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2008년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2006년 영국에서 출간되어 큰 화제를 일으켰던 존 보인의 소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원작으로 했다. 또한 제작노트에서 영화에 함께 참여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영화는 단순히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홀로코스트를 통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상기하게 만드는 작품이기에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 가족 모두가 함께 보아야 할 영화'라고 말했다.
그레텔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브루노는 창문 앞에 선 채 수백 명의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상한데.......?”
브루노가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아이든 어른이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한결같았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회색 줄무늬 파자마에 회색 줄무늬가 박힌 헝겊 모자를 쓰고 있었다.
“왜 다들 똑같은 옷을 입었을까?”
브루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창가에서 물러났다. (P63-64)
“그럼 그것 말고는 남아도는 타이어가 없나요?”
브루노가 자신을 쏘아보는 그레텔의 성난 눈빛을 무시한 채 말했다.
“남아도는 타이어? 물론 있기야 하지.”
코틀러가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 대신 모든 것이 귀찮은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타이어는 어디에 쓰려고 그러지?”
“그네를 만들려고요. 나뭇가지에 밧줄로 타이어를 매달기만 하면 그네가 완성되잖아요.”
브루노가 말했다.
“그네라.........” (P119-120)
“아주 조금 찢어진 것뿐이에요. 꿰맬 필요도 없겠습니다.”
파벨이 달래듯 말했다. 브루노는 찌푸린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까?’
브루노는 불안한 마음으로 파벨의 손놀림을 지켜보았다. 파벨은 상처에 난 피를 닦아 낸 다음 깨끗한 수건으로 그 부위를 꾹 눌렀다. 그러고는 몇 분 뒤에 수건을 조심스럽게 떼어 냈는데, 신기하게도 피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브루노는 파벨의 솜씨에 감탄했다. 잠시 후 파벨은 구급상자 안에서 작은 병을 꺼내 그 안에 들어 있는 초록색 약을 상처 부위에 살살 바르기 시작했다. 약이 닿을 때마다 몹시 따끔거려서 브루노는 연거푸 ‘아야’ 소리를 냈다.
“그다지 큰 상처는 아닙니다. 아프다고 생각하면 실제보다 더 아프게 느껴지는 법이랍니다.”
파벨이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P128)
파벨은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분명히 의사랍니다. 사람은 겉만 봐서 판단할 수 없어요. 밤중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이 모두 천문학자는 아니랍니다.”
브루노는 파벨의 말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막연히 무언가 깊은 뜻이 담겨 있는 말 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파벨의 목소리나 태도에서도 어떤 위엄 같은 것이 느껴졌다. 브루노는 처음으로 파벨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P132)
“아저씨가 정말 의사라면, 왜 식사 시중을 드세요? 왜 병원에서 일을 안 해요?”
파벨은 브루노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한참 동안 머뭇거렸다. 브루노는 재촉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그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상대방이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파벨이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의사로서 진료를 했답니다.”
“진료요?”
브루노는 ‘진료’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렸다.
“그럼 진료를 하면서 뭔가를 잘못하셨나요?”
브루노의 질문에 파벨이 또 한 번 빙그레 웃었다.
“아뇨, 꽤 실력 있는 의사였지요. 어렸을 때부터 꿈이 의사였어요. 제가 아주 어린 소년이었을 때부터, 그러니까 도련님 나이였을 때부터 저는 의사가 되고 싶었답니다.”
“제 꿈은 탐험가예요.”
브루노가 재빨리 말했다.
“탐험가요? 꿈이 훌륭하군요. 도련님께서는 그 꿈을 이루시길 온 마음으로 빌게요.” (P133-134)
“하긴 다른 군인들도 그런 데만 관심을 갖고 있겠지. 군인들은 다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야. 멋진 제복에 잘생겨 보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유치한 인간들이지. 하지만 옷만 번드르르하게 차려입고 잘생겨 보이면 뭐 해? 하는 짓은 짐승만도 못한데. 생각만 해도 끔찍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군인들을 볼 때마다 나는 치가 떨려. 하지만 랄프, 너를 탓할 마음은 없다. 잘못이 있다면 모두 내 탓이지.”
