원수였으니, 단지 싸워베리 씨가 올리버에게 잘 대해 주는 경향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편으로 세 사람에게 시달리고 다른 한편으로 장례식이 넘쳐 나는 사이에서 올리버는 어쩌다 착오로 양조장의 곡식 창고에 갇히게 된 굶주린 돼지 같은 그런 안락한 처지는 전혀 아니었다. (P90-91)


“진짜로 완전히 글러 먹은 여자라고 했다. 왜, 구빈원.” 노어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래서 말이다. 구빈원. 네 엄만 그때 그렇게 죽어 버린 게 잘돼도 한참 잘된 거였어. 그렇잖았음 감옥이나 수용소에서 중노동을 하거나 유배를 가거나 교수형을 당했을 거라구. 아마 그중에서도 교수형을 당했을 가능성이 제일 클걸, 안 그래?”

올리버는 분노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의자와 식탁을 뒤엎으며 노어에게 달려들어 목을 콱 움켜쥐고 노어의 이빨이 딸그락대며 부딪칠 정도로 격렬하고 난폭하게 잡아 흔들더니 온 힘을 다해 강력한 주먹을 날려 노어를 바닥에 눕혀 버렸다.

일 분 전까지만 해도 이 아이는 그동안 받은 모진 학대의 결과로 조용하고 온순하며 맥없어 보였다. 하지만 마침내 자극을 받아 성질이 폭발했다. 죽은 어머니에 대한 잔인한 모욕이 피를 끓어오르게 했던 것이다. (P94)

올리버 트위스트 07.jpg

긴 구의용 포크를 손에 든 주름살투성이 유태인 노인이 그것을 굽어보며 서 있었는데 악당처럼 보이는 그의 혐오스러운 얼굴은 마구 뒤엉킨 텁수룩한 붉은 수염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는 목에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채 기름때가 묻은 플란넬 가운을 걸쳤으며, 프라이팬 말고 굉장히 많은 비단 손수건이 걸린 빨래걸이에도 똑같이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였다. 낡은 곡식 자루로 아무렇게나 만든 침대 몇 개가 바닥 한쪽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탁자 주위에는 꾀돌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들 너댓 명이 둘러앉아 기다란 사기 담뱃대를 뻐끔거리며 중년 남자들 같은 모습으로 독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동료인 꾀돌이가 유태인 노인에게 뭐라고 속삭이는 주변으로 모두 몰려들더니 고개를 돌려 올리버를 쳐다보며 히죽이죽 웃었다. 유태인 역시 손에 포크를 든 채 그렇게 웃어 댔다.

“얘가 바로 그 애에요. 페이긴.” 잭 도킨스가 말했다. “올리버 트위스트라고 해요.” (P123)

올리버 트위스트 15.jpg

“저 아이 얼굴에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노신사는 천천히 걸어 나가면서 생각에 잠겨 책 겉표지로 턱을 톡톡 두드리며 혼자 중얼거렸다. “뭔가 내 마음을 끌고 관심을 일으키는 게 있는 듯싶은데, 정말 저 애가 한 짓일까? 그런 애같이 보이지 않았어. 그런데 정말이지 이거!” 노신사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저런 비슷한 표정을 예전에 대체 어디서 봤지?”

몇 분 동안 곰곰 생각해 보던 노신사는 여전히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한 채 다시 걸음을 옮겨 마당과 통하는 건물 안쪽 대기실로 갔다. 그러곤 방 한구석으로 가서 여러 해 동안 어두운 기억의 장막에 덮여 있던 수많은 얼굴들을 마음속에 차례로 떠올려 보았다. “아니야.” 노신사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상상 속의 착각임에 틀림없어.”

