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

영화 <더 터닝> 2020년

by 노용헌

영화 <나사의 회전>(1999)

영화 더 터닝 02.jpg

영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헨리 제임스의 중편 소설 <나사의 회전>은 1898년 초판 이래 인간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서사적 유려함과 당시의 고딕적인 분위기, 흡인력 강한 스토리텔링으로 예술가는 물론 심리학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공포 바이블이다. 특히 연극, 오페라뿐만 아니라 공포 영화 역사 상 가장 충격적인 반전을 선사했던 <디 아더스>의 모티브가 된 것은 물론 <악몽의 별장>, <공포의 대저택> 등 수많은 영화로 재탄생 되어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영화 더 터닝 03.jpg

플로리아 시지스몬디 감독은 극 초반 ‘케이트’의 심리를 컬러에 대입해 표현했다. 레드 컬러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색을 활용한 영화 초반에 반해 후반부로 갈수록 흑백에 가까운 색을 선택해 악몽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인물의 처절한 심리 변화를 비주얼로 그려냈다. 감독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1990년대로 설정, <더 터닝>이 선사하는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함을 과거의 이념에서 탈피하려는 당시의 사회상과 결부시켜 영화적 메시지를 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플로리아 시지스몬디 감독은 시각적 효과를 완성하기 위해 데이비드 웅가로 촬영감독과 협력했다. 깊이감을 더하는 광각 렌즈를 사용, 긴 통로를 더욱 길어 보이도록 하고 각방의 문들이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으로 보이도록 연출, 왜곡과 이미지 전환을 통해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영화 더 터닝 04.jpg

“난 무척이나 동의해요. 지난번 그리핀 씨가 말한 유령 이야기든 무엇이든. 그토록 여린 어린아이에게 맨 먼저 유령이 나타난 게 각별한 기미가 있다는 거 말이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어린아이와 관련된 감칠 듯한 이야기치고 그게 처음 일어난 건 아닐 거예요. 만일 어린아이 하나가 나사를 한 번 더 죄는 효과를 낸다면, 어린아이가 둘일 경우 어떻게 되겠어요?”

“그야 물론.” 누군가 소리쳤다. “두 번 죄는 거죠! 우린 그 이야기도 듣고 싶소이다.”

나는 난로 앞에 있던 더글러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난로에 등을 쬐려고 일어서서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자기와 말한 상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를 제외하고 누구도 이 얘기를 들은 적이 없어요. 정말 너무나 끔찍한 이야기인지라.”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가장 듣고 싶다고 말하자, 더글러스는 눈길을 우리에게 돌려 느긋하게 말을 계속하며 자신의 승리를 굳혔다. “그건 무엇과도 견줄 수 없어요. 내가 알고 있는 한 다른 얘기는 접근조차 못하니까요.”

“순전히 공포 때문인가요?” 내 기억으로 내가 그렇게 물은 것 같았다. (P8)


영화 더 터닝 12.jpg

그 일은 어느 날 오후 내가 가장 좋아하던 시간 중에 느닷없이 발생했다. 나는 아이들을 침실로 돌려보내고 산책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이젠 조금도 거리낌 없이 적어두는 바이지만, 나는 이러한 산책에서 갑자기 누군가를 만난다면 우아한 낭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인물은 저기 길모퉁이에 서서 미소를 지으며 내 존재를 인정하리라. 나는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고, 단지 그분이 나를 알아주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그분이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유일한 길은 호감 어린 얼굴에서 바로 그 친절한 미소를 보는 것이리라. 그분의 얼굴이 사실 그대로 내 앞에 나타났을 때는 6월의 긴 하루가 끝날 무렵 내가 농장에서 걸어 나와 저택이 보이는 곳에 갑자기 발길을 멈추었던 순간이었고, 이것은 잇달아 생겨난 일들의 시초가 되었다. 그 지점에서 나의 걸음을 우뚝 멈추게 한 건 나의 상상이 순식간에 현실로 바뀌었다는 충격 때문이었다. 그분이 거기 서 있지 않은가? 그분은 잔디밭 건너 높다란 곳에, 이 집에 온 첫날 아침 귀여운 플로라가 나를 안내해 주었던 탑의 맨 꼭대기에 서 있었다. (P39-40)


