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차일드 인 타임> 2017년
영화 <차일드 인 타임>은 ‘SunnyMarch’라는 독립영화 제작사를 운영하며 제작자로 변신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첫 장편 영화 프로젝트로 제작 및 주연배우로 참여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나는 이언 매큐언의 광팬으로, 그의 뛰어난 원작이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게 했다”라고 말했다. <칠드런 액트>에서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잭(핀 화이트헤드)의 운명을 판사 피오나(엠마 톰슨)가 결정했듯 <차일드 인 타임> 역시 아동 문제를 어른들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아이가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환상이 없다면 그는 길을 잃고, 시간은 멈출 것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아이의 아버지였다. (P8)
개 사료를 산 남자가 나가고 있었다. 이미 계산을 시작한 여직원이 키패드 위에서 손가락을 휙휙 날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스티븐이 고를 물건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카트에서 연어를 꺼내면서 그는 케이트를 내려다보고 눈을 찡긋했다. 아이는 아빠를 따라 했지만 어설프게, 코를 찡긋하며 두 눈을 모두 감았다. 그는 생선을 내려놓고 계산원에게 쇼핑 봉투를 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선반 아래로 손을 넣어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는 봉투를 받고 고개를 돌렸다. 케이트가 없었다. (P25)
잃어버린 아이는 모든 이들의 자식이었다. 하지만 스티븐은 혼자였다. 그의 시선은 가까이 다가오는 친절한 얼굴들을 통과해 그 너머에 있었다. 그들은 무관했다. 목소리는 그에게 와닿지 않았다. 몸은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었다. 그 사람들은 케이트를 보지 못하게 시야를 막고 있었다. 그는 딸에게 가기 위해 그들을 밀치고 나아가야 했다. 숨이 막혔다. 생각할 수가 없었다. (P28)
그러다 어느 날 오후, 어지럽던 물건들이 사라졌다. 스티븐은 딸의 방에서 시트를 벗겨낸 침대와 방문 옆에 놓인 불룩한 비닐 자루 세 개를 보았다. 그는 줄리에게 화가 났고, 여성 특유의 자해 성향, 의도적인 패배주의라고 나름대로 이해했지만 그 행동에 넌더리가 났다. 하지만 그녀에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분노의 여지나 감정의 배출구는 없었다. 그들은 대립할 기력도 없이, 수렁에 빠진 사람들처럼 움직였다. 갑자기 그들의 슬픔은 개별적이고 배타적이고 소통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목록을 들고 매일 고단한 발품을 팔았고, 그녀는 안락의자에 앉아 혼자만의 깊은 슬픔에 빠졌다. 이제 서로 주고받는 위안은, 어루만짐은, 사랑은 없었다. 이전의 친밀감, 둘이 같은 편이라는 습관적인 전제는 사라졌다. 그들은 각자의 상실감을 붙들고 웅크렸고, 말하지 않은 원망이 쌓이기 시작했다. 상실감은 그들을 자기 성격의 극단으로 몰아갔다. 그들은 서로에게서 얼마간의 참기 힘든 점을 발견했으며, 슬픔과 충격으로 인해 그것들은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두 사람은 이제 더는 함께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그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선 채로 끼니를 해결했다. 시간을 버리기 아까워서, 자리에 앉아 머릿속 생각을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가 아는 한, 아내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P39~40)
사람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어쩌면 자신도 자식을 낳고 나서야, 부모에게도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완전하고 복잡다단한 삶이 있었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그는 여러 이야기에서 들은 윤곽과 세부만을 알았다. 백화점에서 일하며 등 뒤에서 리본을 깔끔하게 묶는 솜씨로 칭찬받는 어머니, 폐허가 된 독일 마을을 걸어서 지나가거나 중대장에게 공식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비행장의 아스팔트를 가로지르는 아버지, 그들의 이야기에 그가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도, 스티븐은 부모가 어떻게 만났는지, 무엇에 이끌렸는지, 어떻게 결혼할 결심을 했는지, 자신은 어쩌다 생겼는지 등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당면한 순간에서 벗어나 불필요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아무리 친숙하더라도 부모 역시 자식에게 낯선 사람임을 깨닫는 일은 어려운 법이다. (P86-87)
하지만 아버지가 육아에 깊숙이 관여할수록 권위적인 인물로서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증거가 있다. 애정과 거리 사이의 균형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아버지에게 사랑받는다고 느낄 때, 아동은 앞으로 거듭 겪게 될 것이며 모든 성장의 불가피한 과정인 이별에 대해 정서적으로 잘 대비할 수 있다.
