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콜 오브 와일드> 2020년
영화 <콜 오브 더 와일드Call of the Wild>(1935)
영화 <콜 오브 와일드>는 1890년대 골드러시 시대, 캘리포니아 부유한 가정에서 길러지던 개 ‘벅’이 알래스카로 팔려가게 된 후,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약육강식의 세계를 경험하며 진정한 용기와 우정 그리고 야성의 본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콜 오브 와일드>에서 주인공 ‘벅’은 영화 전체의 감정선을 끌고 나가는 주인공인 만큼, ‘벅’을 구현하는 것은 제작진에게 가장 큰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주로 CGI를 쓰기로 했지만, 회의를 거듭한 끝에 실사와 디지털 이미지를 합쳐 사용하는 방법이 결정되었다.
방랑의 도약에 대한 오랜 그리움은
관습의 사슬에 마모되지만
다시 한 번 그 겨울잠으로부터
야성의 혈통이 깨어난다.
벅은 신문을 읽지도 않았고 악운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에게뿐만 아니라 퓨젓 사운드에서 샌디에이고까지 남부의 낮은 연안에 사는, 털이 길고 따스하며 근육은 강한 모든 개에게 악운이 닥치고 있었다. 사람들이 극지방의 어둠 속을 더듬어 황금을 발견하고 기관선과 운송 회사 들이 그 횡재를 부채질하면서 몇천 명이 북극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은 개를 원했다. 그들은 일하기 좋게 근육이 발달하고 동상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털이 수북한 커다란 개를 원했다. (P9)
다이 해변에서 벅은 악몽 같은 첫날을 보냈다. 매시간이 충격과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그는 갑자기 문명의 한복판에서 추방되어 원시 세계 한가운데로 내던져졌다. 그것은 게으름이나 따스한 햇볕, 그리고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지루함과 거리가 멀었다. 평화로움도, 휴식도, 한순간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았다. 그저 혼돈과 행동뿐이었다. 그리고 매 순간 생명과 육신이 위기에 처했다.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살아남았다. 그 사람들과 개들은 마을에 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인간의 법이 아니라 곤봉과 송곳니의 법칙에 따르는 야만족이었다.
벅은 동물처럼 싸우는 늑대 같은 개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첫 경험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안겨 주었다. 그것은 실제로 일어났지만 그에게는 대리 경험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살아서 교훈을 얻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P24)
누가 대장이 될 것인가를 놓고 피할 수 없는 싸움이 벌어지게 되어 있었다. 벅은 바로 그 싸움을 원했다. 그것은 그의 본성이었다. 그는 썰매 끈에 묶여 질주하는 일, 끈에 묶여 마지막 숨을 토해 낼 때까지 달리는 그 일, 팀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그 일을 하면서 표현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어떤 자부심에 단단히 사로잡혔다. 그것은 썰매 앞자리를 차지할 때 데이브가 느끼는 긍지였고 온 힘을 다해 달릴 때 솔렉스가 느끼는 자부심이었다. 캠프를 철수할 때 그들을 사로잡는 긍지였고, 그들을 시들하고 뚱한 짐승에서 기운차고 열정적이고 야망에 가득 찬 동물로 바꿔 놓는 자부심이었다. 낮에는 그들의 원기를 북돋우다가 밤이 되면 캠프에서 그들을 침울한 불안과 불만으로 끌어내리는 그런 자부심이었다. 스피츠가 달릴 때 실수하거나 꾀부리는 개들이나 아침에 끈에 연결될 때 숨어 버리는 개들을 혼내 주면서 자신을 지탱하는 자부심이었다. (P46)
사냥철에 인간을 시끄러운 도시로부터 숲과 광야로 내몰아 화학적으로 작동하는 납 탄환으로 동물을 죽이도록 하는 오래된 본능, 피에 굶주린 욕망, 학살의 쾌감, 이 모든 것이 벅의 내면에서 꿈틀거렸다. 다만 인간보다 벅에게 한없이 친숙한 본능이었다. 그는 무리의 선두에서 달렸다. 그는 야생동물을 추적해 살아 있는 고기를 이빨로 물어뜯고 보란 듯이 주둥이를 따스한 핏물에 씻어 내고 싶었다.
삶에는 그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어떤 정점을 나타내는 환희가 있다. 그런 것이 살아 있음의 역설이다. 그 환희는 살아 있기에 찾아오지만 살아 있음을 완전히 망각할 때에야 찾아온다. 그 환희, 살아 있음의 망각은 감흥의 불꽃 속에서 자아를 잊는 예술가에게 찾아온다. 그리고 싸움터에서 전쟁에 미쳐 자아를 잊고 생존을 거부하는 군인에게 찾아온다. 달빛 속에서 번개처럼 앞질러 가는 살아 있는 먹이를 잡기 위해 늑대의 오래된 울음소리를 내며 앞장서서 달려가는 벅에게도 바로 그 환희가 찾아왔다. 그는 시간의 자궁 속으로 되돌아가며 본성, 자신보다 더 깊은 본성의 일부, 그 심오함에서 나오는 울음소리를 냈다. 그는 순수하게 솟구치는 삶과 조수처럼 밀려드는 존재의 파도, 근육과 관절과 심줄 하나하나가 움직일 때 느껴지는 온벽한 기쁨에 압도당했다. 솟구치는 삶은 죽음을 제외한 모든 것이었는데, 맹렬히 불타오르며 움직임 속에서만 자신을 드러내고 별 아래, 움직이지 않는 죽은 물질의 표면 위로 환호하면서 날았다. (P51-52)
털 난 사내에 관한 기억과 아주 비슷한 것이 숲 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들리는 부름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벅은 커다란 불안과 이상한 욕망으로 가득 찼다. 그 소리는 벅에게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달콤함과 기쁨을 줬다.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야생에 대한 동경과 충동을 느꼈다. 때로 그는 그 소리를 찾아 숲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마치 잡을 수 있는 물건이라도 되는 듯 벅은 기분이 내키면 부드럽게 저항하듯이 짖으면서 그 소리를 찾아 헤맸다. 벅은 서늘한 나무 이끼 속이나 긴 풀이 자라는 검은 흙 속에 코를 처박아 보기도 하고 진한 흙냄새에 기뻐하며 흥흥거리기도 했다. 어떤 때는 곰팡이가 잔뜩 핀 나뭇등걸 뒤에 몇 시간씩 숨죽인 채 웅크리고 앉아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주변에서 움직이고 소리나는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그렇게 숨어 있다가 알 수 없는 그 부름을 잔뜩 놀래 주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왜 그런 짓들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어떤 설명도 할 수 없었다.
