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리스> 1987년
E. M. 포스터의 소설 <모리스>는 1914년 완성되었으나 당시에는 범죄시되었던 동성애를 다루고 있어 1971년 작가 사후에 출간되었다. 영국 중산층의 한 평범한 젊은이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과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1987년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원작을 충실히 재현한 영화 <모리스>를 만들었고, 주연을 맡은 클라이브 역의 휴 그랜트와 모리스 역의 제임스 윌비는 그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공동으로 수상하기도 했다.
칼리지에 들어온 후 그는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살아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다른 사람들도 그 자신이 위장한 것처럼 인습적 도안이 찍힌 판지 조각들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밤에 뜰을 거닐다가 창문 너머로 누구는 노래하고 누구는 토론하고 또 누구는 책을 읽는 모습들을 모았을 때, 그들도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확신하게 되었다. 모리스는 에이브러햄스의 학교를 떠난 이래 솔직하게 살지 않았고, 배리 박사의 설교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남을 속이면서 자신도 속았다는 것, 남들에게 내면이 없는 놈으로 비치기를 바라면서 자신이야말로 남들에게 내면이 없다고 오해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들도 내면이 있었다. “하지만, 주여, 저와 같은 내면은 아니기를” 다른 사람들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면서 모리스는 겸손해졌고, 죄의식을 품게 되었다. 세상 모든 피조물 가운데 자신만큼 추악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가 판지 조각인 척 위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면 세상에서 추방당할 테니, 신은 너무나 거대한 존재이므로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두려운 비판은 아래층 조이 페더스터노에게서 듣는 것이었고, 가장 참혹한 지옥은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었다. (P40-41)
모리스는 금세 변화를 눈치챘다. 그래서 장난을 거두었지만, 그러는 동안 둘은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다. 둘은 이제 팔짱을 끼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다녔다. 그리고 방에 앉을 때면 거의 매번 똑같은 자세로 모리스는 의자에 앉고 더럼은 그 발치에 앉아 모리스에게 몸을 기댔다. 그들 친구의 세계에서 이것은 전혀 눈길을 끄는 일이 아니었다. 모리스는 더럼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영역은 넓어졌다. 이번 봄 학기에 모리스는 종교에 대해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아주 거짓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기독교를 믿는다고 믿었고,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 비난받으면 고통을 느꼈다. 중간 계급 사람들은 그 고통이 신앙인 것처럼 위장했지만, 능동성이 결여된 그것은 신앙이 아니었다. 모리스는 그 때문에 용기가 생기지도 시야가 넓어지지도 않았다. 그것은 평소에는 죽어 있다가 반대 의견에 부딪히면 비로소 살아나서 쓸모없는 신경처럼 통증을 안겨 주는 것이었다. 식구들은 모두 이런 신경을 갖고 있었고 그걸 신성하게 여겼지만, 성서나 기도서나 성사나 기독교 윤리나 그 어떤 영적인 것도 그들에게 살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그 가운데 무엇이라도 공격당하면 그들은 그렇게 탄식하고, 종교 수호 단체들을 후원했다. 모리스의 아버지는 교회와 사회의 한 기둥이 되어 가던 중 죽음을 맞았고, 별다른 일이 없다면 모리스도 그렇게 기둥으로 변모해 갈 것이었다. (P63-64)
다음 만남은 곧 이루어졌다. 저녁 회식 후 모리스가 친구 대여섯 명과 함께 극장에 가려고 하는데 더럼이 그를 불렀다.
“너도 방학 때 <향연> 읽었다는 거 알아.” 더럼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리스는 왠지 불안해졌다.
“그러니까 너도 이해할 거야. 내가 더 말 안 해도.”
“무슨 소리야?”
더럼은 더 참지 못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가득했지만, 그는 짙푸르게 타오르는 두 눈으로 모리스에게 속삭였다. “널 사랑해.”
모리스는 경악했다. 그가 지닌 교외 거주자의 영혼이 밑바닥까지 충격을 받아 <무슨 잠꼬대야!>하고 소리부터 질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들이 튀어나왔다. “더럼, 넌 영국인이야. 나도 그렇고, 무슨 잠꼬대야. 기분 나쁘지는 않아.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닐 테니까.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건 가장 철저한 금기고, 학교 요람에도 가장 사악한 죄로 나와 있어. 그러니까 다시 입에 담지도 마. 더럼! 그런 황당한 생각은.......”