할머니가 브루노와 그레텔은 안중에도 없는 듯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P147-148)
브루노는 그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런 의문을 품었다. 그들은 브루노의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과 크게 달랐다. 모두 한결같이 줄무늬 파자마에 줄무늬 헝겊 모자를 쓰고 있었다. 반면에 브루노의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근사한 제복에 번쩍번쩍 빛나는 장식품을 달고 모자나 헬멧을 썼다. 거기에다 팔뚝에 새빨간 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완장을 두르고 허리춤에 권총까지 차고 드나들었다. 파자마 입은 사람들은 아무 장식품도 무기도 차고 있지 않았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한쪽은 제복을 입고, 다른 한쪽은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있을까?’ (P158)
“아니, 너를 못 믿겠다는 게 아니야. 그저 너무 놀랐다는 거지. 나도 1934년 4월 15일에 태어났거든. 그러니까 우리 둘은 똑같은 날에 태어난 거잖아. 정말 놀랍다.”
쉬뮈엘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너도 아홉 살이구나?”
“그래, 정말 신기하지 않니?”
“정말 신기한데, 내가 사는 이쪽에는 쉬뮈엘이 수십 명 있지만, 나와 생년월일이 똑같은 사람을 만난 건 지금이 처음이야.”
“생년월일이 같으니까 우리는 쌍둥이나 다름없어.” (P172)
쉬뮈엘이 입을 열었다.
“내가 아는 건 이것뿐이야. 여기 오기 전에 나는 부모님이랑 요제프와 함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어. 요제프는 내 동생이야. 우리 집 바로 아래층에서 아빠가 시계방을 운영하셨지. 우리는 매일 아침 7시에 다 함께 아침 식사를 했고, 나와 동생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아빠는 사람들이 가져온 고장 난 시계를 고치셨어. 물론 새 시계를 만드는 일도 하셨지. 아빠가 내게도 멋진 시계를 하나 만들어 주셨는데, 지금은 갖고 있지 않아. 글자판이 금으로 된 시계였어. 매일 밤 자기 전에 태엽을 감아 두면 늘 정확한 시각을 알 수 있었어.”
“그 시계가 지금 어디에 있는데?”
브루노가 물었다.
“저 사람들이 빼앗아 갔어.”
“저 사람들? 누구 말이야?”
“저기 있는 군인들이지 누군 누구겠어?”
쉬뮈엘은 지극히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아무튼 어느 날인가부터 모든 게 변하기 시작했어.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엄마가 천으로 나와 내 동생에게 줄 완장을 만들고 계셨지. 완장에는 별이 그려져 있었는데, 바로 이렇게 생긴 거야.” (P197-198)
그레텔이 코플러 앞에만 서면 유난히 이상한 짓을 하는 것도 브루노가 중위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브루노가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코틀러가 파벨에게 한 짓이었다. 한때 의사였던 파벨이 실수로 제복에 포도주를 엎질렀을 때, 새파랗게 젊은 코틀러 중위는 무섭게 화를 냈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때릴 수가 있단 말인가. 브루노는 코틀러가 파벨에게 한 짓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P255-256)
“그래? 그럼 잠시 부엌에 들어가 있어라. 엄마는 코틀러 중위님과 단둘이 할 얘기가 있으니까.”
어머니와 젊은 중위가 거실 쪽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중위는 브루노가 보는 앞에서 거실 문을 소리 나게 닫았다.
브루노는 화를 억누르며 부엌으로 향했다. 이윽고 브루노는 부엌문을 열고 안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악!”
브루노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뒤로 자빠질 뻔했다. 부엌 한가운데에 놓인 테이블 앞에 쉬뮈엘이 앉아 있었다. 브루노는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쉬뮈엘!”
