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콜레라 시대의 사랑> 2007년
198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1985)은 이 소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영화는 네 편이다. 그 영화들은 피터 첼섬의 <세렌디피티>(2001), 박진표의 <죽어도 좋아>(2002), 토마스 구티에레스 알레아의 <공원에서 온 편지>(1988), 루이 게라의 <비둘기를 키우는 아름다운 여인의 우화>(1988)이다.
영화 <세렌디피티>에서 조나단은 첫눈에 사랑에 빠진 여인 사라에게 다음에 만날 수 있도록 전화번호를 교환하자고 제안하고, 서로의 연락처를 적은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영역 초판본과 5달러짜리 지폐가 모티브이다. 영화 <죽어도 좋아>는 노인들의 사랑을 추잡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적 금기로서 노인들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루이 게라의 <비둘기를 키우는 아름다운 여인의 우화>는 하얀 비둘기를 기르는 유부녀인 풀비아는 오레스테스에게 비둘기를 선물로 주고, 이후 두 사람은 비둘기를 통해 연애편지를 주고받다가 결국 사랑을 나누게 된다는 점이 닮아있다. 토마스 구티에레스 알레아의 <공원에서 온 편지>는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페르미나 다사에게 사랑을 전하는 도구로서 편지를 사용하듯이 1913년 쿠바의 마탄사스를 배경으로 청년 후안이 부유한 집안의 처녀 마리아를 사랑하게 되자, 편지 대필을 부업으로 삼고 있는 중년 시인 페드로에게 연애편지 대필을 부탁하고 편지는 두 사람의 연애 감정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된다.
[1]
스페인의 지배로부터 해방되고 노예 제도가 폐지되자,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의 영광스러운 몰락은 가속화되었다. 과거의 훌륭한 가문들은 폐허가 되어버린 그들의 궁궐 안에서 아무 말 없이 침몰해 갔다. 해적들이 상륙 작전과 기습 전투에 그토록 유용하게 사용했던 험한 자갈 도로 위로 잡초가 발코니를 타고 내려왔고, 가장 잘 보존된 저택의 회반죽 칠한 벽도 잡초 때문에 금이 갔다. 오후 2시에 그 도시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신호는 낮잠을 자는 방의 희미한 불빛 사이로 들려오던 맥 빠진 피아노 소리뿐이었다. 집 안에서는 여자들이 향내가 가득한 시원한 침실에서 마치 수치스러운 전염병이나 되듯이 햇살을 피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새벽 미사를 갈 때도 어깨까지 드리워지는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곤 했다. 그들의 사랑은 느리고 힘들기 짝이 없었으며, 그것마저도 종종 불길한 징조로 방해를 받곤 했고, 삶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밤과 낮이 답답해지는 순간인 저물녘에는 늪지에서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떼가 날아올랐으며, 사람들의 뜨겁고 슬픈 똥에서 나온 부드러운 수증기가 이 도시는 죽은 게 확실하다고 사람의 영혼 속 깊은 곳에서 부추기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후베날 우리비노가 파리에서 우수에 사로잡혀 이상화했던 식민 도시의 삶은 기억의 환각에 불과했다. 18세기에 그곳은 카리브 해에서 가장 번성한 무역 도시였다. 그것은 무엇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아프리카 노예 시장이라는 달갑지 않은 특권 때문이었다. (P35)
그는 세 번째 계단을 오르자마자 바로 네 번째 계단에 발을 올려놓았다. 나뭇가지의 높이를 잘못 계산한 것이었다. 그런 다음 왼손으로 사다리를 꼭 잡고 오른손으로 앵무새를 잡으려고 했다. 장례식에 늦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오던 늙은 하녀 디그나 파르도는 사다리에 올라가 있는 남자의 등을 보았다. 그가 우르비노 박사가 틀림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초록색 줄무늬의 고무줄 멜빵은 그가 다른 사람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하느님 맙소사! 위험해요!”
디그나 파르도가 소리쳤다.
우르비노 박사는 앵무새의 목을 잡고 “휴.” 하며 승리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즉시 앵무새를 놓아주어야만 했다. 발밑에 있던 사다리가 미끄러지면서 쓰러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공중에 떠 있었다. 그때 그는 자기가 영성체를 받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뉘우칠 시간도 없이,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채 성령강림대축일의 일요일 오후 4시 7분에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P78-79)
페르미나 다사는 제단 옆에서 대부분의 사람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지만, 친한 친구로 이루어진 마지막 일행은 길가로 난 현관까지 배웅해 주었다. 이는 평소처럼 손수 현관문을 잠그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마지막 숨을 쉬면서 문을 잠그려는 순간, 텅 빈 거실의 한가운데에서 상복을 입은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보였다. 그는 몹시 기뻤다. 자신의 삶에서 그를 지운 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망각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그를 씻어낸 후 처음으로 만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와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근엄하게 모자를 가슴에 대고, 평생 동안 참고 견뎌왔던 종기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는 말했다.