나의 즐거운 일이란 바로 마일스와 플로라와 함께 하는 생활이었고, 힘든 일이 생길 때 아이들에게 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것은 내게 정말 가장 좋은 것이었다. 내가 책임을 진 아이들의 매력은 끊임없는 기쁨이었고, 처음에 가졌던 두려움, 즉 내 직무에서 예상된 침울한 단조로움을 놓고 품었던 혐오감은 무의미했음을 새로이 깨달았다. 침울한 단조로움 따위는 생겨날 수 없는 듯했고, 길고 힘겨운 일들도 없었다. 그러므로 나날이 아름답게 펼쳐진 일들이 어떻게 즐겁지 않았겠는가? 그건 전적으로 아이들이 있는 공간의 낭만이자 공부방의 시(詩)가 아니었던가. 물론 내 말은 우리가 소설과 시만 공부했다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내게 불어넣은 영감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는 의미이다. 점차 아이들에게 익숙해지는 대신 -그리고 이건 가정교사에게 기적이나 다름없을진대, 동료 가정교사들을 여기에 증인으로 삼으련다- 끊임없이 새로운 발견을 했다고 말하는 것 외에 달리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발견이 미치지 않은 한 가지 방향이 분명히 있었다. 그건 마일스가 학교에서 저지른 행동이 계속 깊은 어둠으로 덮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나는 즉시 그러한 불가사의를 고통 없이 받아들였다. (P47)

영화 더 터닝 13.jpg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함께 지내야 할 유령의 존재로 말미암아 우리를 결속시킨 건 물론 이 같은 특별한 말이 아니었다. 그건 그토록 선명하게 확인된 세계의 환상에 사로잡힌 나의 끔찍한 습성을 내 동료가 놀라움과 동정심이 반쯤 섞인 채 알고 있음을 말한다. 오늘 저녁 한 시간이나 나를 그토록 실의에 빠지게 만든 고백이 있은 후, 우리들 각자에게는 어떤 의식도 안중에 없었고, 단지 눈물과 맹세와 기도와 약속이라는 조촐한 의식이 이어질 따름이었다. 이 의식은 우리가 함께 공부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모든 걸 털어놓으며 곧장 서로 간의 맹세와 다짐을 잇따라 하는 데서 정점에 이르렀다.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는 건 결과적으로 우리의 상황을 남김없이 파고들 뿐이었다. 그로스 부인 자신은 아무것도, 그야말로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고, 이 집에서 가정교사인 나를 제외하고 누구도 이런 곤경에 빠지지 않았다. 그래도 부인은 나의 이성을 대놓고 공박하는 법이 없이, 내가 말한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런 까닭에 부인은 마침내 겁에 질린 연약한 마음으로 극히 의심스러운 나의 특권을 인정한다는 표시를 보여주었다. 내게는 이러한 연약한 마음의 숨결 자체가 참으로 감미로운 자비심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줄곧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그날 저녁 우리 사이에 결정된 건 사태를 함께 견뎌나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P61-62)


“그 사람이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고 했죠. 선생님이 아닌 누군가를요?”

“어린 마일스를 찾고 있었어요.” 불길하리만큼 선명한 생각이 이제야 나를 사로잡았다. “그게 그 사람이 찾고 있던 거였어요.”

“하지만 어떻게 아세요?”

“알고말고요. 여부가 없는데요!” 나의 흥분이 고조되었다. “그리고 당신도 알잖아요!”

부인은 이 말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내 느낌으로 그 정도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아무튼 이윽고 부인이 말을 계속했다. “그 사람이 마일스를 본다면 어떻게 되죠?”