그는 다시 기억을 이리저리 더듬어 보았다. 이런저런 얼굴을 눈앞에 떠올려 보려 했으나 그토록 오랫동안 드리워져 있던 장막을 치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친구와 적의 얼굴이 있었고,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제멋대로 얼굴을 들이미는 낯선 사람 같은 수많은 얼굴들이 있었다. 이제는 노파가 되었을 젊고 꽃다운 아가씨들의 얼굴이 있었고, 무덤 속에서 소름 끼치는 죽음의 전리품으로 변해 버린 지 이미 오래인 얼굴들도 있었다. 하지만 죽음의 지배를 뛰어넘는 인간의 마음은 그 얼굴들을 예전의 싱싱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살려 반짝이는 눈망울과 환한 미소, 육체의 외피를 뚫고 드러나는 눈부신 영혼의 빛을 다시 불러온다. 그리하여 무덤을 넘어 속삭이는 아름다움을, 즉 죽어 사라졌지만 더욱 강렬하게 기억되며, 이 지상에서 불려 갔지만 하늘의 빛이 되어 천국으로 가는 길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비춰 주는 그 아름다움을 다시 떠올린다.

그러나 노신사는 올리버와 얼굴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을 아무도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까지 회상했던 얼굴들에 대해 한숨을 한 번 푹 내쉬었다. 다행스럽게도 쉽게 정신이 팔리는 노인이었던지라 그는 들고 있던 낡은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그 속에 파묻혀 지난 기억들을 다시 잊어버렸다. (P148-149)


올리버 트위스트 16.jpg

“아마 보고 계실 거예요.” 올리버가 두 손을 모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엄만 제 곁에 죽 앉아 계셨을 거예요. 전 거의 그렇게 느껴져요.”

“그건 열 때문일 거야, 아가.” 노부인이 상냥하게 말했다.

“아마 그렇겠죠.” 올리버가 대답했다. “하늘나라는 아주 먼 곳에 있고, 또 거긴 매우 행복한 곳이니, 저같이 불쌍한 애의 침대 곁으로 내려오는 일은 없겠죠. 그래도 제가 아픈 걸 아신다면 엄만 분명 하늘나라에서라도 절 가엾게 여기실 거예요. 엄마도 돌아가시기 전에 몹시 아프셨거든요. 하지만 엄만 제 일을 전혀 모르고 계실 거예요.” 올리버는 잠시 침묵하더니 덧붙이며 말했다. “제가 다쳐서 아픈 걸 보셨다면 엄만 몹시 슬퍼하셨을 거예요. 꿈속에서 만날 때면 엄마는 언제나 다정하고 행복한 얼굴이었어요.” (P161)


“그 책들은 노신사분의 것이에요.” 올리버는 두 손을 비틀며 말했다. “열병으로 거의 죽어 가는 나를 집으로 데려가서 보살펴 주신 선하고 친절하신 노신사분의 것이라고요. 아, 제발 그것들을 돌려보내 주세요. 책과 돈은 그분께 돌려보내 주세요. 저를 평생 여기에 잡아 두셔도 좋으니 제발, 제발 그것들만은 돌려보내 주세요. 그분은 내가 그것들을 갖고 도망갔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 할머니랑, 나한테 정말 잘 대해 주신 모든 분들이 내가 그것들을 갖고 도망갔다고 생각할 거예요. 아, 제발 절 불쌍히 여겨서 그것들만은 돌려보내 주세요!”

강렬한 비탄이 자아내는 모든 힘을 다해 올리버는 이렇게 말하며 유태인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곤 필사적으로 두 손을 비비며 호소했다. (P228)

올리버 트위스트 08.jpg

이런 전환들은 일견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들은 처음 생각만큼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것들이 아니다. 실제 인생에서도 떡 벌어지게 차려 놓은 식탁에서 임종의 자리로 옮겨 가거나 눈물 젖은 상복에서 휴일의 화려한 나들이 옷으로 바꿔 입는 것 같은 놀라운 일들이 조금도 다르지 않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 우리는 수동적인 구경꾼이 아니라 배우로 직접 참여하고, 여기에서 커다란 차이가 생길 뿐이다. 인생이라는 극장에서 배우로 연기할 때 우리는 상황의 급격한 전환이나 정열과 감정의 갑작스러운 분출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저 구경하는 관객으로 바라볼 때는 그것들을 터무니없고 해괴하다고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 (P238)