브루노가 이름을 부르자 쉬뮈엘이 고개를 들었다. 공포에 질려 있던 쉬뮈엘의 얼굴이 브루노를 본 순간 환한 미소로 물들었다.
“브루노!”
“쉬뮈엘,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브루노는 철조망 너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 집에 올 수 없다는 사실만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느닷없이 쉬뮈엘을 보게 된 게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그 사람이 나를 이리로 데려왔어.”
쉬뮈엘이 말했다.
“그 사람이라니? 누구? 설마 코틀러 중위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맞아, 그 사람이야. 내가 이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있대.”
브루노는 그제야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유리컵들을 바라보았다. 예순네 개나 되었다. 그 유리컵들은 어머니가 약으로 포도주를 마실 때 사용하는 것이었다. 유리컵 옆에는 따뜻한 비눗물이 담긴 대점과 함께 종이 냅킨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래서 넌 지금 뭘 하는 건데?”
브루노가 물었다.
“이 유리컵들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으랬어. 컵들이 작은 만큼 아무래도 손가락이 가느다란 아이가 닦는 게 쉬울 거라고 하면서 말이야.” (P261-262)
브루노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머릿속에는 코틀러 중위가 개를 총으로 쏘아 죽이는 장면과 화풀이로 파벨을 몹시 때리던 잔인한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서 말해, 브루노!”
중위가 소리쳤다.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세 번식이나 똑같은 말은 안 하는 사람이야!”
“저 애와 얘기를 나눠 본 적은 없어요. 태어나서 처음 본 아이예요. 저런 애 몰라요.”
브루노는 엉겁결에 말했다. (P271)
“와, 정말? 너 진짜로 그렇게 해 볼래?”
“그래, 한번 해 보고 싶어. 아주 대단한 모험이 될 거야. 우리의 마지막 모험이지. 마침내 탐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신나는데!”
“그럼 내가 아빠를 찾는 일을 도와줄 수도 있겠네?”
“못할 것도 없지. 함께 주변을 돌아보면서 네 아빠의 흔적일 만한 게 있는지 찾아보는 거야. 탐험은 원래 그렇게 하는 거거든. 문제는 어떻게 줄무늬 파자마를 구하냐는 건데.......”
“아니, 그런 건 문제가 안 돼.”
쉬뮈엘이 자신 있게 말했다.
“파자마를 보관하는 오두막이 따로 있어, 내가 가서 내 것과 비슷한 치수로 한 벌 골라 올게. 그럼 네가 그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함께 아빠를 찾으러 가는 거야.”
“와, 그거 정말 신나겠는걸!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겠어!”
브루노가 흥분하여 소리쳤다. (P312-313)
“오늘 제대로 놀지 못한 게 아쉽기는 해. 하지만 네가 베를린으로 오면 그때 같이 신나게 놀자. 그때는 내가 너한테........ 이런, 그 애들 이름이 뭐였더라?”
브루노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들이라고 믿었던 세 아이의 이름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진 것을 깨닫고 크게 실망했다. 친구들의 이름은 물론이고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브루노가 쉬뮈엘을 보며 말했다.
“까짓, 이름을 기억 못하면 어때? 기억 못해도 괜찮아. 이제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는 그 애들이 아니니까 말이야.”
브루노는 그렇게 말하면서 쉬뮈엘의 작고 앙상한 손을 꼭 쥐었다. 그것은 브루노 자신도 예상치 못한 뜻밖의 행동이었다.
“이제는 네가 내 가장 소중한 친구야. 쉬뮈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친구,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친구라고.”
그 말에 쉬뮈엘이 입을 열어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브루노는 쉬뮈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쉬뮈엘이 말을 하는 순간, 갑자기 출입문이 쿵 닫히면서 요란한 쇳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밖에서 문을 잠근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소리와 함께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절망적으로 울부짖었다. (P332-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