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1992년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은 로버트 레드포드 연출, 크레이그 셰퍼, 브래드 피트 주연. 전 시카고 대학 교수 노먼 맥클레인(1902~1990)이 자신의 실화를 토대로 1976년에 출판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제65회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상 수상작/각색상, 음악상 후보작이다.
우리 집에서는 종교와 플라이 낚시를 가르는 분명한 경계가 없었다. 우리는 거대한 송어들이 태어난 여러 강줄기가 합류하는 몬태나 주 서부에 살았다.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는 또한 손수 플라이(Fly)를 타잉(Tying)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타잉을 가르친 플라이 낚시꾼이다. 플라이 낚시꾼으로서 그는 예수의 열두제자는 어부였다고 말했으며, 신도들은 내 동생과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갈릴리 바다에서 제일 가는 낚시꾼은 모두 플라이 낚시꾼이며 예수의 가장 사랑받은 제자 요한은 드라이 플라이 낚시꾼이라고 믿게 되었다. (P19)
“플라이 낚시는 열 시에서 두 시 방향 사이에 네 박자 리듬을 살려서 날리는 예술이다.”
스코틀랜드 인이자 장로교 신도인 아버지는 인간은 본래부터 죄인이라 신의 은총을 받은 존재에서 타락해버렸다고 믿었다. 어린 나는 그가 이러한 개념을 발전시킨 건 아마도 나무에서 떨어진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하느님을 수학자로 믿었는지 아닌지는 결코 알 수 없겠지만, 수를 헤아일 수 있는 분이라고 믿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인간은 하느님의 리듬을 받아들임으로써 힘과 아름다움을 복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P22)
낚싯대는 언제나 “대(rod)"라고 불렸다. 행여 누가 이것을 ”막대기(pole)"라고 하면, 아버지는 장총을 보고 권총이라 말하는 신병을 어이없어하는 미 해병대 상사의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자칫 따분해질 수 있는 낚시 준비 과정의 까다로운 기술적인 문제들은 제쳐놓고, 일단 물가로 가서 직접 물고기를 잡아봄으로써 낚시를 배울 수 있었다면 동생과 나는 더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낚시라는 예술을 재미의 방식으로 소개하지 않았다. 아버지 말씀대로라면 낚시를 모르는 사람이 물고기를 잡는 것은 물고기를 조롱하는 것으로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낚시를 배우는 사람은 해양과 장로교 풍의 기술로 접근해야 했다. 또 이전에 한 번도 플라이 낚싯대를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곧 인간이란 정말 천성적으로 실수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비단실이 감겨 있고 살 밑으로 떨림이 전해지는 4.5 온스짜리 이 물건은 일체의 단순함을 거부한다. 낚싯대의 역할은 라인과 리더와 플라이를 물에 닿지 않도록 들어올리고, 이 세 가지가 머리 위쪽으로 올바르게 나가도록 만들며, 그 다음 물을 튀기지 않고 물 속으로 들어가도록 발사시키는 것이다. 이때 물 속으로 들어가는 순서는 플라이, 리더, 라인이 되어야 한다. 이 순서가 틀어지면 물고기는 플라이가 가짜임을 알아차리고 도망간다. (P23-24)
그가 선 바위를 기점으로 위와 아래엔 큰 무지개 송어가 사는 물이었다. 그는 상류 쪽을 향하여 플라이가 수면 바로 위를 지나가도록 낮은, 어려운 캐스팅을 할 것이다. 그리고 몸 한쪽을 축으로 몸을 비틀며 머리 위에 아주 큰 타원형의 라인을 만들고 그것을 다시 낮게, 힘들게 이번에 하류 쪽으로 보낼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플라이는 수면 바로 위를 지나게 된다. 폴은 이 장대한 원을 서너 차례 그리며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는 움직임의 무한대를 창조할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장대한 원은 블랙풋 강과 그 강 위의 공기를 영롱한 무지개 빛으로 물들이며 펄쩍 몸을 뒤채는 커다란 무지개 송어로 보답을 해줄 것이다.
그는 이것을 “섀도 캐스팅(Shadow casting)"이라고 불렀다. 솔직히 이 기술을 뒷받침하는 이론, 그러니까 물고기들은 첫 번째 날리기 때 물 위로 지나가는 플라이의 그림자에 놀라서, 플라이가 물을 건드리는 순간 그것을 물어버린다는 말을 믿어야 좋을지 어떨지 모르겠다. (P55)
“여자도 함께 있습니다.”
경사가 설명했다. 폴은 창문 앞에 서 있었지만, 철창 사이에 두꺼운 쇠그물이 쳐 있어 창 밖을 내다볼 수는 없었다. 그는 나를 볼 수도 없었다. 낚싯대를 잡는 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볼 때마다 연민을 느끼게 하던 저 오른손만 아니라면 내가 본 사람이 정말 폴인지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여자는 그의 발치 바닥에 앉아 있었다. 검은 머리가 반짝거릴 때의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여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북 샤이엔 족이었고, 그래서 검은 머리가 반짝일 때면 몽골 계보다는 알공킨 족이나 로마인 종의 윤곽을 닮아 보였다.