올리버 트위스트 17.jpg

아아! 자연에게서 부여받은 얼굴이 그대로 남아 그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드문가? 인간의 얼굴은 마음이 그러듯이 세상의 근심과 슬픔과 갈망들로 인해 완전히 변해 버리고 만다. 오직 이런 번뇌의 감정들이 모두 사그라들 때만, 그래서 우리를 움켜쥔 손이 영원히 풀릴 때만 근심의 구름은 사라져 없어지고 맑게 갠 마음의 하늘이 드러난다. 죽은 사람들의 얼굴이 죽음으로 뻣뻣하게 굳은 상태에서조차 오랫동안 잊었던 잠자는 아기의 표정으로 점점 잦아들어 마침내 인생 초기의 본연의 표정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들이 얼마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얼굴로 바뀌는지 행복한 어린 시절에 그들을 알았던 사람들은 경외심을 느끼며 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지상에 나타난 천사의 모습을 보게 된다. (P336-337)


“그래, 그래!” 죽어 가는 여자에게서 점점 더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말들을 놓치지 않고 알아듣기 위해 간호부장은 고개를 기울이며 대답했다. “어서 빨리 말해, 너무 늦기 전에!”

“애 엄마는.” 여자는 아까보다 더 격렬하게 안간힘을 쓰며 말했다. “애 엄마는, 닥쳐오는 죽음의 고통을 처음 느꼈을 때,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이며 말했어, 만약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서 죽지 않고 잘 자라면 언젠가는 불쌍한 자기 엄마 이름을 듣고 그다지 부끄럽게 느끼지 않을 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그러니 오, 하느님!’ 그녀는 야윈 두 손을 꼭 모으고 말했어. ‘아기가 아들이든 딸이든 이 험난한 세상에서 아기를 도와줄 친구들을 만나게 해 주소서, 세상에 홀로 남겨질 외롭고 쓸쓸한 아이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말이야.”

“그 애 이름이 뭐야?” 간호부장이 다그쳤다.

“교구에서 지어 준 이름은 올리버였어.” 여자는 희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훔친 금은.......” (P344)


“놈들이 쏜 총에 애가 맞았소. 우린 애를 사이에 끼고는 집 뒤쪽 들판으로 튀었소. 울타리와 도랑을 지나 쏜살같이 곧장 내달렸소. 놈들이 추격을 해 왔소. 젠장! 온 마을 사람들이 깨어났고 개들이 우릴 뒤쫓았소.”

“아이는?”

“빌이 먼저 그 앨 등에 업고 바람처럼 내달았소. 그러다 멈춰서 나와 함께 애를 양쪽으로 끼었는데, 애는 머리가 축 늘어지고 몸이 차갑게 식어 있었소. 놈들이 우리 뒤를 바짝 따라붙었고, 교수대행이 안 되려면 각자 알아서 튀어라! 하는 판국이었소. 우린 꼬맹이 녀석을 도랑에 내버려 둔 채 찢어져서 달아났소. 그 애가 살았든 죽었든 내가 아는 건 그게 전부요.”

유태인은 더 이상 이야기를 듣지 않고 크게 비명을 지르더니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쥐어뜯으며 방에서 뛰쳐나가 집 밖으로 달려 나갔다. (P356)

올리버 트위스트 18.jpg

[2]

“설령 저 애가 나쁜 아이라고 해도 말이에요.” 로즈가 말을 계속했다. “저 애가 얼마나 어린지 생각해 보세요. 저 애가 엄마의 사랑이나 가정의 행복을 전혀 몰랐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학대받거나 두드려 맞아서, 또는 굶주림 때문에 나쁜 사람들과 한패가 되어 그들의 강요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잖아요. 숙모님, 다정한 숙모님, 제발 그런 것들을 생각해 주세요. 불쌍한 아이가 감옥에 끌려가도록 하시기 전에 말이에요. 감옥에 가면 저 애는 틀림없이 올바르게 될 모든 가능성을 잃어버리고 말 거예요. 아! 절 사랑해 주시는 숙모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저는 숙모님의 친절함과 다정함 속에서 부모님이 안 계신 걸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하지만 숙모님이 안 계셨다면 저 역시 혼자 버려져 이 불쌍한 아이처럼 의지하거나 보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거예요. 그러니 숙모님, 아이에게 동정을 베풀어 주세요. 너무 늦기 전에 말이에요!” (P18-19)