영국 정부 출판국 발행 <공인 아동 보육 안내서>
(P88)
부모님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나이듦의 표시라기보다는 케이트의 실종에서 비롯된 절망의 효과였다. 이제는 케이트가 언급되는 일이 거의 없었으며, 20분 전에 그가 놀란 것도 그래서였다. 유일한 손주를 잃고 나자 아버지는 두 달 만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고 어머니의 눈은 주름진 눈구멍 속으로 퀭하게 꺼져버렸다. 그들은 은퇴 후 삶을 손녀를 중심으로 꾸렸으며 아이에게 이 방은 금지된 물건들의 천국이었다. 여기서 아이는 반 시간 가까이 혼자 놀면서, 낮은 찬장에 턱을 괴고 고음의 끽끽 소리로 유리 동물들을 흉내 내며 두서없는 모호한 대화를 이어가곤 했다. 부모님이 느끼는 슬픔의 흔적은 신체적 표시 외에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들은 아들의 마음에 짐을 더하고 싶지 않았다. 세 사람의 전형적인 유대 방식대로라면 그들은 케이트를 잃은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없었고 조금 전에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케이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은 묵인된 규칙을 어기는 일이었다. (P164-165)
며칠째 그는 아파트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장난감 가게에 가고 싶었다.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애도를 패러디하는 행위였다. 그런 행위가 자아내는 억지스러운 비감에 신음이 절로 나왔다. 그것은 연기일 뿐이고 실제로는 느껴지지 않는 광기의 가장일 테지. 하지만 생각은 점점 커졌다. 그 방향으로 산책을 나가 예전이라면 어떤 장난감을 샀을지 상상해봐도 괜찮겠지. 바보짓이다. 나약함이다. 쓸데없이 고통만 초래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은 계속해서 커졌고, 어느 날 아침에 그는 신문 가판대에서 알록달록한 포장지를 집어 마음을 바꿀 틈이 없도록 잽싸게 점원에게 내밀었다. 장난감을 산다면 2년간의 적응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 비이성적이고 제멋대로이고 자기파괴적인 짓이며 무엇보다 나약한 짓, 그래, 나약한 짓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자신이 원하는 세상 사이의 선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나약한 이들이다. 나약해지지 마,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살아남으려고 노력해. 그 종이를 버려, 환상에 굴복하지 마, 그 길로 가서는 안 돼. 되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라, 그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가고 싶은 마음을 없앨 수는 없었다. (P232-233)
“학부모나 후견인 되십니까?” 남자가 따져 물었다. 탄탄한 근육질에 땅딸한 체구의 남자는 허리를 곧게 세워 최대한 커 보이려 했다.
“아, 그게 바로 핵심인데요, 보세요.” 설명을 시작한 스티븐은 기묘한 활기를 띤 자기 목소리를 의식하고 멈칫했다. 다시 시도했을 때는 간단히 말했다. “딸을 도둑맞았어요. 유괴당했죠. 거의 3년 전에요. 그런데 그 애를 찾은 것 같습니다. 저기 저 해, 자기가 루스라고 하는 애가 제 딸입니다. 당연히 저를 알아보지는 못하고요.”
남자는 스티븐의 마지막 말 몇 마디를 다 듣지도 않고 지친 듯이 말했다. “우린 소풍을 가려던 참이에요. 그래도 교장 선생님께 안내해드리죠. 교장 선생님이 처리해주실 겁니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아니거든요.” (P276-277)
“루스,” 교장이 말했다. “네 이름 전체오 나이를 말해봐.”
“루스 앨스퍼스 라일, 아홉 살 반.”
“입니다.”
“입니다.”
“그럼 이 학교엔 얼마나 오래 다녔지?”
“어린이집까지 치면, 네 살 때부터입니다.”
“그럼 정확히 얼마나 된 거지.”
“5년.”
“입니다.”
“입니다.”