그녀는 강인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특히 술을 몇 잔 들이켜고 나면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 같았다. 그녀의 증조모 대에서 최소한 한 분은 북부 샤이엔 족과 수 족이 커스터 장군과 제7기병대를 무찔렀을 당시 북부 샤이엔 족에 있었다. 그때 샤이엔 족은 바로 언덕 맞은편에 있는 리틀 빅혼에 진을 치고 불후의 명성을 남겼다. 그 유명한 전투가 끝난 뒤 샤이엔 족 여자들은 그 들판에서 일해야 하는 첫 세대가 되었다. 그녀의 조상 중 적어도 한 명은 제7기병대원의 고환을 행복하게 잘라내는 일로 우후를 보냈으며, 이 행위는 때때로 죽이기 전에 이루어졌다. (P63-64)
경사로서 인생의 여러 면을 겪었을 그는, 폴이 “망나니 아일랜드 인”과 맞먹는 “말썽꾼 스코틀랜드 인”이라고 말했다. 물론 아버지의 가계에는 “말썽꾼 스코틀랜드 남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원래 기원지인 남부 헤브리디스 제도의 물 섬에서부터 북극해 남부 110마일 혹은 115마일 지점의 알래스카 페어뱅크스까지 퍼져 살고 있었다. 페어뱅크스는 스코틀랜드 남자가 위임장을 받은 정식 보안관이 되어 권총 찬 남편이 될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다. (P67)
나는 세상 저편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낚시꾼들의 내면에는 낚시를 완벽하면서도 분리된 세계로 만들려는 마음이 있다. 그 완벽하고 분리된 세상이 무엇이며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때때로 내 팔이 닿는 범위 안에, 내 목구멍 속에, 혹은 깊은 어떤 특정한 장소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완벽한 세상을 찾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우리 대다수는 더 나은 낚시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가장 힘든 일은 어설프게 양심이라는 걸 남겨두고 가는 일이다. 바로 지금처럼. (P85-86)
“형, 욕조에서는 송어를 못 잡는 법이야.”
폴이 말했다.
“햇빛이 드는 트인 곳에서 낚시를 하고 싶은 건 형이 스코틀랜드 사람이고 덤불에 플라이를 잃어버릴까 무서워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물고기들은 일광욕을 즐기지 않아, 물이 차갑고, 형 같은 낚시꾼으로부터 안전한 수초 밑에 있다고.”
나는 간신히 변명거리를 만들어냈다.
“덤불하고 엉키면 플라이를 잃어버리잖아.”
“도대체 뭐가 걱정이야? 플라이는 신경 쓸 것 없어. 조지는 플라이를 많이 갈아끼우는 일쯤은 겁내지 않았어. 덤불 숲에 플라이 한두 개 버릴 각오 없이 어떻게 좋은 낚시를 하겠어? 형이 플라이의 행방을 자꾸 겁낸다면 물고기 잡기는 글렀어. 형 낚싯대 이리 줘봐.” (P93-94)
강 위에는 열기가 만들어낸 신기루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신기루는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다가 서로의 속으로 파고들어 춤추었으며, 이어 원무를 추듯 모여들었다. 결국 관찰자와 강은 하나가 되었고, 하나가 된 우리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이 강이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강은 내장까지도 드러내고 누워 있었다. 멀지 않은 하류 쪽에는 한때 강물이 흘렀던 흔적만 남은 마른 강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강물은 제 몸의 일부가 죽음을 향해 흘러가고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지금은 말라붙은 이 수로에 오래전 철철 흘러넘쳤던 강물을 기억하기에, 나는 강물의 흔적만 남은 딱딱한 강바닥에 생기를 부여할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P129)
나는 경찰과 함께 자동차로 대륙 분수령을 넘어 노랗고 하얀 빙하 얼레지들이 피어난 빅 블랙풋 강가의 긴 도로를 내려갔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폴이 리볼버 권총 손잡이에 맞아 죽었으며 사체는 인적 없는 곳에 버려졌다는 말을 전해야 했다.
어머니는 돌아서서 침실로 들어갔다. 그곳은 그녀의 남자들과 그들의 낚싯대, 라이플 장총이 가득한 집에서 그녀가 큰 고민거리들과 혼자서 마주했던 유일한 곳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으나 또한 그만큼 잘 이해하지 못했던 남자에 대해 단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를 사랑했던 것만으로 충분했음을 알았던 것이리라. 폴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그녀를 팔에 안고 몸을 뒤로 제끼며 웃었던 유일한 남자였을 것이다. (P205)
결국 모든 것들은 하나로 융합되고, 그리고 강은 그 위로 흘러간다. 강물은 대홍수가 만들어낸 강줄기를 따라 시간의 기저에서부터 있어온 바위 위를 흘러간다. 어떤 바위에는 시작도 끝도 가늠할 수 없는 빗방울이 닿는다. 바위 밑에는 말씀이 있고, 말씀의 일부는 그들의 것이다.
나는 물소리에 넋을 잃는다. (P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