메일리 부인이 올리버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넌 아이답게 생각하는구나, 불쌍한 것, 하지만 넌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내가 잠시 그걸 잊고 있었구나. 올리버. 하지만 내가 그러는 것도 무리가 아니란다. 왜냐면 난 나이를 많이 먹어서 질병과 죽음을 충분히 봐온지라 질병과 죽음이 뒤에 남은 사람들에게 안겨 주는 고통을 잘 알거든. 난 또 살 만큼 살아서 가장 젊고 선한 사람들조차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일찍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단다. 하지만 이것은 슬픔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위안을 주기도 하지. 하느님은 공정하신 분이거든. 그리고 이런 일들은 이 세상보다 더 밝고 좋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길이 아주 빠르다는 것을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가르쳐 준단다.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난 그 애를 사랑한단다. 내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아실 거야!” (P66)


아! 우리가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사의 기로에서 떠는 동안 속수무책으로 곁에 서 있어야 하는 불안감이란, 그 두렵고 극심한 불안감이란! 아! 마음속으로 마구 밀려와 강력한 이미지를 눈앞에 불러일으켜 가슴을 격렬히 뛰게 하고 숨을 가쁘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생각들이란! 고통과 위험을 누그러뜨리거나 줄여 주기 위해 뭔가를 하고 싶은 뜨거운 갈망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해 줄 힘이 없다는 절망감이란! 우리의 무력함에 대한 슬픈 자각이 낳는 영혼과 정신의 좌절감이란! 어떤 고문이 이런 것들고 필적할 수 있을 것이며, 심경이 극도로 고조되고 달아오른 그 순간 어떤 생각과 노력들이 이런 것들을 완화할 수 있겠는가! (P71-72)


올리버 트위스트 19.jpg

“나도 그럴 거라고 짐작은 했어요. 얼마 전쯤인데, 올리버가 강도질을 하도록 당신 집에 강제로 밀어 넣어진 그날 밤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그 사람이 좀 의심스러워서 그 사람과 페이긴이 어둠 속에서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는데, 멍크스가......... 내가 당신한테 물었던 그 사람 말이에요........”

“네” 로즈가 말했다. “알아요.”

“그 멍크스가......” 여자가 말을 계속 했다. “우리가 올리버를 처음 잃어버린 날 우리네 아이들 두 명과 함께 있는 올리버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그 즉시 올리버가 바로 자기가 찾던 애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거예요. 왜 올리버를 찾고 있었는지는 듣지 못했지만요. 그는 페이긴과 계약을 맺었는데, 올리버를 다시 찾아오면 일정 금액을 주고, 올리버를 도둑으로 만들면 더 많은 금액을 주겠다고 했어요. 이 멍크스는 뭔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걸 바라는 것 같았어요.”

“무슨 목적일까요?” 로즈가 물었다.