그러나 친구는 더 이상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안뜰을 지나 사라졌고, 그의 방문이 덜컹 닫히는 소리가 봄의 소리들 사이로 들려왔다. (P80-81)
모리스처럼 천성이 느린 사람은 겉으로는 둔감해 보인다. 무언가를 느끼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의 특성은 좋건 나쁘건 새로운 일은 없다고 생각하며, 침입자에게는 저항부터 하고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번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는 매우 강렬한 감각을 느끼며, 사랑의 감각은 특히나 깊다. 시간만 주어지면 그것도 희열을 느끼고 나누어 줄 수 있다. 시간만 주어지만 지옥의 심장부까지 내려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리스의 고뇌도 약간의 후회로 시작되었다. 잠 못 이루는 밤들과 외로운 낮들은 그 고뇌를 키워서 극도의 광증으로 몰아넣었고, 그것은 그를 소진시켰다. 고뇌는 내면으로 파고들어 육체와 영혼이 함께 뻗어 나오는 뿌리, 그러니까 지금껏 그가 덮어 감추도록 훈련받은 <나>에까지 가닿았고, 마침내 그걸 일깨운 뒤 갑절의 힘을 얻어 초인적으로 자라났다. 그것은 도한 기쁨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모리스 내부에 새로운 세계가 열렸고, 그는 광막한 폐허에 서서 자신이 진정한 열락과 진정한 영혼의 교류를 잃었음을 깨달았다. (P82-83)
거의 하루가 다 가도록 그는 떠나온 골짜기를 내려다보듯 눈을 뜨고 앉아 있었다. 모든 것이 뚜렷했다. 지금껏 그는 거짓말을 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것은 <거짓을 양식으로 삼은> 것이었다. 거짓의 양식은 소년기에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는 그것을 탐욕스럽게 먹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결심은 앞으로는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반듯하게 살기로 했지만, 그건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도 속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것이 시금석이었는데- 남성에게만 끌리는 마음을 두고 여자를 좋아하는 척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남자를 사랑했고, 예전에도 항상 그랬다. 남자를 끌어안고 싶었고 자기 존재를 그들과 융합시키기를 열망했다. 이제 자신의 사랑에 응답해 준 남자를 잃어버리고서 그는 그 사실을 인정했다. (P85)
배리 박사가 말을 이었다. “다 잘된 일이야. 대학 학위로 뭘 하겠어? 처음부터 그건 중간 계급을 위한 게 아니었어. 자네가 목사라든가 변호사, 교육자가 되려는 것도 아닐 테고, 또 지주 계급도 아니지 않는가. 순전히 시간 낭비지, 당장 일에 뛰어들게. 학감을 모욕한 건 잘한 일이야. 자네는 도시에 있어야 해. 자네 어머니는.......” 그는 말을 멈추고 시거에 불을 붙였지만, 청년에게는 아무것도 권하지 않았다. “자네 어머니는 이런 걸 이해 못해. 그러니까 자네가 반성하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거지. 내가 볼 때 이런 일은 당연한 거야. 자네는 어울리지 않는 환경에 들어갔지만, 적절하게도 거기서 얼른 빠져나올 기회를 잡은 거니까.” (P116-117)
욕망이 심미적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서 저 그림을 봐. 내가 저 그림을 사랑하는 건 내가 화가와 마찬가지로 저 제재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내가 저 그림을 평가하는 눈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라. 미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 하나는 평범한 길로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 길을 통해서 미켈란젤로에게 이르지. 하지만 나머지 한 길은 나를 비롯한 소수의 사람들한테만 알려져 있어. 우리는 이 두 길을 모두 통해서 미켈란젤로에 이르게 돼. 반면에 그뢰즈의 제재는 내게 혐오감을 줘. 내가 그 사람에게 이르는 길은 한 가지뿐이야. 다른 사람들한테는 두 가지 길이 있겠지만.”
모리스는 듣고만 있었다. 그에게는 모든 게 매력적인 억지로 들렸다.