“어린 마일스를? 그 아일 노리고 있는걸요!”

부인은 다시 엄청나게 겁을 먹은 표정이었다. “어린아이를요?”

“이를 어쩌나! 그 인간이 아이들에게 다가가려고 해요.” (P63)

영화 더 터닝 15.jpg

어째서 당장 아이를 몰아세워 끝장을 내면 안 될까? 작고도 사랑스런 아이의 밝은 얼굴에다 곧장 사실을 털어놓을까? ‘알겠지, 응, 난 네가 한 짓도 알고. 내가 그렇게 믿고 있는 걸 네가 의심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러니까 선생님에게 솔직히 고백하란 말이야. 그럼 적어도 우린 함께 부딪쳐갈 수 있어. 우리가 가진 괴상한 숙명에서, 우리의 위치와 함께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될지도 모르잖아?’ 아쉽게도 이러한 간청은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사라져버렸다. 내가 그 말을 즉시 입 밖에 꺼낼 수 있을지라도.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그 까닭을 알게 될 테니까. 나는 간청하는 대신 벌떡 일어나 아이의 침대를 바라보고 막연한 방도를 취하였다. “넌 왜 네가 여전히 침대에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커튼을 침대 위로 당겨놓았니?”

플로라는 영리한 눈빛으로 잠시 숙고하다 신비로운 미소를 방긋 지었다. “선생님이 놀라시지 않도록 하려고요!” (P100)

영화 더 터닝 14.jpg

“........마일스는 플로라에게 책을 읽어주는 게 아니랍니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그 아이들은 죽은 사람들을 얘기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소름 끼치는 일을 얘기하는 거예요! 내가 미친 것 같겠죠. 미치지 않은 게 이상할 노릇이죠. 내가 지금까지 목격한 일이 당신을 그렇게 만들어놓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단지 내 정신을 더욱 맑게 하여 다른 일들까지 파악하게 했어요.”

나의 맑은 정신은 틀림없이 끔찍하게 보였으리라. 하지만 희생물이 된 귀여운 아이들은 꼭 같이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오가며, 내 동료에게 자기 생각을 고집할 빌미를 주었다. 그래서 내 열렬한 호소에도 부인이 꼼짝하지 않고 두 눈으로 여전히 아이들을 응시하자, 난 그녀가 얼마나 완강한지를 느꼈다. “선생님이 다른 어떤 일들을 파악했나요?”

“글쎄요, 한편으론 나를 기분 좋게 매혹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실로 무척이나 이상하게도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괴롭히는 일들이죠. 지상에 존재한다고 생각될 수 없는 아이들의 아름다움과 함께, 도무지 부자연스러운 착한 심성 말이에요. 그건 게임이에요.” 나는 말을 계속했다.

“그건 책략이고 사기랍니다!”

“귀여운 어린것들이 말인가요?”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어린것들이 그럴 리 있겠느냐는 뜻이죠? 그럼요. 미친 짓처럼 보이겠지만!”

이렇게 말을 꺼내고 보니 사건을 추적하고 샅샅이 따져한데 엮기가 한결 쉬워졌다. “그 아이들은 지금까지 착한 게 아니었어요. 겉으로 나쁜 짓만 하지 않았을 따름이죠.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건 쉬운 일이에요. 아이들은 나름의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니까. 아이들은 내 소유도, 우리 소유도 아니에요.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소유랍니다!”

“퀸트와 그 여자 말인가요?”

“그렇죠. 아이들이 그들에게 접근하려고 하거든요.”

이 말을 듣고 가련한 그로스 부인이 아이들을 유심히 살피는 듯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이죠?”

“과거 끔찍한 날들 동안 두 유령이 아이들에게 가르친 모든 악행에 이끌렸기 때문이죠. 게다가 악행을 더욱 유도하여 악마 같은 짓거리를 계속하는 것이 그자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길이에요.” (P112-113)

영화 더 터닝 16.jpg

플로라는 이런 자세로 분노에 찬 울음을 터뜨렸다. “절 멀리 데려다줘요. 멀리, 이 여자로부터요!”