“내가 그걸 알아낼 생각으로 귀를 바짝 기울였을 때 벽에 비친 내 그림자를 그가 봤어요.” 여자가 말했다. “그때 들키지 않고 제때 몸을 피해 달아날 수 있었을 사람은 나 말고는 별로 없을 거예요. 나는 용케 잘 피했고, 어젯밤까지는 그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요, 어젯밤 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야기해 주지요, 아가씨. 어젯밤에 그가 다시 왔어요. 두 사람은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고, 나는 내 그림자의 모습이 나와 다르게 보이도록 몸을 감싼 뒤 문 앞에 가서 다시 엿들었어요. 내가 들은 멍크스의 첫마디는 이거였어요. ‘그렇게 해서 그 애의 신원을 밝혀 줄 유일한 증거물은 강바닥에 가라앉았고, 그 어미한테서 그것들을 받은 할망구는 관 속에서 썩고 있다 이거요’ 그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가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이야기했어요. 멍크스는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몹시 흥분하면서, 이제 그 어린 악마 녀석의 돈을 안전하게 차지하게 되었지만 다른 방식이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말했어요. 아이를 몰아대서 도시에 있는 모든 감옥을 거치게 하고, 그를 이용해 큰 수입을 벌어들이고 난 뒤에 페이긴이 쉽게 꾸며 낼 수 있는 어떤 죽을죄를 짓게 해서 교수대에 매달리게 만들면 아비의 유언에 있는 오만한 허세를 뭉게 버리고 얼마나 신나는 일이었겠냐면서 말이에요.”

“이게 다 무슨 이야기지요!” 로즈가 말했다. (P186-187)


“이런 이유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멍크스라는 사람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이 비밀의 진상을 밝히는 데 극도로 어려움을 겪을 게 아주 분명합니다. 그를 굴복시키는 일은 오직 술책을 통해서만, 그리고 그가 강도들한테 둘러싸여 있지 않을 때 붙잡아야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경찰을 시켜 그를 체포해봤자 우리에겐 그에게 불리한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는 (우리가 아는 한, 또는 현재 드러난 사실로 보건대) 강도질에도 전혀 연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가 무죄로 석방되지 않는다 해도 부랑자나 떠돌이로 감옥에 구금되는 것 이상의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합니다. 물론 그 이후로 그의 입은 아주 완강히 닫혀 있을 게 뻔하고, 그럼 우리의 목적과 관련해 그는 귀머거리에 벙어리, 장님에 천치인 것보다 못한 존재가 될 겁니다.” (P207)


올리버 트위스트 20.jpg

“난 동생 같은 건 없어요.” 멍크스가 대답했다. “내가 외아들이라는 건 당신도 잘 알잖아요. 왜 나한테 동생 이야길 하는거죠? 나만큼이나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요.”

“난 알지만 자넨 모를 수도 있는 걸 내가 말해 줄 테니 잘 듣게.” 브라운로 씨가 말했다. “자넨 곧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될 걸세. 나는 자네가 가문의 자존심과 가장 천박하고 편협한 야망에 의해 어린 소년에 불과한 자네의 불쌍한 부친에게 강요된 불행한 결혼의 유일한, 하지만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소산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네.”

“험한 말은 듣기 거북한데 관두시죠.” 멍크스가 조롱하듯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알고 계신 사실만으로도 내겐 충분합니다.”

“하지만 나는 또한 잘못 맺어진 그 결합이 낳은 비참함과 장기간 서서히 이어진 고통과 고뇌도 잘 안다네.” 노신사는 말을 계속 이었다. “나는 그 불행한 부부가 제각기 무거운 쇠사슬을 질질 끌며 두 사람 모두에게 지옥이나 다름없는 세상을 얼마나 힘겹고 피곤하게 살아갔는지도 잘 아네. 냉담하고 의례적인 태도가 어떻게 노골적인 비아냥거림으로 변했는지, 무관심이 어떻게 싫은 감정으로 바뀌었는지, 그 싫은 감정이 어떻게 혐오감으로, 그리고 다시 혐오감이 어떻게 증오심으로 바뀌었는지도 잘 알고 있네. 두 사람은 마침내 철거덕거리는 쇠사슬의 굴레를 둘로 비틀어 쪼갰고, 오직 죽음만이 그 연결 고리를 끊어 버릴 수 있는 원한의 파편을 지닌 채 서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숨었네. 그러곤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쾌활한 표정으로 원한의 파편을 감추고자 했네. 자네 어머니는 그 일에 성공했지. 그래서 곧 모든 걸 잊어버렸네. 하지만 자네 부친의 가슴속에서 그것은 여러 해 동안 녹슬고 부식되며 그대로 남아 있었다네.” (P321-322)