“페르미나, 반세기가 넘게 이런 기회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소. 나는 영원히 당신에게 충실할 것이며 당신은 영원한 나의 사랑이라는 맹세를 다시 한 번 말하기 위해서 말이오.” (P92)
반면에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페르미나 다사가 길고 지난했던 사랑이 지나간 후 가차 없이 자신을 버린 51년 9개월하고도 4일 전부터 지금까지 한순간도 그녀를 잊은 적이 없었다. 그는 감옥에 갇힌 사람처럼 매일 벽에 작대기를 그으며 망각의 계산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단 하루도 그녀를 기억하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고 지나가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P95)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로렌소 다사에 관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콜레라 전염병이 휩쓴 후 얼마 되지 않아 외동딸과 미혼 여동생을 데리고 산 후안 데 라 시에나가에서 왔다는 것뿐이었다. 그가 배에서 내리는 것을 본 사람들은 그가 이곳에 살기 위해 온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집 한 채를 꾸미는 데 필요한 것을 모두 가져왔기 때문이다. 아내는 딸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났다. 에스콜라스티카라고 불리는 여동생은 마흔 살이었는데 길거리에 나설 때는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수녀 복장을 했고, 집에 있을 때에도 허리에 고행자의 옷을 두르겠다는 서약을 충실히 지켰다. 당시 소녀는 열세 살이었고, 죽은 어머니와 똑같이 ‘페르미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P99)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그녀를 처음 만난 날, 그의 어머니는 그가 이야기하기 전에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가 말도 없어지고 식욕도 잃어버렸으며, 침대에서 뒤척이며 밤을 하얗게 새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편지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기 시작하면서 그는 설사를 하고 푸른색의 물질을 토하는 등 더욱 고통스러워 했다. 방향 감각을 잃고 갑자기 기절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의 상태가 상사병이 아니라 콜레라의 끔찍한 증세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대부이자, 그의 숨겨놓은 애인이 됐을 때부터 그녀가 믿고 지내온 늙은 동종 요법 의사 역시 환자의 상태를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은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맥박이 희미하고, 호흡은 거칠었으며, 얼굴은 죽어가는 사람처럼 창백하고 식은땀을 흘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사를 해보니 그는 열도 없었고 아픈 곳도 없었다. 그가 유일하게 구체적으로 느낀 것은 당장 죽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는 우선 플로렌티노에게, 그리고 나서 어머니에게 요리조리 캐묻고는 상사병은 콜레라와 증상이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신경을 진정시키기 위해 참피나무의 꽃을 달여 먹이라고 처방해 주었으며,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분위기를 바꾸어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갈구하던 것은 이러한 처방과 정반대였다. 그는 자신의 순교를 즐기고 싶었던 것이다. (P110-111)
“우리 앞길에서 제발 물러나 주게.”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아니스 술을 홀짝홀짝 마시면서 그 말을 들었다. 페르미나 다사의 과거를 밝히는 그의 말에 너무나 정신을 집중한 나머지,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자기가 말할 차례가 왔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이 되자,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물었다.
“따님과 이야기를 하셨습니끼?”
“그건 자네와 상관없는 일이네.”
“제가 여쭤보는 이유는 마음의 결정을 내릴 사람은 바로 따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네. 이건 남자들의 문제고 남자들 사이에서 해결되어야 해.”
로렌소 다사의 말투는 위협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자 근처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 손님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쳐다보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단호하고 오만한 기품이 서리도록 온 힘을 기울였다.
“어쨌거나 따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배신행위일 테니까요.”
그러자 로렌소 다사는 의자의 등에 몸을 기댔다. 그의 눈이 충혈되고 축축해지더니 왼쪽 눈의 눈동자가 빙그르르 돌더니 사팔눈처럼 바깥쪽으로 뒤틀렸다. 그 역시 목소리를 낮추었다.