“이런 소수의 길은 어쩌면 실수인지도 몰라.” 클라이브가 결론을 내렸다. (P128)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극장에서 내려왔다. 누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성뿐 아니라 어떤 일에서나 맹목적으로 움직여 왔고, 진창에서 빠져나왔다가 이 우연한 인과들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진창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2천년 전 바로 이곳에서 배우들은 탄식했다. 허무함과 거리가 먼 그 말조차 허무했다. (P162)
클라이브가 싸워 보지도 않고 기질의 변화에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성을 믿었고 자신이 예전 상태로 돌아갔다고 생각해 보려 애썼다. 여자들에게서 눈을 돌렸고, 그게 뜻대로 되지 않자 어린애 같고 과격한 편법들을 택했다. 하나는 이렇게 그리스를 방문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은 혐오감 없이는 떠올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모든 감정이 썰물져 나간 뒤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그 일을 깊이 후회했다. 이제 모리스가 그에게 일으키는 육체적 혐오는 앞날을 어둡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옛 연인과 우정을 유지하고 싶었고, 또 모리스가 다가올 파국을 잘 견뎌 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것은 너무도 복잡하게 얽힌 일이었다. (P168)
“얼마동안 문을 쾅쾅 두드리며 괴로워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처한 곳에 익숙해지는 법입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강아지 무리처럼 시끄럽게 짖어 대죠. 왈! 왈!” 그가 느닷없이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내자 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사람들이 모두 바빠서 자기 외침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짖기를 멈춰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남자의 관점이에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클라이브가 그런 생각을 못하게 하겠어요. 전 연민을 믿어요..... 사람은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질 수 있다는 걸요. 시대에 뒤떨어진 견해라는 건 알아요. 홀 씨는 니체를 신봉하시나요?”
“글쎄요!”
클라이브는 홀이 무심해 보이는 면이 있다고 말해 주었지만, 앤은 이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어느 면에서 무심하긴 하지만 분명한 개성이 있었다. 앤은 남편이 왜 그와 즐겁게 이탈리아 여행을 함께했는지 이해했다. “왜 빈민들을 싫어하시죠?” 앤이 불쑥 물었다.
“싫어하지는 않아요. 단지 꼭 그래야 할 때가 아니면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죠. 빈민굴이나 신디컬리즘. 그 밖의 모든 게 공공을 위협하고 있으니까, 누구라도 거기 맞서서 약간의 일은 해야 돼요. 하지만 사랑 때문은 아니지요. 보레니어스 목사님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겁니다.” (P236-237)
앞쪽에 핀 꽃들이 깜박 사라졌다가 나타났고, 다시금 클라이브는 꽃무더기 앞을 서성이는 친구가 어둠의 정수를 이루고 있다고 느꼈다.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한테는 훨씬 안 좋은 소식이야. 난 너희 집 사냥터지기와 사랑하고 있어.” 너무나 뜻밖인 데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인지라 그는 <에이레스의 아내 말이야?>라고 말하며 멍하니 일어나 앉았다.
“아니, 스커더.”
“말도 안 돼.” 클라이브는 어둠 속을 휙 둘러보며 소리쳤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 그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해괴한 소리가 어디 있어?”
“해괴하지.” 친구가 말했다. “하지만 어쨌든 너한테 신세를 졌으니까. 너한테 알렉 이야기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 (P342-343)
동성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단어에 대해 한마디, <모리스>가 쓰인 이후 이 단어에 대한 대중의 태도는 약간의 변화를 겪었다. 그것은 무지와 공포에서, 익숙함과 경멸로의 변화다. 그것은 에드워드 카펜터가 지향했던 방향의 변화가 아니다. 그는 하나의 감정이 관대하게 인정받기를 바랐고 본원적인 어떤 것이 일상 속에 재통합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는 비록 그보다는 덜 낙관적이었지만, 지식이 이해를 낳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은 대중이 동성애와 관련해서 정말로 싫어하는 것은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라는 점이었다. 그것이 아무도 모르는 새 우리 사이로 스며든다면, 또는 하룻밤 새 조그만 글자로 인쇄된 법령에 의해 합법화된다면, 거기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동성애는 의회를 통해서만 합법화될 수 있고, 의원들은 어쩔 수 없이 그 문제를 생각해 보거나 생각하는 척해야 한다. 그 결과 울펜든 권고는 무한정 거부될 것이며, 경찰의 기소는 계속되고, 판사석의 클라이브는 피고석의 알렉에게 유죄를 판결할 것이다. 모리스는 처벌을 면할지 모르겠지만.
1960년 9월
E.M. 포스터
(P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