“나로부터?” 나는 숨을 헐떡였다.

“선생님으로부터요. 그래요!” 플로라가 외쳤다.

그로스 부인조차 난처하여 나를 건너보았다. 그동안 나는 건너편 둑에 떨어져 있으면서도 우리의 목소리를 감지하려는 듯이 여전히 경직되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내게 도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나를 재앙에 빠뜨리기 위해 있는 존재와 다시 교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는 딱하게도 자신이 토한 찌르는 듯한 앙증맞은 말 마디마디를 어딘가 외부로부터 빌려온 듯 정확히 표현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완전한 절망감으로 나는 아이에게 슬픈 듯이 고개만 흔들었다. “지금까지 의심을 품어왔다면 이제 나의 의구심이 모두 사라질 거야. 나 역시 지금까지 비통한 진실과 더불어 살아왔지만, 이제 그 진실 때문에 꼼짝도 못하게 됐어. 물론 난 플로라를 빼앗기고 말았어. 난 그걸 막으려 했고, 넌 저 야자의 지시에 따라.”

이 말과 함께 나는 다시 호수 위에 있는 악마 같은 망령을 보았다. “쉽고도 완벽하게 유령을 만나는 법을 알았던 거야. 난 최선을 다했지만 널 빼앗기고 말았어. 안녕.” 나는 그로스 부인에게 신경질적으로 명령하듯 말했다. “가요, 가!” 부인은 극심한 두려움 속에서 작은 아이에게 사로잡혀, 자신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끔찍한 일이 발생했고, 또한 어떤 파국이 우리를 뒤덮었다는 것을 분명히 확신하고 황급히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P167-168)


다음 날 내 방에 아침이 완전히 스며들기도 전에 그로스 부인이 잠을 깨웠다. 부인은 더욱 좋지 못한 소식을 가져왔는데, 플로라의 몸에 심한 열이 올라 병이 난 듯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플로라가 극히 불안정한 밤을 보낸 건 무엇보다 이전의 가정교사가 아니라, 전적으로 지금의 가정교사로 인한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플로라의 저항은 제셀 양이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올지 모른다는 데 있지 않고, 눈에 띌 만큼 격렬하게 나를 거부한 데 있었다. 나는 즉각 자리에서 일어나 많은 것을 물었다. 부인이 마음을 가다듬고 나한테 이토록 분발하니 더욱 묻고 싶었던 것이다. 나와 비교하여 아이의 정직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부인에게 물어보는 순간 나는 이 같은 태도를 느꼈다. “플로라가 과거에도, 지금까지도 어떤 것도 본 적이 없다고 우겨요?” (P170)

영화 더 터닝 17.jpg

이 집안을 위해 내가 가꾼 고상한 격식을 과시하느라, 나는 마일스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식사를 아래층에 준비해두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토록 끔찍했던 첫째 일요일. 그로스 부인으로부터 일순간 진실을 밝히기엔 너무나 부족한 암시를 얻었던 창문 밖의 육중하고 현란한 방에서 마일스를 기다릴 작정이었다. 여기서 지금 나는 -거듭 느껴온 탓이지만- 내 마음의 굳센 의지, 즉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 참으로 혐오스럽게도 자연의 섭리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완강히 거부하는 데 성패가 달려 있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다. 그나마 내가 지탱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자연의 섭리’에 비밀을 털어놓고 내 편으로 삼아, 내가 겪은 엄청난 시련을 유달리 불편한 방향으로 유도하여, 결국 소박한 인간 덕목의 나사를 다시 한 번 죄도록 공공연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노력보다 더 벅찬 건 없었다. 이미 발생한 일을 언급하지 않도록 자제하긴 했지만, 내가 어떻게 그 조건의 작은 일부라도 이용할 수 있겠는가? 반면, 끔찍하게 모호한 구석으로 새로이 뛰어들지 않고서 내가 어떻게 무엇과 대면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잠시 후 내게 떠오른 해답은 논란의 여지없이 나의 어린 동료에게 어쩌다 생긴 일을 순간적으로 포착함으로써 확인되었다. 실로 이제야 그가 -수업 시간에 자주 발견했듯이- 나를 편하게 만들 뭔가 다른 섬세한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우리가 고독을 나누고 있을 때 여태 한번도 이글거리지 않았던 빛으로 타오른 사실에 단서가 없을까? 그토록 총명한 아이가 유령이 부여해 준 절대적 지능으로부터 이용할 수 있는 도움을 구하지 않은 것이 터무니없다는 사실에 -지금 찾아온 소중한 기회를 이용하여- 단서가 있지 않을까? 자신을 구제하는 길이 아니라면 그의 지능은 대체 무슨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말인가? 그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겉모습을 헤집고 과감히 속으로 파고들 수 없을까? (P182-184)