올리버 트위스트 09.jpg

“그럼 들어 봐요! 당신들!” 멍크스가 대꾸했다. “그의 아버지가 로마에서 병이 들었을 때 오랫동안 별거 중이었던 부인, 즉 우리 어머니가 파리에서 나를 데리고 그리로 갔어요. 내가 아는 한 그건 아버지의 재산을 처리하기 위해서였지요. 왜냐하면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별로 애정이 없었고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아버진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그래서 우릴 전혀 알아보지 못했어요. 그는 그렇게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다음 날 사망했어요. 그의 책상에 있던 서류들 가운데 당신 앞으로 보내는 서류가 두 개 있었어요.” 그는 브라운로 씨를 향해 말했다. “병으로 쓰러진 첫날 밤에 쓴 것들이었는데, 당신한테 짤막하게 몇 줄 쓴 것과 함께 동봉되어 있었고, 자기가 죽기 전에는 보내지 말라는 지시 사항이 겉봉투에 적혀 있었어요. 이 서류 중 하나는 애그니스라는 그 여자한테 보내는 편지였고, 나머지 하나는 유서였어요.”

“편지 내용이 뭐였지?” 브라운로 씨가 물었다.

“편지가 뭐였냐고요? 그냥 종이 한 장에다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한 건데, 후회에 찬 고백과 하느님께 그녀를 도와 달라고 비는 기도가 전부였어요. 아버지는 그 여자한테 어떤 밝힐 수 없는 사정 -언제가 설명해 줄 것인데- 때문에 당시 그녀와 결혼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둘러댄 거였어요. 그래서 그 여자는 그를 한결같이 믿고 의지하며 계속 관계를 유지했고, 결국 너무나 깊이 믿어 누구도 돌려줄 수 없는 순결을 잃고 말았던 거지요. 그 무렵 그녀는 해산이 몇 달 안 남은 상태였어요. 아버지는 자신이 살아나면 그녀의 수치를 감춰 주고자 어떤 일들을 하려고 마음먹었는지 모두 적었고, 혹시 자신이 죽게 되더라도 자기를 저주하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그들의 죄의 결과로 인해 그녀나 어린 자식이 벌을 받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했어요. 모든 죄는 다 자신에게 있다면서 말이에요. 아버지는 그녀에게 작은 로켓과 -그녀의 세례명을 새기고 그 옆에 언젠가 그녀에게 주기를 바랐던 자신의 성씨를 새길 빈자리를 남겨 둔- 반지를 주었던 날을 상기시키며 그것들을 계속 잘 간직하라고,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가슴에 잘 차고 있으라고 부탁했어요. 그런 다음엔 똑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마치 정신이 나간 것처럼 혼란스럽게 말을 마구 늘어놓았어요. 아버진 실제로 정신이 나갔음에 틀림없어요.” (P361-362)


올리버 트위스트 10.jpg

브라운로 씨가 어떻게 매일매일 양아들의 마음속에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 채워 주었는지, 그리고 올리버가 자기 품성을 드러내며 모든 점에서 브라운로 씨의 희망대로 커 나갈 훌륭한 자질을 보여 줌에 따라 올리버에 대한 그의 애정이 얼마나 더 깊어졌는지 -어떻게 그가 올리버한테서 옛 친구의 특징들을 새롭게 발견해 내고 이를 통해 우울하지만 달콤하고 위안이 되는 옛 기억들을 가슴속에 떠올리게 되었는지- 어떻게 역경에 의해 단련된 두 고아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자비심과 서로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고 지켜 주신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감사를 통해 역경의 교훈을 깊이 되새겼는지 - 이 모든 것들은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나는 앞에서 그들이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말한 바 있는데, 깊은 애정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애, 그리고 자비를 율법으로 삼으시고 모든 살아 숨 쉬는 것에 대한 박애를 위대한 속성으로 지니신 하느님에 대한 감사가 없이는 행복은 결코 얻을 수 없다. (P403)

올리버 트위스트 21.jpg


keyword
이전 10화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