저항할 수 없는 충동이 벅을 사로잡았다. 그는 캠프 안에 누워 한낮의 열기 속에서 나른하게 졸다가도 갑자기 머리를 번쩍 들고 귀를 쫑긋 세우고 뭔가를 주의 깊게 듣다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고는 몇 시간씩 숲 속 오솔길이나 검은 잡초들이 덤불을 이룬 공터를 달렸다. 그는 물기 없는 수로를 따라 내려가는 게 좋았고 기어가서 새들이 나무 속에서 어떻게 사는지 몰래 훔쳐보는 것을 즐겼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덤불에 누워 새들이 날개를 파득거리고 꼬리를 활짝 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여름철 한밤중에 황혼이 저물어 갈 때 숲이 나지막하게 속삭이고 웅얼거리는 걸 들으며 달리는 것을 벅은 특별히 좋아했다. 그럴 때면 벅은 인간들이 책을 읽듯이 기호와 소리 들을 읽었고, 깨어 있을 때나 잠들었을 때 들어오라고 그를 부르는 신비한 그 무엇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P114-115)
밤이 찾아오자 벅은 연못가에 앉아 침울하게 손턴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때 숲 속에서 이해츠 족과는 다른 어떤 생물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얼핏 들렸고 그는 귀를 쫑긋했다. 그는 일어서서 긴장한 채 귀를 기울이고 코로 냄새를 맡았다. 멀리서 날카롭게 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공중으로 퍼져 나갔고 곧이어 비슷하게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일제히 들렸다. 조금 있으니 소리가 더 가까워지고 커졌다. 다시 한 번 벅은 그 소리가 기억 속에서 끈질기게 들려왔던 다른 세상의 부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공터 한가운데로 걸어 나가 좀 더 주의 깊게 그 소리를 들었다. 바로 그 부름, 여러 곡조가 합쳐진 부름이었고 어느 때보다 더 유혹적이고 절실하게 울려 퍼졌다. 처음으로 그는 부름에 복종할 준비가 되었다. 손턴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를 묶어 놓았던 마지막 끈이 끊어진 것이다. 인간 그리고 인간의 어떤 요구도 그를 더 이상 묶어 놓지 못했다.
이해츠 족은 이주하는 사슴 떼를 옆에서 공격해 사냥했다. 늑대 무리는 그들처럼 살아 있는 고기를 사냥하면서 강과 숲들을 지나 마침내 벅의 계곡으로 침입해 왔다. 달빛으로 하얗게 물든 공터를 향해 그들은 은빛 홍수처럼 몰려들어 왔다. 공터 한가운데에서 벅이 동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그들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커다란 몸집으로 꼼짝도 않고 서 있는 벅에게 그들은 경외감을 느꼈으나 곧 가장 대담한 놈이 먼저 벅에게 덤벼들었다. 벅은 번개처럼 그놈을 한 방에 날려 목을 부러뜨려 놓았다. 그러고는 전처럼 다시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는데, 맞은 놈은 뒤에서 고통스러워하며 데굴데굴 굴렀다. (P129)
해마다 여름이면 한 방문객이 그 계곡을 찾는데 이해츠 족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놈은 찬란하게 빛나는 털로 뒤덮인 커다란 늑대인데 다른 늑대들과 비슷하면서도 어딘지 다르다. 그는 홀로 부드러운 숲을 건너 나무들 사이에 있는 공터로 내려간다. 썩은 사슴 가죽 자루들에서 누런 물줄기가 흘러나와 땅에 스며드는데, 주위에 풀들이 기다랗게 자라나 있고 식물들이 우거져서 그 누런 색깔을 보이지 않게 가린다. 그는 여기에서 잠시 동안 뭔가 생각하다가 떠나기 전헤 한 번, 아주 길고 슬프게 운다.
그러나 그가 언제나 혼자인 것은 아니다. 긴 겨울밤이 오고 늑대들이 낮은 계곡으로 먹이를 찾아 내려올 때면 그가 무리의 맨 앞에서 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창백한 달빛과 희미하게 반짝이는 북극광을 뚫고 동료들보다 훨씬 더 높이 펄쩍펄쩍 뛰면서 그들 무리의 노래인 원시 세계의 노래를 부를 때면 그의 커다란 목이 우렁우렁 울리는 것을 볼 수 있다. (P132)