영화 더 터닝 18.jpg

“선생님이 여기 계신가요?” 마일스는 감긴 눈으로 내 말이 들리는 방향을 감지하며 숨을 헐떡였다. ‘선생님’이라는 마일스의 이상한 말에 내가 비틀거리고 숨을 헐떡이며 “제셀 양! 제셀 양!” 하고 말을 되풀이하자, 그가 갑작스러운 분노로 나를 밀쳤다.

나는 놀라서 아이의 추측을 간파했다. 그것은 우리가 플로라에게 했던 일련의 행위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제셀 양보다 오히려 낫다는 것을 그에게 알리고 싶을 따름이었다. “제셀 양이 아니야! 하지만 그게 창문에 있어. 바로 우리 앞에. 저기 있잖아. 비겁한 괴물 같으니, 저기 마지막으로 나타난 거야!”

이 말을 듣자 마일스는 순식간에 마치 미친개가 냄새를 맡고 머리를 흔들다 몸을 치떨며 돌파구를 찾듯 -내 느낌에 지금도 유령이 독기처럼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도- 흐릿하게 창문 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우리를 엄습한 거대한 존재를 도무지 찾지 못한 채 당황하여 새파랗게 질려 나를 쏘아보았다. “그분이 오셨나요?”

나는 온갖 증거를 잡으려고 굳은 결심을 하던 참이라 냉정한 마음으로 아이에게 도전했다. “‘그분’이라니 누구 말이냐?”

“피터 퀸트죠. 이 악마 같으니!” 마일스의 얼굴은 애원하듯 경련하며 다시 방 안을 살폈다. “어디죠?”

내 귀에는 마일스가 드디어 입 밖에 낸 이름과, 나의 헌신적인 노력에 대한 그의 보답의 소리가 아직도 들려오고 있다. “이젠 그 사람이 무슨 상관이 있겠니? 그리고 앞으로도 무슨 상관이 있겠어? 난 너를 가졌는데.” 나는 짐승 같은 유령에게 대들었다. “마일스는 영원히 당신을 떠났어!” 그리고 내 업적을 자랑하듯 마일스에게 말했다. “저기, 저기를 봐!”

그러나 마일스는 이미 몸을 홱 돌려 응시하며 노려보았으나 고요한 빛밖에 보지 못했다. 내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긴 것에 대해 상실의 타격을 받아, 아이는 심연으로 떨어진 동물의 울음소리로 부르짖었다. 내가 다시 마일스를 잡은 것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그를 붙잡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분명히 그를 잡고 껴안았다. 내가 무슨 열정으로 그를 잡았는지 상상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윽고 나는 나 자신이 껴안고 있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 느끼기 시작했다. 고요한 날 실내에는 우리 둘뿐이었고, 악령을 쫓아낸 그의 여린 심장은 고동을 멈추어버린 것이다. (P199-200)

영화 더 터닝 19.jpg


keyword
이전 09화존 보인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