“자네를 총으로 쏘아 죽이게 만들지 말게.”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뱃속이 차가운 거품으로 가득 차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그 역시 자기가 성령의 빛으로 빛나고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쏘십시오. 사랑 때문에 죽는 것보다 더한 영광은 없습니다.” (P146-147)
열여덟 살의 어느 여자 환자에게서 콜레라의 예비 증상이 보인다고 생각했던 그의 동료 의사가 그녀를 찾아가 달라면서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콜레라가 이미 옛 도시 지역의 성소에 침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깜짝 놀란 나머지, 그는 그날 오후 바로 그곳으로 달려갔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콜레라에 걸린 사람들은 모두 가난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었고, 특히 대부분이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별로 기분 나쁘지 않은 깜짝 선물을 보게 되었다. 복음 공원의 아몬드 나무들이 짙게 그늘을 드리운 그 집은, 밖에서 볼 때는 식민지 구역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폐허로 변해 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집 안은 아름다웠고 눈이 부실 정도여서 마치 다른 시대의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다. (P202-203)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죽는 날까지 함께 살게 될 여인을 만났을 때,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경험하지 못했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레이스가 달린 하늘색 슈미즈와 고열로 뜨거웠던 눈, 그리고 어깨까지 풀어헤친 긴 머리카락은 기억하지만 식민지 지역에서 발생한 콜레라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에 그녀가 화사하게 꽃핀 젊은 여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단지 전염병에 걸렸다는 최소한의 증상이라도 찾아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훨씬 솔직했다. 콜레라 때문에 수없이 이름을 들어온 그 젊은 의사는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현학자처럼 보였던 것이다. 진단 결과는 음식 때문에 생긴 장염이었는데, 그것은 사흘간 집에서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 병이었다. (P205)
[2]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대성당 안뜰에서 임신 육 개월째이자 상류 사회의 여자로서 완전히 갖춘 페르미나 다사를 보았을 때, 그녀에게 걸맞은 상대가 되기 위해 명성을 얻고 돈을 벌겠다고 모질게 결심했다. 심지어는 그녀가 결혼한 것이 장애가 되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자신에게 모든 것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죽어야 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몰랐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것을 피할 수 없는 사건으로 간주했고, 서두르지 않고 분노하지도 않은 채 세상이 망할 때까지라도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P7)
두 사람은 첫 아이를 갖고 나서 우연히 대화를 하다가 둘의 편지를 쓴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함께 필경사의 거리에 찾아와 그에게 아이의 대부가 되어 달라고 말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자기의 꿈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없는 시간을 빼내 <연인들의 동반자>를 썼다. 그것은 당시 거리에서 20센타보에 팔리고 있던, 도시의 인구 중 반 이상이 암송하던 편지보다 더욱 시적이고 더욱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는 페르미나 다사와 자기가 처할 수 있었던 상상의 상황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고, 각각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모델과 대안을 제시했다. 마침내 코바루비아스 사전처럼 완벽하게 세 권으로 묶을 수 있는 천여 통의 편지를 갖게 되었지만, 그 도시의 어떤 인쇄업자도 그것을 출판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트란시토 아리사 역시 그런 미친 글을 출판하는 데 묻어 놓은 보물 항아리를 꺼내 자기가 평생 동안 모은 저축을 탕진할 수는 없다면서 완강하게 거부했기 때문에 그것은 과거의 다른 서류들과 함께 집 안의 다락방에 처박히게 되었다. 수년 후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것을 책으로 출판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벌게 되었지만, 그때는 이미 편지로 사랑을 속삭이는 것은 유행이 지났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P19-20)
다음 날 오후 저녁 식사 무렵, 아름다운 비둘기 여인은 선물로 준 비둘기가 비둘기장에 돌아와 있는 것을 보고서 도망쳐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비둘기를 잡아 자세히 살펴보다가, 고리에 종이쪽지가 둘둘 말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사랑의 맹세였다.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글로 쓴 흔적을 남긴 것은 그때가 처음으로, 비록 신중을 기하느라 서명은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은 아니었다. 다음 날 오후인 수요일에 그가 집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거리의 한 소년이 새장에 든 그 비둘기와 함께 그녀의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아이는 비둘기 부인이 보내는 것으로, 다시는 날아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제발 이 비둘기를 새장에 잘 가두어 두고 문을 꼭 닫으라면서, 비둘기를 되돌려 주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전해 주었다. 그는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비둘기가 날아가는 도중에 편지를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비둘기 부인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다시 쪽지를 보낼 수 있도록 그 비둘기를 되돌려 보낸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의 경우라면, 그녀가 비둘기와 함께 사랑의 맹세에 대한 답장을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리라 생각했다. (P95-96)