스티븐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이가 그를 배반하고 있었다. 아이의 대담함, 과한 의욕, 잘 보이려는 욕심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마음속 비밀은 없었다. 그가 선 곳에서 보이는 아이의 콧날, 그것은 완전히 다른, 중대한 불일치였다. 아이가 그에게서 떠나고 있었다. 그를 저버리고 있었다. (P282-283)
한시도 쉼 없이 그려보았던 재회의 순간을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태로 경험하고 나자, 스티븐은 그 집착의 악령을 내쫓지는 못해도 무디게는 만들었다고 느끼게 되었다. 케이트가 더는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진실, 눈에 안 보일 뿐 그의 옆에 있고 그가 속속들이 아는 아이가 아니라는 힘든 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루스 라일이 딸을 닮은 점과 닮지 않은 점을 기억하며 그는 케이트가 얼마나 많은 다른 길을 갈 수 있었을지, 2년 반 동안 얼마나 많은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을지 깨달았고, 자신은 그 모든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는 여태 미쳐 있었고 이제는 정화되었다고 느꼈다. (P285)
몰리가 가고 난 후, 그는 딸의 빈방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아이의 물건이 가득 든 쓰레기봉투가 아직도 목제 싱글 침대 매트리스 위에 놓여 있었다. 방에서 눅눅한 냄새가 났다. 그는 무릎을 꿇고 라디에이터 밸브를 돌렸다. 잠시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기분을 시험해보았다. 이때 그가 대적한 상대는 상실이 아니라, 높은 벽과 같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상대는 살아 움직이지 않았고 중립적이었다. 사실. 스티븐은 그 단어를 마치 욕설처럼 소리 내어 말했다. (P304~305)
“와줘서 정말로 다행이야.” 그녀가 말했다.
그는 기다렸다.
해야 할 말을 하기 위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 옆에 서서 몸을 반쯤 밖으로 틀었다. 카디건의 털실 주름을 두 손가락으로 꼬집던 그녀가 말을 던져놓고 멀찍이 물러나려는 듯 재빠르고 단조로운 어조로 말했다. “찰스가 죽었어. 죽었다고, 저 밖에, 숲속에 있어. 그이를 데려와야 해. 밤새 밖에 놔둘 순 없잖아. 그를 옮기게 도와줘.”
스티븐은 일어섰다. “어디 있어요?”
“그이의 나무 옆에.”
“떨어진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 경직된 움직임으로 보아 자제력을 유지하려면 말을 할 수 없는 듯했다. (P365)
그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무슨 말인가를 막 하려는 참이었다. 줄리가 속삭였다. “그 애는 사랑스러운 딸이었어, 사랑스러운 아이.” 그는 얼이 빠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3년이나 뒤늦게, 그들은 마침내 함께 울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아이, 대체할 수 없는 아이, 그들의 기억 속에서는 더 나이 먹지 않을 아이, 시간이 흘러도 특징적인 생김새와 움직임이 변하지 않을 아이를 위해서. 그들은 서로에게 매달렸다. 마음이 더 편해지고 슬픔이 좀 가라앉은 후에는, 울면서도 할 수 있는 데까지 그간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사랑을 약속했다. 아기에게, 서로에게, 서로의 부모들에게, 셀마에게. 마구잡이로 퍼져나가는 슬픔의 힘으로, 그들은 모든 이와 모든 것을 치유하기로, 정부와 이 나라와 이 행성을, 하지만 가장 먼저 그들 자신을 치유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딸을 잃어버린 일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새로운 아이를 통해 딸을 사랑할 것이며 그 아이가 돌아올 가능성에 마음을 닫지 않기로 했다. (P404~405)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에서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에서 찾아온 사람으로서 그것이 갑작스럽고 명백하게 거기 있다는 사실, 그 단순함이 그에게 명백하고 정확한 목적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줄리에게 무언가 안심시키는 말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은 어떤 기억에서 위로를 얻었다. 햇살 쏟아지는 도로와 자동차의 충돌 잔해와 한 사람의 머리에 대한 폭죽처럼 짧고 또렷한 기억. 생각이 단순하고 기본적인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바로 이것, 이 증식, 스스로를 사랑하는 이 생명의 물질이 우리가 가진 전부로구나,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여기에서 비롯되는구나. (P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