새로운 삶에 완전히 익숙해졌을 무렵, 페르미나 다사는 여러 공식 행사에서 플로렌티노 아리사를 보았고, 그가 직장에서 점점 높은 자리로 올라감에 따라 더욱 자주 보게 되었다. 그러나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를 바라보게 된 나머지 다른 데 정신을 팔다가 그에게 인사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일도 종종 생겼다. 그녀는 종종 사람들이 그에 관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업계에서는 그가 카리브 하천 회사에서 조심스럽지만 불굴의 의지로 승진해 가는 것이 항상 주요한 화제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의 행동이 세련되게 변한 것과 그의 소심함이 마법처럼 시야에서 멀리 사라진 것을 보았다. 또한 체중이 약간 늘자 보기에 좋아졌으며,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근사해진 모습도 보았다. 심지어는 그가 완전히 벗겨진 대머리를 품위 있게 해결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유행이 바뀌었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런 것들을 거부하고 어두운 옷차림새를 고수했다. 그는 시대에 뒤처진 프록코트를 입고 단 하나뿐인 모자를 쓰고 다녔으며, 그의 어머니가 잡화점에서 팔던 나비넥타이를 매고 음산한 우산을 계속 들고 다니고 있었다. 페르미나 다사는 점차 그를 다르게 보게 되었고, 결국 복음 공원의 노란 잎사귀들이 흩날리는 가운데 그곳 벤치에 앉아 그녀 때문에 한숨을 쉬던 우울하고 침울한 청년의 모습과 연결시키지 않게 되었다. 어쨌거나 그를 한 번도 무관심하게 보지 않았고, 그에 관한 좋은 소식을 들으면 항상 기뻐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조금씩 자기의 죄책감을 덜어 주었기 때문이다. (P109-110)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나이가 들면 생기는 비틀거리는 문제에 아주 예민했다. 젊었을 때에도 공원에서 시집 읽는 것을 멈추고는, 거리를 건너기 위해 서로 도와주는 노인 부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 노인들은 그에게 노년의 법칙을 보게 해 준 삶의 교훈이었다.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그날 밤 영화관에 있었던 나이가 되면, 남자들은 일종의 가을의 청춘을 맞이하면서 꽃을 피우곤 했다. 그들은 희끗희끗 흰머리가 나면서 더욱 근사해 보였고, 특히 젊은 여자들의 눈에는 순진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반면에 시들어 버린 그들의 아내는 심지어 자기 그림자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편의 팔을 꼭 붙잡아야만 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면 남편들은 이내 육체와 영혼의 굴욕적인 노화라는 절벽으로 굴러 떨어졌고, 그때가 되면 원기를 되찾은 아내들은 그들이 불쌍한 맹인이라도 되는 양 팔을 붙잡고서 남자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귀엣말로 앞을 똑바로 보라고, 계단이 두 개가 아니고 세 개이며, 거리 한복판에 웅덩이가 있고, 보도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죽은 거지라는 등의 말을 해 주면서, 인생의 마지막 징검다리를 지나가듯 힘들게 서로 도우며 길을 건넜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런 거울 속에서 자신을 너무나 많이 보아온 탓에 여자의 팔에 끌려가야 하는 굴욕적인 나이에 이르는 것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그날, 오직 그날이 되면 페르미나 다사에 대한 희망을 버려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P167-168)
그것은 인생과 사랑, 늙음과 죽음에 관한 명상이었다. 마치 밤새들처럼 수없이 날개를 펄럭거리면서 그녀의 머리 위로 날아갔지만, 잡으려고 하면 깃털만 흩날리며 도망치던 생각들이 바로 거기에 정확하고 간결하게 적혀 있었다. 전에는 남편과 함께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날 있었던 일들을 토론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남편이 살아 있지 않으니 그에게 그 생각들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젊은 시절의 뜨거운 편지나 평생 보였던 음울한 행동과 어울리지 않는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미지의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그녀에게 등장했던 것이다. 그것은 에스콜라스티카 고모의 의견대로 성령의 영감을 받은 사람의 글이었고, 이런 생각은 첫 번째 편지를 받았을 때처럼 그녀를 다시 놀라게 했다. 어쨌거나 그 유식한 늙은이의 편지가 장례를 치른 날 밤처럼 무례한 행동을 되풀이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과거를 지우려는 아주 고귀한 방식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그녀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P239-240)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강의 광채를 통해 그녀를 바라보았다. 푸르고 은은한 불빛을 받아 부드러워진 석상의 옆모습처럼 유령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자 그는 그녀가 소리없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를 위로하거나 그녀가 바란 대로 눈물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렇게 물었다.
“혼자 있고 싶어요?”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그랬다면 당신보고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겠죠.”
그러자 그는 어둠 속으로 차가운 손가락을 뻗어 어둠 속에 잠긴 다른 손을 더듬거리며 찾았고, 이내 자기 손을 기다리고 있던 그 손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바로 그 덧없는 순간에 두 손 모두 서로 닿기 전에 상상했던 그런 손이 아니라, 단지 늙은 뼈를 지닌 손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은 멀쩡했다. 하지만 곧 이어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마치 죽은 남편이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현재형으로 그에 관해 이야기했고,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 순간 그녀가 점잖고 위엄 있게, 그리고 살아야겠다는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을 지니고서 주인이 떠나 버린 사랑을 어떻게 할 것인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시간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P291-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